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상영하는 인권영화 <여섯개의 시선>… 일상에 숨겨진 반인권에 대한 참신한 발언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영화를 만들어 극장에 건다고?’ 인권위원회 남규선 공보담당관이 지난해 봄 이런 구상을 꺼냈을 때 주변 사람들 대부분의 반응은 “너 미쳤어?”였다. “무슨 돈이 있어서 누가 ‘인권영화’를 보러 극장에 오냐?” 그러나 이런 장애물들을 거뜬히 넘어서 11월14일 진짜로 그 영화 <여섯개의 시선>이 전국의 30~50개 극장에 온다. 국가기관이 제작한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더구나 웬만한 유럽영화나 예술영화들도 서울 1~2개 극장에서 개봉하기 어려운 요즘 아닌가.
이런 ‘모험’에 성공할 만큼 이 영화는 새롭고 발칙하다. 그리고 몇번의 검증을 거치기도 했다.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돼 객석의 환호를 얻어냈고 후쿠오카영화제, 블라디보스토크영화제, 밴쿠버영화제에도 다녀왔다. 비결은 ‘인권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가뿐히 뛰어넘는 다양한 시선과 자유로운 표현, 그러면서도 잃지 않는 진정성이 아닐까. <여섯개의 시선>은 ‘차별’이라는 ‘묵직한’ 주제로 장애인, 외모 차별, 외국인 노동자, 아동인권, 성범죄자 신상공개에 대해 ‘돌아보고 둘러보고 생각해보라’고 ‘발언’하지만 엄숙하고 무게 잡는 ‘계몽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인권’을 어떨 때는 정색하고, 때로는 낯설게, 때로는 배꼽을 잡도록 이야기하는 6개의 단편이 묶여 우리 시대의 세밀한 풍속화가 된다. 차별의 모습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도 개성이 강하다. 그 능숙한 이야기꾼들은 박광수·임순례·박찬욱·여균동·박진표·정재은 등 6명의 감독이고, 영화계의 ‘마당발’ 이현승 감독이 총 제작지휘를 맡았다.
국가기관 제작 영화로 극장 개봉에 성공
국가인권위원회가 ‘영화 제작자’로 변신한 것은 약간 엉뚱해 보이지만, “영화가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벌어지지만 정작 우리는 깨닫지도 못하는 일상 안의 차별을 좀더 새롭게, 그래서 정교하게 바라보고 바꿔나가는 좋은 소통 수단이 될 수 있으리라”는 아이디어는 인권위 출범 초기부터 오랫동안 익어왔다. 불법체포나 감금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진정을 받아 사건을 조사하고 구제하는 일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돌아보도록 하는 것 또한 인권위원회의 중요한 목표라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 영화가 극장까지 오는 데는 곡절이 많았다. “책 한권을 쓸 것 같다”는 남규선 공보담당관의 말처럼. 복잡한 결제와 심의를 거쳐 이 영화에 주어진 제작비(국가 예산)는 3억원, 18~28분짜리 단편 한편당 겨우 5천만원이었다. 영화 한편은 고사하고 몇십초짜리 CF 한편도 못 찍을 돈이다. 더구나 쟁쟁한 감독 6명에 스태프도 수백명, 게다가 변정수·지진희·백종학 등 유명 배우들까지 출연한다지 않는가. 감독들은 자비를 털어 부족한 제작비를 메웠다. 박찬욱 감독은 자기 돈 1천만원을 들여 네팔 촬영을 다녀왔다. 열정과 십시일반의 노력이 영화를 만들어냈다. 고비는 또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만들었지만 홍보와 배급을 할 돈이 10원도 남지 않았다. 자칫 손해볼 수도 있는 영화를 위해 나설 배급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 와중에 최근 영화 <장화, 홍련> <싱글즈> <바람난 가족> 등으로 호평받은 한국영화 전문 배급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영화를 본 뒤 바로 개봉에 필요한 비용을 전액 투자하기로 했다. CF 한편 못 찍을 예산… 스태프들의 헌신적 열정 도대체 무슨 영화이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탰을까?
여섯개의 시선 중 첫 번째 시선은 임순례 감독의 <그녀의 무게>이다. 여상에 다니는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선경이 주인공이다. 취업이 코앞에 닥친 고교 3학년이 되자 교사들은 아예 저울을 갖다 놓고 아이들의 몸무게를 재며 닦달하고, 개학날 단식원에서 살 빼고 온 친구들과 쌍꺼풀 수술한 친구들은 선망의 대상이 된다. 빤해 보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선과 악의 선을 긋지도 않고 선경을 울리지도 않는다. 나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심각하지만 꿋꿋한 표정으로 좌충우돌하는 선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찡하지만 따뜻함과 유쾌함을 잃지 않고, 교사부터 아이들의 내면까지를 사로잡고 있는 외모 차별의 곳곳에 확대경을 대면서도 지나친 비관주의에 빠지지도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임 감독이 출연한다. 길을 지나던 행인이 영화 촬영진을 보고 “이거 무슨 영화 찍는 거예요?”라며 끼어든다. “감독님은 어디 계세요? 아아, 저 키 큰 양반 아녜요? 에~ 저 뚱뚱한 아줌마가 감독이라고?”
<고양이를 부탁해>를 만들었던 정재은 감독이 만든 <그 남자의 사정>은 논쟁을 불러일을킬 만한 작품. 신도시의 한 아파트, 공상과학(SF) 영화처럼 보일 정도로 초현실적인, 한가운데서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숨막힐 듯한 이 아파트에는 성범죄자로 신상공개된 한 남자와 오줌싸개 아이가 살고 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잠자리에다 오줌을 싼다고 닦달하면서 자기 전에는 물도 먹지 못하게 하고, 오줌 싼 아이의 아랫도리를 벗겨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소금을 받아오라는 벌을 준다. 아랫도리를 벗은 채 집에서 쫓겨나 소금을 얻으러 다니는 어린아이의 ‘억울한’ 모습을 통해 이런 가혹함이 성범죄자라고 신상을 공개하는 제도와 다를 것이 뭐냐고 물으면서 신상공개된 ‘그 남자’의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하자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아이가 잠을 자다 자기도 모르게 싸는 오줌과 성범죄를 교차시켜가는 내용은 불편한 구석이 있다.
여균동 감독의 <대륙횡단>은 뇌성마비 장애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을 담으며, 정공법으로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이야기한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 김문주가 ‘김문주’ 역으로 출연해 솔직한 모습으로 마음을 찡하게 울린다. 김문주씨의 일상을 담담하게 따라가며, 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친구와 술을 마시며 ‘거친’ 말로 신세를 한탄하는 그의 마음을 살짝 엿보게 하고, 지하철 장애인용 에스컬레이터가 왜 장애인에게 ‘음악감상 시간’이고, 우리가 무심히 오가는 광화문 네거리를 건너는 것이 어떻게 ‘대륙횡단’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차별을 극복하는 방법은 법·제도를 고치는 것과 함께 다른 사람 편에서 생각해보기(이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은 ‘네가 나라면’-If you were me-이다)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
<죽어도 좋아>를 만들었던 박진표 감독의 <신비한 영어나라>는 ‘L’과 ‘R’ 발음을 향상시키기 위해 치과 수술대 위에 누워 ‘설소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아이와 그 부모, 의사가 펼치는 퍼포먼스 다큐멘터리다. “9시 뉴스에서 많이 듣던 이야기 아냐” 하는 푸념은 실시간으로 재현된 수술 장면의 ‘날것의 충격’ 앞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들은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사는 걸까
박광수 감독의 〈얼굴값〉은 현실과 초현실이 대비되는 공간에서 마지막 반전이 뒤통수를 친다.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외모주의는 예쁜 여자에게 ‘얼굴값도 못한다’고 빈정대는 선입견을 만들어낸다.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의 박찬욱 감독이 만든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6년4개월 동안 한국의 정신병원에 감금됐던 네팔인 찬드라 쿠마리 구룽의 이야기다. 타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소리 높여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고, 충분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넉넉하게 생각할 공간을 만들어낸다.
서울의 한 섬유공장에 보조 재봉사로 일하던 찬드라가 라면을 시켜먹은 뒤 어디에선가 돈을 잃어버려 계산을 하지 못하게 되고, 경찰에 잡혀간 그는 ‘정신이 이상한’ 행려병자로 취급돼 보호소와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영화는 흥분하지 않고 ‘찬드라의 시선으로’ 정신병원 의사, 간호사, 경찰, 같이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일이 그렇게 되기까지 보태진 사람의 외모와 행색에 대한 편견, 비서구언어·저개발국가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완전한 무지와 무시, 남의 말에 귀를 귀울이지 않으려 하는 의사들의 모습이 점점 꼬리를 물면서 거대한 소통 부재의 고리를 만들어간다. 영화의 처음과 끝, 영화 제작진이 찬드라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히말라야 한가운데 네팔 산속 마을의 탁 트인 모습은 정신병원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마음의 풍경을 이룬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 국가기관이 제작한 영화로는 처음으로 극장 개봉하는 인권영화 <여섯개의 시선>. 일상에 숨어 있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여섯명의 감독이 때로는 낯설게, 때로는 배꼽을 쥐도록 그려냈다. 근엄한 인권의 색다른 변신을 즐겨보라. |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영화를 만들어 극장에 건다고?’ 인권위원회 남규선 공보담당관이 지난해 봄 이런 구상을 꺼냈을 때 주변 사람들 대부분의 반응은 “너 미쳤어?”였다. “무슨 돈이 있어서 누가 ‘인권영화’를 보러 극장에 오냐?” 그러나 이런 장애물들을 거뜬히 넘어서 11월14일 진짜로 그 영화 <여섯개의 시선>이 전국의 30~50개 극장에 온다. 국가기관이 제작한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더구나 웬만한 유럽영화나 예술영화들도 서울 1~2개 극장에서 개봉하기 어려운 요즘 아닌가.

▲ 박광수 감독, 정재은 감독, 임순례 감독, 여균동 감독, 박찬욱 감독, 박진표 감독.(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영화 제작자’로 변신한 것은 약간 엉뚱해 보이지만, “영화가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벌어지지만 정작 우리는 깨닫지도 못하는 일상 안의 차별을 좀더 새롭게, 그래서 정교하게 바라보고 바꿔나가는 좋은 소통 수단이 될 수 있으리라”는 아이디어는 인권위 출범 초기부터 오랫동안 익어왔다. 불법체포나 감금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진정을 받아 사건을 조사하고 구제하는 일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돌아보도록 하는 것 또한 인권위원회의 중요한 목표라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 영화가 극장까지 오는 데는 곡절이 많았다. “책 한권을 쓸 것 같다”는 남규선 공보담당관의 말처럼. 복잡한 결제와 심의를 거쳐 이 영화에 주어진 제작비(국가 예산)는 3억원, 18~28분짜리 단편 한편당 겨우 5천만원이었다. 영화 한편은 고사하고 몇십초짜리 CF 한편도 못 찍을 돈이다. 더구나 쟁쟁한 감독 6명에 스태프도 수백명, 게다가 변정수·지진희·백종학 등 유명 배우들까지 출연한다지 않는가. 감독들은 자비를 털어 부족한 제작비를 메웠다. 박찬욱 감독은 자기 돈 1천만원을 들여 네팔 촬영을 다녀왔다. 열정과 십시일반의 노력이 영화를 만들어냈다. 고비는 또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만들었지만 홍보와 배급을 할 돈이 10원도 남지 않았다. 자칫 손해볼 수도 있는 영화를 위해 나설 배급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 와중에 최근 영화 <장화, 홍련> <싱글즈> <바람난 가족> 등으로 호평받은 한국영화 전문 배급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영화를 본 뒤 바로 개봉에 필요한 비용을 전액 투자하기로 했다. CF 한편 못 찍을 예산… 스태프들의 헌신적 열정 도대체 무슨 영화이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탰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