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는 코드 ‘쿨’에 관한 보고서… 대중문화에 이어 정치까지 지배할 태세
오늘날 젊은이들을 매혹시키는 최고의 ‘코드’는 쿨이다. <한겨레21>도 얼마 전 쿨 탐구에 나섰었다(478호). 애인이 떠날 때 칙칙하게 울며 매달리지 않고, 실속 있게 처신하면서도 속물 티를 내지 않고, 냉소적이면서도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일상에 찌들지 않고 게임하듯 유연하게 삶을 꾸려가는 쿨한 이들의 모습은 광고와 대중음악, 패션, 영화를 점령했다. 모두들 외친다. “착한 사람은 싫다. 쿨하게 살고 싶다.” 그럼 도대체 쿨은 뭐지?
나르시시즘 · 역설적 · 초연함 · 쾌락주의
<세대를 가로지르는 반역의 정신 쿨>(사람과책 펴냄)은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저널리스트인 딕 파운틴과 사회학자 데이비드 로빈스가 쿨이라는 삶의 태도를 문화, 역사, 정치·경제학적으로 두루 살핀 ‘쿨 연구서’다. 쿨에 열광할 수도 있고 반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전 세계 젊은이들과 문화·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이 강력한 삶의 태도에 대해 두루 살펴본 뒤에 결정할 일이다.
이들에 따르면 쿨은 특정한 사회현상이나 유행이라기보다는 어떤 현상에 반응하는 개인적 태도이기 때문에 대단히 다중적이다. 예를 들어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기존 어른들의 시선과 달리 ‘내 멋대로’ 살아가는 양동근과 이나영도 쿨하고, 남편의 불륜이 폭로되는 가운데 단호하고 침착한 표정을 잃지 않는 힐러리 클린턴도 쿨하고, 절도 있게 걸어가는 사관생도도 쿨하다. 그럼에도 쿨의 특징을 굳이 들자면 이들은 나르시시즘·역설적·초연함·쾌락주의라고 얘기한다.
지은이들은 쿨의 기원을 서아프리카 요루바 문명의 ‘이투투’에서 찾는다. ‘이투투’는 분쟁을 해소하는 냉철한 능력이며 친화력 있고 관대하고 우아한 품성이다. 그 뒤 노예선을 타고 아메리카로 끌려와 고된 노동과 가혹한 모욕과 폭력에 시달리던 흑인들은 혹독한 삶을 견뎌내기 위한 마음의 방어기제로 초연한 ‘쿨한 가면’을 썼다. 두번의 세계대전 이후 백인들 역시 규율대로 살아가는 산업사회의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를 부정하며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쿨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1950년대에 등장한 비트족은 “빨리 살고 빨리 죽는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술과 마약과 범죄와 동양사상에 탐닉하여 주류사회에 맞서는 급진적 도전을 실행했다. 1960년대 히피즘 또한 기존의 도덕적 가치관을 전복하려는 시도였다. 일탈과 반항에서 소비사회 찬양으로 그러나 일탈과 반항의 코드였던 쿨은 1980년대 이후 지극히 상업화되고 소비사회의 풍요로움을 찬양하는 태도로 바뀌었다. 쿨은 소수자의 태도에서 벗어나 청년들 사이에서는 주류가 되었다. “레이건과 대처의 보수 우익정권은 역설적으로 쿨의 대중성을 강화하고 디오니소스적 쾌락주의와 경쟁, 탐욕을 정당화했다.” 미디어와 광고업계, 프로스포츠, 연예산업은 1960년대 반문화의 핵심이었던 소비주의에 대한 혐오와 강렬한 사회변화의 의지는 교묘히 빼버린 채 그 겉모습인 외모에 대한 강박관념과 패션과 아이러니만을 실컷 써먹는다. 1960~70년대에 통기타와 포크, 장발족과 함께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청년 문화였던 쿨함과 2000년대 한국에서 유행하는 쿨함 또한 당연히 다르다. 지은이들은 대중문화를 정복한 쿨은 이제 정치를 공략하며 전지구적으로 번져간다고 말한다. 쿨은 탈규제화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달라진 노동에 적합한 유연성을 선사한다. “보수를 충분히 받는 사람에게 회사는 그 자체로 쿨한 것이 되었다. 실업자들에게 쿨은 자유롭게 마약에 의존하게 하는 식의 실패자의 피난처가 되었다. 쿨한 작업장은 노동의 투쟁 정신과 노동조합 조직화의 부활을 지지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그리하여 쿨은 “현재의 쾌락에 치중함으로써 불확실성과 낮은 기대치 속에서도 살아가도록” 만드는 도구가 되어간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 『세대를 가로지르는 반역의 정신 쿨』, 딕 파운턴 · 데이비드 로빈스 지음, 이동연 옮김, 사람과책 펴냄.
지은이들은 쿨의 기원을 서아프리카 요루바 문명의 ‘이투투’에서 찾는다. ‘이투투’는 분쟁을 해소하는 냉철한 능력이며 친화력 있고 관대하고 우아한 품성이다. 그 뒤 노예선을 타고 아메리카로 끌려와 고된 노동과 가혹한 모욕과 폭력에 시달리던 흑인들은 혹독한 삶을 견뎌내기 위한 마음의 방어기제로 초연한 ‘쿨한 가면’을 썼다. 두번의 세계대전 이후 백인들 역시 규율대로 살아가는 산업사회의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를 부정하며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쿨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1950년대에 등장한 비트족은 “빨리 살고 빨리 죽는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술과 마약과 범죄와 동양사상에 탐닉하여 주류사회에 맞서는 급진적 도전을 실행했다. 1960년대 히피즘 또한 기존의 도덕적 가치관을 전복하려는 시도였다. 일탈과 반항에서 소비사회 찬양으로 그러나 일탈과 반항의 코드였던 쿨은 1980년대 이후 지극히 상업화되고 소비사회의 풍요로움을 찬양하는 태도로 바뀌었다. 쿨은 소수자의 태도에서 벗어나 청년들 사이에서는 주류가 되었다. “레이건과 대처의 보수 우익정권은 역설적으로 쿨의 대중성을 강화하고 디오니소스적 쾌락주의와 경쟁, 탐욕을 정당화했다.” 미디어와 광고업계, 프로스포츠, 연예산업은 1960년대 반문화의 핵심이었던 소비주의에 대한 혐오와 강렬한 사회변화의 의지는 교묘히 빼버린 채 그 겉모습인 외모에 대한 강박관념과 패션과 아이러니만을 실컷 써먹는다. 1960~70년대에 통기타와 포크, 장발족과 함께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청년 문화였던 쿨함과 2000년대 한국에서 유행하는 쿨함 또한 당연히 다르다. 지은이들은 대중문화를 정복한 쿨은 이제 정치를 공략하며 전지구적으로 번져간다고 말한다. 쿨은 탈규제화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달라진 노동에 적합한 유연성을 선사한다. “보수를 충분히 받는 사람에게 회사는 그 자체로 쿨한 것이 되었다. 실업자들에게 쿨은 자유롭게 마약에 의존하게 하는 식의 실패자의 피난처가 되었다. 쿨한 작업장은 노동의 투쟁 정신과 노동조합 조직화의 부활을 지지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그리하여 쿨은 “현재의 쾌락에 치중함으로써 불확실성과 낮은 기대치 속에서도 살아가도록” 만드는 도구가 되어간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