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광통교 · 수표교 원위치 복원에 난색 표명… 완공 일정 맞추려 이전으로 마무리 꾀해
2002년 2월25일 청계천1가 광(통)교 네거리 복개 구조물 아래 지하. 당시 ‘청계천 복원’ 공약을 내걸고 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명박 전 의원이 기자들을 이끌고 청계천을 찾았다. 그는 허리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고 더러운 하수구 속으로 뛰어들어 광통교 기둥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외쳤다. “광교다, 광교. 여러분 광교를 찾았습니다. 수십년 동안 여기 묻혀 있던 광교를 처음 발견했습니다.”
복개 뒤 광교 네거리 지하에 그대로 서 있던 광통교를 처음 발견했다는 그의 말은 물론 사실이 아니었고, 광교가 거기에 그대로 서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어쨌거나 그날은 청계천과 광통교가 되살아나는 계기가 된 기념비적인 날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날 그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고통받는 광통교를 복원하고 장충단 공원에 있는 수표교를 제자리에 복원하는 것이 청계천 복원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시장이 ‘문화재 애호가’가 된 까닭
그리고 1년8개월 뒤인 2003년 10월23일. 다시 청계천1가 광교 네거리. 이명박 시장이 광교 해체·복원 공사 현장에 나와 현장 소장에게 물었다. “여기 중요한 상판은 어떻게 됐죠?” “예, 교각은 그대로 남아 있고….” 현장 소장이 설명하려 하자, 시장이 다시 물었다. “아, 중요한 상판 말이에요. 그게 다 사라져버린 거죠?” “예.”
한 기자가 “그래도 교각이 남아 있으니 최대한 원형·원위치 복원을 시도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묻자 이 시장은 단호히 대답했다. “이렇게 떨어져 나가고 약한데, 문화재는 문화재답게 보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장소에 옮겨서 잘 보존해야 합니다.” 자신의 말대로 과연 이 시장은 ‘문화재 애호가’일까?
지난 10월5일 고가 철거를 끝내고 복개 구조물 철거에 들어갈 청계천 복원 사업이 광통교·수표교 복원을 두고 일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역사·문화 복원의 핵심 과제라 할 두 다리의 복원이 서울시에 의해 사실상 배제되는 듯한 인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 광통교·수표교 복원은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 공약 가운데서도 핵심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청계천복원 추진본부(본부장 양윤재)와 시민위원회(위원장 권숙표)가 들어선 뒤 양쪽 사이에서 조금씩 의견의 균열을 보이더니 급기야 시민위원회 역사문화분과(위원장 김영주) 위원들이 지난 7월 성명서를 내고 전원 사퇴를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또 경실련·문화연대·환경연합 등 12개 시민단체들은 지난 8월 ‘올바른 청계천 복원을 위한 연대회의’(청계천연대)를 구성해 서울시의 일방적인 복원에 대한 견제에 나섰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서울시는 복원 초기부터 현재 제자리에 있는 광통교는 뜯어서 경희궁이나 박물관 등으로 옮겨 복원하며, 현재 장충단 공원에 있는 수표교는 그대로 두고 제자리에 옮겨 복원하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유지해왔다. 쉽게 말하면 복원되는 청계천의 원위치에 광통교와 수표교를 원형대로 복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 데는 교통 원활과 홍수 방지, 문화재 보호 등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교통 문제는 광통교를 현재의 광교 네거리의 원래 위치에 제대로 복원할 경우 현재 10차로인 남대문로를 절반인 4∼6차로 정도로 줄여야 하므로 이 일대에 상당한 교통 혼잡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둘째, 홍수 방지를 위해 현재의 청계천을 더 깊거나 넓게 팔 계획인데, 이 경우 두 다리의 길이나 높이가 새 하천 단면에 맞지 않아 여기에 다리를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광통교나 수표교를 서울 도심 한복판에 복원할 경우 진동, 소음, 오염된 공기로 인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역사·문화 복원을 담당하는 서울시 추진본부 안준호 과장은 “문화재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두 다리가 도심의 청계천상에 그대로 놓이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며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고 좀더 잘 보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과장은 “가장 바람직하고 타당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문화재 전문가들로 이뤄진 자문회의, 지도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위원회는 이 세 가지가 타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반박한다. 역사문화분과 간사인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자동차를 중심에 놓는가 아니면 인간을 중심에 놓는가에 따라 교통 문제는 전혀 달라진다”며 “하천 단면을 일방적으로 바꾸고 거기에 안 맞으니 원래 있던 다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도 완전히 앞뒤가 뒤집힌 논리”라고 비판했다.
역사문화분과 위원장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도 “일제 시대부터 박정희 시대까지 전차 선로와 콘크리트·아스팔트에 짓눌린 광통교, 또 장충단 공원으로 내버려진 수표교에게 청계천 복원과 함께 제자리를 찾아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역사 앞에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며 “엄연히 제자리가 있는 다리를 뜯어서 연고도 없는 박물관이나 공원으로 옮기는 것은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와 정신을 죽이는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이런 비판을 무릅쓰고 광통교·수표교 복원을 회피하려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전북 익산의 미륵사터 석탑 하나를 해체·복원하는 데 무려 10년의 시간이 든다”며 “서울시는 시굴·발굴이나 옛 다리 복원에서 생길 수 있는 시간과 비용 문제를 2005년 9월 복원사업 완공이라는 목표의 걸림돌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태도는 청계천을 복개하고 그 위에 고가도로를 건설하던 시절의 사고 방식이나 행태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경복궁 등지로 옮겨야 문화재 보호인가
현재 실측과 안전진단, 시굴 조사가 진행 중인 이 두 다리의 운명은 최종적으로 문화재위원회에서 결정된다. 국가문화재로 지정될 광통교는 중앙문화재위원회, 서울시 문화재인 수표교는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서 원형·원위치 복원 여부와 방식을 결정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두 문화재위원회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광통교·수표교를 청계천이 아닌 다른 곳에 두기로 결정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시민위원회나 시민단체들은 수표교의 경우 시 문화재위원회에 서울시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광통교의 경우는 중앙문화재위원회에서 원형·원위치 복원을 결정할 것을 바라고 있다. 두 다리에 대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는 실측과 안전진단 등이 마무리되는 12월 이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광통교·수표교는 수십년 만에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청계천에서 돌아올 수 있을까?
김규원 · 송창석 기자/ 한겨레 che@hani.co.kr

사진/ 청계천 복원은 콘크리트 아래에서 신음하는 광통교에 숨통을 틔울 건가. 광교 네거리에서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있다.(김진수 기자)
그리고 1년8개월 뒤인 2003년 10월23일. 다시 청계천1가 광교 네거리. 이명박 시장이 광교 해체·복원 공사 현장에 나와 현장 소장에게 물었다. “여기 중요한 상판은 어떻게 됐죠?” “예, 교각은 그대로 남아 있고….” 현장 소장이 설명하려 하자, 시장이 다시 물었다. “아, 중요한 상판 말이에요. 그게 다 사라져버린 거죠?” “예.”

사진/ 광통교 모형.(김진수 기자)

사진/ 수표교에게 제자리를 찾아줘라! 현재 수표교는 장충단 공원에 옮겨져 있다.(김진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