[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 바로읽기]
1994년 1월1일 북-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던 날 멕시코의 가장 가난한 지역인 치아파스에서 “500년 넘게 억압받아온 원주민들의 권리를 위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봉기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 특히 좌파와 지식인들에게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검은 스키 마스크를 쓰고 정글에서 싸우고 인터넷을 통해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글들을 내놓는 그는 제2의 체 게바라, 로빈 후드이며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의 영웅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게릴라의 전설, 마르코스>(베르트랑 데 라 그랑쥬·마이테 리코 지음, 박정훈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1만3천원)은 논쟁의 불을 지핀다. 프랑스의 <르몽드>와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의 특파원으로 사파티스타 운동을 처음부터 취재하고 마르코스를 인터뷰하기도 했던 지은이들은 성공한 가구상의 아들로 태어난 철학자 라파엘 기옌이 어떻게 게릴라 마르코스로 변신해 세기의 주요 인물로 떠올랐는지, 그리고 94년 봉기 이후 어떻게 영향력을 키워왔는지, 멕시코 사회에서 사파티스타는 어떤 의미인지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마르코스의 가족과 대학 시절의 친구들, 초기 게릴라 활동의 동지들, 첼탈족 원주민들, 성직자들의 목소리를 두루 들은 뒤 이들이 내린 결론은 극히 회의적이다.
“우리도 초기에는 사파티스타 운동에 매혹됐었다”고 말하는 이들은 취재 도중 혼비백산해 어디론가 도망치는 원주민들과 마주친다. 그리고 그들이 정부군이 아닌 사파티스타에 쫓겨서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원주민들의 권익을 위해 싸운다는 사파티스타들의 말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된다. 봉기 이후 치아파스 원주민들의 사정은 오히려 악화됐다.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연방군이 다시 개입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원주민들은 계속 정치적으로 동원되고, 금주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즉결처형되기도 했으며, 군사활동 때문에 마을에선 사실상 농업 생산 활동이 중단되었다는 증언들이 모였다. 혁명이라는 목표 때문에 사파티스타 ‘정치특사’들은 조직에 참가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재산을 압수하고, 강제 노동을 부과하고 있다는 사례도 있다. 또한 멕시코 정권을 좌지우지해온 일부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사파티스타를 지원하거나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한다. 그리하여 이들은 우리가 마르코스에게 환호하게 했던 신비주의적 전략과 기발한 투쟁 방식에 대한 낭만주의적 감동을 걷어버리고 마르코스를 똑바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마르코스의 능력은 잊혀져가는 원주민 문제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 줄 알았다는 것이지만, 그가 성공한 것은 이것 하나뿐이며 원주민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주지는 못했다는 냉정한 결론이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잃었고, 마르코스는 원주민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파리와 로마에서 더 인기 있는 유명인사가 됐다는 씁쓸한 이야기다.
이것이 아픈 진실의 한 단면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성찰하고 더 나은 쪽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부질없는 짓으로 보고 냉소를 보낼 것인지, 그만큼 풀기 간단치 않은 과제들을 떠안고 있는 원주민·약자들의 문제를 다시 한번 돌아볼 것인지, 이것이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