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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박광정] 세상이 ‘변소’ 같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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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1-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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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감각으로 대박 터트리는 연극 연출가 박광정… ‘광주’를 기억하며 따뜻한 ‘봄날’ 준비

사람들은 그를 개그맨 뺨치는 코믹 연기자로 알지만 그의 세련된 유머감각은 연극 연출에서 더 빛이 났다. 그가 대학로에서 정말이지 ‘화려하게’ 데뷔전을 치른 <마술가게>는 내가 웃다가 의자에서 떨어질 뻔할 정도로 재기 넘치고 역동적인 무대였다. 그 당시 나도 연극작업을 왕성하게 할 때였다. 어느 날 공연을 마치고 동료들과 맥주 한잔을 하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그를 보고 난 주저 없이 그에게 다가가 내 소개를 한 뒤 팬이라고, 나도 당신 연극에 출연하고 싶다고 프러포즈(?)를 했었다. 그의 세련된 작업에 반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와 <지하철 1호선>에서 조연출과 배우로 만났고 1996년 화제의 연극 <비언소>에서 ‘제대로’ 만났다. 그리고 난 그 작품으로 신인연기상을 타고, 그는 대학로 최고 흥행 연출가의 명예를 얻게 된다.

코믹 연기는 그의 일부분일 뿐

연극 <비언소>는 <늙은 도둑 이야기>와 함께 극단 ‘차이무’의 간판 레퍼토리다.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장소라는 뜻과 함께 빨리 발음하면 ‘변소’가 되기도 하는 작품 <비언소>는 우리의 굿 놀음처럼 일관된 스토리 없이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풍자연극이고, 그 내용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얼개를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 초연 멤버들은 장기공연과 수많은 지방공연을 돌면서 이 작품은 100년 뒤에도 히트할 거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두 번째 앙코르 공연인 이번 공연은 11월4일부터 초연 연출가인 박광정에 의해 다시 공연된다. 그렇지 않아도 관객이 몰리는데다 송강호를 배출한 이 공연에 이번엔 배우 류승범도 합류를 해서 벌써부터 예약석이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마음에 그를 대학로에서 만났다.


내가 인터뷰하는 스타일이 그렇긴 하지만 그와의 인터뷰도 그저 7년 전, <비언소> 공연하면서 밀려드는 관객들 때문에 행복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작업해서 무대 뒤에서도 행복하던 그때를 안주 삼아 맥주 한잔을 하고 돌아왔다. 코믹한 이미지와는 달리 말이 없고 차분한 성격인 그는 연출을 할 때도 큰 소릴 내는 법이 절대로 없었다. 큰 소리는커녕 흥분조차 하지 않고 항상 가는 눈을 더 가늘게 뜨면서 사람 좋은 미소로 일관하며 농담하듯 그렇게 연출을 했다. 극단 차이무가 항상 ‘변소’ 같은 세상을 향해 시니컬한 농담을 던지는 식의 연극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작가 이상우나 박광정이나 배우나 스태프 모두 항상 끼득끼득 농담을 하며 지냈었다. 그는 이 작품이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요즘 제일 큰 고민이 연출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것이고 그때 먹었던 마음과 감각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때의 ‘감각’은 함께 작업했으니 익히 알지만, 그때 먹은 ‘마음’이 뭐였는지 몰라 물어봤다. 형식만 ‘열린’ 연극이 아닌 내용도 ‘열린’ 연극을 통해 세상을 대하는 예술가의 진지한 고민을 관객과 함께 나누는 것이란다. 그리고 그때 연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한 장면은 ‘서울에서 평양까지’(내가 개량한복을 입고 나와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부르고 남자 배우들이 옆에서 관광춤을 추는 장면이다)였는데, 그 이유는 ‘광주보다 더 가까운…’이라는 가사 때문이었다는 거다. 연극을 만드는 작업으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에겐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도 숙제였지만 ‘광주’ 역시 숙제였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은 빛고을 광주다. 그리고 80년 5월 그는 거기 있었다.

사진/ <비언소> 연습실에서는 똑똑한 머리와 따뜻한 머리와 가슴을 가진 딴따라들이 있었다. 박광정씨에게 광주는 평생의 숙제일 수 밖에 없다.

농담하듯 연출… 시민군 친구의 모습

그는 고3이었다. 중간고사가 시작되던 날 일은 터졌고, 학교는 보름간 휴교령이 내려졌다. 의식 있는 학생들은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시위대에 나가거나 대학생들이 만든 유인물을 뿌리고 다녔으며 심지어 시민군이 된 경우도 있었지만, 자신은 ‘의식 없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저 날아드는 총알이 무서워 잘 때도 창문에 두꺼운 이불을 대고 잤다고 한다. 의식이 있든 없든 그 당시 ‘그곳’에 있었던 사람을 만나면 제일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시민군이 점령했던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이 경험했다는 ‘유토피아’에 대해서다. 의심이 가서가 아니다(그 많은 필름들을 보고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는가). 그저 그 유토피아를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부터 직접 듣고 싶었을 뿐이다.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치안이 부재한 상태인데다 모두들 총기를 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사건은커녕 가벼운 강도사건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폭력은 오로지 진압군에 의해서만 이뤄졌다는 얘기다. 듣기만 해도 감동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광주 출신 예술가로서 부채감을 크게 느끼며 살진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언소> 공연을 하면서 그게 아니었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 동안 광주 얘기로 연극을 만들 몇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광주 출신이 아니었다면 몇번이고 했을 텐데 되려 그때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더 할 수 없었단다. 아무리 어린 학생이었다지만 총알을 피해 숨어 있던 자신이 무슨 말을 하겠냐는 거다.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 얘길 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고 한다. 대학 1학년 때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1년을 술로 살았고 대학생활에 적응을 못해 찾아간 연극 동아리가 그로 하여금 늦은 나이에 다시 연극영화과를 들어가게 만들었다는 거다. 아무리 ‘의식 없이’ 총알을 피해 숨은 그였지만 그도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다른 예술가들처럼, 아니 그들보다 광주는 ‘숙제’가 더 될 수밖에 없었을 거다.

몇년 전 광주 특집 다큐프로에서 그때의 충격으로 정신병원에서 자해를 일삼는 한 남자를 봤는데, 얼굴을 자세히 보니 자신의 중학교 동창이더라는 말을 하면서 그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온다면 함께 운동하던 친구가 잡혀가는 걸 보면서 비겁하게 도망간 자신의 얘기를 쓴 “임철우의 소설 <봄날>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고 싶다”고 조용히 그러나 따뜻하게 얘기했다. 항상 깔끔하고 쿨하게 얘기하던 그가 그렇게 따뜻하게 말하는 걸 난 이때 처음 봤다.

우리가 항상 만나고 싶은 딴따라

그를 만나러 연습실로 갈 때 서울 대학로는 분노한 노동자들의 집회가 한참이었다. 그리고 한쪽에선 이라크 파병반대 시위대의 물결이 가득했다. 택시가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대규모 집회였기 때문에 방송통신대 입구에서부터 동숭아트센터 연습실까지 걸어갔다. 단병호 위원장의 핏대 선 얼굴도 보고 파병반대 서명란에 서명도 하면서 바쁜 발걸음을 옮겨간 <비언소> 연습실에선 자살하는 노동자에도 파병에도 관심이 없다는 듯이 연습에만 열중인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딴따라이면서도 마치 4차원의 세계에 들어선 것처럼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론 두 남자가 서로 ‘똥칸’을 차지하려고 피 터지게 싸우는 장면을 연습하는 걸 보면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딴따라들이 해야 할 일이 뭔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농민이 자살하고 노동자가 자살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 걸 생각하면 힘이 빠지지만, <비언소> 같은 연극이 계속 먹힐 정도로 세상은 여전히 ‘변소’ 같지만, 그래도 똑똑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딴따라들이 많아진다면 신나는 세상이 조금 더 빨리 오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박광정 같은 사람말이다.

글 오지혜(영화배우)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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