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체들 시장 독점 내세워 수익에 혈안… 정부의 어설픈 정책에 치료 혜택 못 받기도
요즘 30대 중반의 회사원 윤아무개씨는 억장이 무너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을 전전하던 딸이 종합병원에서 유전성 티로신혈증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병은 전 세계적으로 환자 수가 수백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발병률이 낮은 ‘희귀질환’(Orphan Drug)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 병에 걸리면 ‘최하가 사망’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심지어 태어난 지 하루 만에 간과 신장이 파괴돼 사망하기도 한다. 신생아가 유전성 티로신혈증으로 목숨을 잃어도 사망원인을 밝혀내기 힘들다. 그러나 신생아 검사에서 이 병에 관련된 항목은 빠져 있다.
신약이 나와도 손을 쓸 수 없는 사람들
유전성 티로신혈증 환자들은 단백질 함량을 낮춘 식이요법으로 티로신이 독성물질로 바뀌는 것을 막는 게 치료법이었다. 이 역시 티로신 섭취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기에 질병 자체를 치료하지는 못했다. 최선의 방법인 간이식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식이요법을 하더라도 20살을 넘기기 힘들었다. 그런데 지난해 ‘오르파딘’(Orfadin)이라는 약물이 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으면서 유전성 티로신혈증 환자들에게 한줄기 햇살이 비쳤다. 애당초 제초제로 개발된 오르파딘은 간을 파괴하는 독소의 생성을 차단해 치료효과를 높인다. 이 약물을 신생아에게 투여할 경우 4살 이상까지 생존할 비율이 88%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전성 티로신혈증 환자들은 오르파딘을 복용하기 쉽지 않다. 오르파딘의 제조사인 희귀병써라퓨틱사는 돈이 없어 약을 복용하지 못하는 소아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정은 간단치 않다. 미국에서 7살 소녀 대니얼 바켓이 오르파딘으로 생명의 끈을 부여잡는 데 들어가는 돈이 1년 동안 8만8천달러(1억여원)나 된다. 미국에서는 국립희귀장애기구(NORD)에서 오르파딘을 저렴하게 공급하려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방침이다. 그런 혜택이 윤씨에게 돌아갈 리 없다. 국내에선 오르파딘을 구입하기조차 쉽지 않다. 국내 시판 허가를 받지 않은 약품이기에 한국희귀의약품센터(www.kodc.or.kr) 등 자가치료용 의약품 추천기관을 이용해야 한다. 정부 지원이 따르는 희귀난치성 질환에 포함되지 않아 적어도 약값의 절반을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현재 아무런 치료법이 없는 희귀질환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무려 5천여개에 이른다. 국내에는 50만여명의 환자들이 희귀질환을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혈우병, 고셰병, 근육병, 다발성경화증 등 8개 질환 환자들의 본인 부담금을 지원하고, 8대 질환을 포함한 51개 질환에 대한 보험 진료비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희귀질환에 대한 정의마저도 제대로 내려지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희귀의약품센터 구현민 정보관리팀장은 “우리나라에서 희귀질환은 2만명 이하의 사람들이 앓고 있는 질병이라는 게 전부다. 의료계에서도 희귀질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치료를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베체트병 환자에게 신경을 많이 써서 입 안 궤양이 생기고 영양상태가 안 좋아 실명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진단을 내리는 실정이다. 국내에서 희귀질환을 앓게 되면 치료약을 복용하기까지 숱한 난관을 거쳐야 한다. 희귀질환 환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이미 승인된 약물을 사용하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고, 질환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도 얻기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환자들이 직접 동호회를 꾸려 권리를 찾기도 한다. 그동안 희귀질환 환우회는 비보험약의 보험 적용, 의료비 지원사업 적용, 요양급여일수 확대 등을 위해 애썼다. 지난 2001년에 결성돼 40여개 환우회가 함께 활동하는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www.kord.or.kr) 신현민 회장은 “현재 국내에서 데이터베이스화가 이뤄진 희귀질환은 51개뿐이다. 의료비 지원은 이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수천개의 질환은 고가의 약제가 개발되어도 정부의 혜택을 받기 어렵다”고 말한다. 희귀질환자들에게 의약품은 마지막 생명줄이다. 하지만 환자들이 생명줄에 의지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리소좀 안에 저장된 효소 글리코리피드가 쌓여 혈관벽이 좁아지고 혈액이 줄어들어 신장이나 안구 등이 망가지는 패브리병 환자들은 치료약을 그림의 떡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미국의 생명공학기업 젠자임사가 개발한 치료약 ‘패브리자임’(Fabryzyme)을 1년 동안 복용하려면 2억5천여만원이 들어간다.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환자부담금이 1억여원이다. 문제는 일정 기간 동안 약을 복용해도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치료약을 평생 복용해야 하기에 장기가 손상되어도 속수무책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희귀질환 치료약이 다양하게 구비된 것도 아니다. 제약업체들은 시장이 작다는 이유로 희귀 의약품 생산을 꺼린다. 하나의 약품이 시장에 출시되는 데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게 다반사다. 제약업체들이 수십만명의 환자를 보고 치료약을 개발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까닭에 어떤 기업은 투렛증후군의 유일한 치료제로 쓰이던 항정신병 약물 ‘피모자이드’(Pimozide) 생산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심지어 간부전과 중추신경계 기능장애를 일으키는 윌슨병과 갑작스런 근육 문제를 일으키는 간대성근경련 치료제 ‘5-하이드록시트립토판’(5-hydroxytryptophan)이나 어린이들의 신장이나 눈을 손상시키는 시스틴축적증 치료제 ‘시스테아민’(cysteamine) 등은 판매 이익이 남지 않아 생산이 중단되기도 했다. 수익 없으면 생산 중단… 환자에 희망을 희귀의약품이 제약업체를 먹여 살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의 생명공학기업 암젠사가 개발한 악성 빈혈치료제 ‘에포젠’(Epogen)은 효자상품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 약품은 말기 신부전증 환자의 빈혈 치료를 위해 개발돼 상업성을 의심받았다. 하지만 미국의 희귀의약품법에 따라 ‘7년간 시장 마케팅 독점권’을 얻고 에이즈와 암 치료제로 폭넓게 쓰이면서 암젠사에 연간 수십억달러의 수익을 안겨주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1천여개가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희귀의약품법을 제정한 1983년부터 1억5천만달러 이상을 연구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국내에서는 희귀의약품 개발이 전무한 실정에서도 대웅제약이 당뇨성 족부궤양 치료제 ‘이지에프’(EGF·상피세포성장인자)를 개발해 상처로 인해 발을 절단해야 하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었다. 희귀의약품은 제약업체에 황금알을 안겨줘야 하는 것일까. 최근 불치병에 걸린 딸의 인공호흡기를 뗄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제약업체들의 수익논리로 귀결된다. 300억원에도 미치지 않는 정부의 희귀난치병 지원 예산을 희귀의약품 개발업체들이 싹쓸이한다면 다수의 환자들은 혜택을 볼 수 없다. 제약업체들은 7년 독점권을 내세워 약값 인하 요인을 거부하기도 한다. 젠자임사의 고셰병 치료제 ‘세레자임’(Cerezyme)의 경우 연간 약값이 1억원이나 된다. 개발 당시 이 약은 인간 태반에서 성분을 얻었지만 지금은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저렴하게 생산한다. 그럼에도 약값은 그대로다. 지금 희귀질환자들은 터무니없는 약값에 생명줄이 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정부가 희귀질환자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사진/ 희귀질환자들은 진단에서 치료까지 온갖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부신백질이영양증’을 앓는 어린이가 힘겹게 병마와 싸우고 있다.(한겨레 윤운식 기자)
하지만 유전성 티로신혈증 환자들은 오르파딘을 복용하기 쉽지 않다. 오르파딘의 제조사인 희귀병써라퓨틱사는 돈이 없어 약을 복용하지 못하는 소아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정은 간단치 않다. 미국에서 7살 소녀 대니얼 바켓이 오르파딘으로 생명의 끈을 부여잡는 데 들어가는 돈이 1년 동안 8만8천달러(1억여원)나 된다. 미국에서는 국립희귀장애기구(NORD)에서 오르파딘을 저렴하게 공급하려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방침이다. 그런 혜택이 윤씨에게 돌아갈 리 없다. 국내에선 오르파딘을 구입하기조차 쉽지 않다. 국내 시판 허가를 받지 않은 약품이기에 한국희귀의약품센터(www.kodc.or.kr) 등 자가치료용 의약품 추천기관을 이용해야 한다. 정부 지원이 따르는 희귀난치성 질환에 포함되지 않아 적어도 약값의 절반을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현재 아무런 치료법이 없는 희귀질환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무려 5천여개에 이른다. 국내에는 50만여명의 환자들이 희귀질환을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혈우병, 고셰병, 근육병, 다발성경화증 등 8개 질환 환자들의 본인 부담금을 지원하고, 8대 질환을 포함한 51개 질환에 대한 보험 진료비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희귀질환에 대한 정의마저도 제대로 내려지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희귀의약품센터 구현민 정보관리팀장은 “우리나라에서 희귀질환은 2만명 이하의 사람들이 앓고 있는 질병이라는 게 전부다. 의료계에서도 희귀질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치료를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베체트병 환자에게 신경을 많이 써서 입 안 궤양이 생기고 영양상태가 안 좋아 실명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진단을 내리는 실정이다. 국내에서 희귀질환을 앓게 되면 치료약을 복용하기까지 숱한 난관을 거쳐야 한다. 희귀질환 환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이미 승인된 약물을 사용하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고, 질환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도 얻기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환자들이 직접 동호회를 꾸려 권리를 찾기도 한다. 그동안 희귀질환 환우회는 비보험약의 보험 적용, 의료비 지원사업 적용, 요양급여일수 확대 등을 위해 애썼다. 지난 2001년에 결성돼 40여개 환우회가 함께 활동하는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www.kord.or.kr) 신현민 회장은 “현재 국내에서 데이터베이스화가 이뤄진 희귀질환은 51개뿐이다. 의료비 지원은 이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수천개의 질환은 고가의 약제가 개발되어도 정부의 혜택을 받기 어렵다”고 말한다. 희귀질환자들에게 의약품은 마지막 생명줄이다. 하지만 환자들이 생명줄에 의지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리소좀 안에 저장된 효소 글리코리피드가 쌓여 혈관벽이 좁아지고 혈액이 줄어들어 신장이나 안구 등이 망가지는 패브리병 환자들은 치료약을 그림의 떡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미국의 생명공학기업 젠자임사가 개발한 치료약 ‘패브리자임’(Fabryzyme)을 1년 동안 복용하려면 2억5천여만원이 들어간다.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환자부담금이 1억여원이다. 문제는 일정 기간 동안 약을 복용해도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치료약을 평생 복용해야 하기에 장기가 손상되어도 속수무책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희귀질환 치료약이 다양하게 구비된 것도 아니다. 제약업체들은 시장이 작다는 이유로 희귀 의약품 생산을 꺼린다. 하나의 약품이 시장에 출시되는 데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게 다반사다. 제약업체들이 수십만명의 환자를 보고 치료약을 개발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까닭에 어떤 기업은 투렛증후군의 유일한 치료제로 쓰이던 항정신병 약물 ‘피모자이드’(Pimozide) 생산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심지어 간부전과 중추신경계 기능장애를 일으키는 윌슨병과 갑작스런 근육 문제를 일으키는 간대성근경련 치료제 ‘5-하이드록시트립토판’(5-hydroxytryptophan)이나 어린이들의 신장이나 눈을 손상시키는 시스틴축적증 치료제 ‘시스테아민’(cysteamine) 등은 판매 이익이 남지 않아 생산이 중단되기도 했다. 수익 없으면 생산 중단… 환자에 희망을 희귀의약품이 제약업체를 먹여 살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의 생명공학기업 암젠사가 개발한 악성 빈혈치료제 ‘에포젠’(Epogen)은 효자상품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 약품은 말기 신부전증 환자의 빈혈 치료를 위해 개발돼 상업성을 의심받았다. 하지만 미국의 희귀의약품법에 따라 ‘7년간 시장 마케팅 독점권’을 얻고 에이즈와 암 치료제로 폭넓게 쓰이면서 암젠사에 연간 수십억달러의 수익을 안겨주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1천여개가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희귀의약품법을 제정한 1983년부터 1억5천만달러 이상을 연구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국내에서는 희귀의약품 개발이 전무한 실정에서도 대웅제약이 당뇨성 족부궤양 치료제 ‘이지에프’(EGF·상피세포성장인자)를 개발해 상처로 인해 발을 절단해야 하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었다. 희귀의약품은 제약업체에 황금알을 안겨줘야 하는 것일까. 최근 불치병에 걸린 딸의 인공호흡기를 뗄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제약업체들의 수익논리로 귀결된다. 300억원에도 미치지 않는 정부의 희귀난치병 지원 예산을 희귀의약품 개발업체들이 싹쓸이한다면 다수의 환자들은 혜택을 볼 수 없다. 제약업체들은 7년 독점권을 내세워 약값 인하 요인을 거부하기도 한다. 젠자임사의 고셰병 치료제 ‘세레자임’(Cerezyme)의 경우 연간 약값이 1억원이나 된다. 개발 당시 이 약은 인간 태반에서 성분을 얻었지만 지금은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저렴하게 생산한다. 그럼에도 약값은 그대로다. 지금 희귀질환자들은 터무니없는 약값에 생명줄이 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정부가 희귀질환자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