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표 드라마 <나는 달린다>에 마니아 집결… 신인 배우 내세워 살아 있는 캐릭터 구축
새 드라마 <나는 달린다>(문화방송, 수·목 방영)가 첫 전파를 탔다. 지난해 <네 멋대로 해라>로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감성코드를 구현해낸 박성수 PD의 작품이다. 전작이 전형적인 구도에서 탈피한 참신한 시도로 열광적인 마니아층을 이끌어내며 호평을 받았던 만큼 이번 작품에도 기대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는 달린다>에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 도시 빈민의 눈으로 세상보기, 서로 다른 계층의 충돌과 조화 등 기존 박성수 드라마의 특징이 변함없이 이어진다. 다만 <네 멋대로 해라>가 죽음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처한 젊은이가 어떻게 세상과 삶에 대응하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은 순수한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로 풀어나간다. 이 시대 젊은이들의 다양한 자화상이 배어 있는 여러 캐릭터가 <나는 달린다>의 기본 동력인 셈이다.
‘내 멋’의 사랑법을 업그레이드
달리기와 책읽기로 삶의 여백을 채워나가는 용접공 무철(김강우)이 잘 짜인 시간표 같은 인생을 걸어가던 사진기자 지망생 희야(채정안)를 만나면서 서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려나가는 것이 뼈대다. 무철에게 달리기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달리기를 통해 내일로 나아갈 힘의 원천을 부여받고, 책읽기로 몽상의 공간을 쌓아나가며, 용접이라는 일로 현실의 시간을 꾸려나가는 무철은 분명 일반적 드라마의 주인공과는 다른 색다른 캐릭터다. 희야는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실패를 모르고 살아왔으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통제권은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당찬 젊은이. 처음에 호기심으로 무철에게 접근했다가 점차 순수한 그의 모습에 이끌려 새로운 사랑을 꽃피워 나가게 된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도 등장한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을 지닌 젊은 남녀의 사랑 공식이 이어지는 접점이다.
이외에 무철의 동생으로 세상에 대한 반항심이 가득한 상식(에릭), 독립영화 감독인 희야의 오빠 희천(김정현), 희야를 좋아하는 외과 레지던트 의섭(이종수),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인생을 즐기는 소녀 영지(김은주) 등이 <나는 달린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이들 사이의 사랑의 화살표 또는 갈등관계가 종으로 횡으로 엇갈리는 이야기도 드라마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해체된 가족관계 속에서 무철이 동네 할머니와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휴머니즘의 현대적 변용, 실제 가족관계보다 이후의 만남에서 만들어지는 연대와 가족애가 더욱 중요하다는 목소리의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게 실려나갈 예정이다.
그러나 기존의 드라마와는 다른 새로운 면모를 선보이기 위해선 단순히 캐릭터의 직업이 기존 드라마와 다르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드라마의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캐릭터의 모습을 시청자가 눈으로 좇아가도록 만들어보자는 의도를 실현시키기 위해선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택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최고의 궁합을 보여줬던 인정옥 작가와 양동근, 이나영이라는 쉬운 길을 걷지 않고 신인작가와 배우라는 무리수를 택한 것은 박성수 PD 나름의 고심의 결과였을 것이다. 어찌 보면 파격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이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단정지어 말하긴 힘들다.
사회적 약자에 관심… 흥행코드 이탈
박성수 PD는 무철이라는 캐릭터에 애정이 많다고 했다. 개인적 경험도 많이 투영되어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애정이 깊은 만큼 캐릭터의 색깔을 확실하게 낼 수 있는 양동근을 캐스팅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을까 하지만 박 PD는 “그랬다면 무철은 안 보이고 복수만 보이지 않았을까 <나는 달린다>가 <네 멋대로 해라>의 아류나 후속으로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로 연기 경험이 없는 신인 김강우를 캐스팅한 이유를 밝혔다. 또한 “무철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엉뚱한 캐릭터다. 김강우가 너무 심각하고 무거운 캐릭터로 연기하고 있어서 더 가볍게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기존의 흥행코드를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청률은 상관없다는 뜻일까 박 PD는 “중요한 것은 대중들과의 교감이다. 시청률은 10%만 나와도 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느냐보다 본 사람들이 볼 만한 드라마라고 평가해주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니냐”며 자신의 소신대로 드라마를 만들어보겠다는 강한 신념을 드러냈다. 통상의 스타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아야 비로소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가 살아날 수 있다는 고집은 박 PD의 이러한 신념에서 뻗어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달린다>의 첫 주 방송이 나가고 시청자의 반응은 다양했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보여줬던 힘이 사라져서 실망스럽다는 의견과 더불어 다시 한번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박 PD에게 지지를 보내는 글도 프로그램 인터넷 게시판에 많이 올라왔다. 아직 방영 초기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오는 시행착오라고 볼 수 있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달린다>의 새로운 시도가 불안요소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살아 있는 캐릭터를 보여주겠다는 욕심은 배우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장 노동자의 삶과 희망을 그림으로써 사회적 소외지점에 대한 시선을 부각시키려고 한 주제의식을 드러내려는 노력도 쉽지만은 않다고 박 PD는 말한다. 박 PD는 “가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에서 노동자 등 소외된 사람들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너무 관념에 집착해서 단순하게 생각하고 접근한 것 같다. 시청자가 불편해한다면 그 의도는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설득력 있게 재미있게 만들어볼 것”이라고 첫걸음에 대한 평을 스스로 내렸다.
다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건가
화면의 투박함과 아직 각자의 배역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해 겉도는 것처럼 보이는 연기, 뚜렷한 대립점이 없는 데서 오는 극적 효과의 부재 이외에도 <나는 달린다>가 해결해야 할 어려움은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경희 작가의 역량이 점차 제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라 하고,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남자주인공 무철 역의 김강우 역시 신인답지 않은 차분함으로 극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밝은 기대를 가지게 한다. 드라마의 중심도 캐릭터의 성격을 더욱 살리기 위해 무철과 희야의 연애담에서 살짝 비켜나 무철·상식 형제쪽에 더 힘이 실릴 예정이라고 한다. 박 PD는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톰 소여는 엉뚱하지만 제도 안에서 미래와 꿈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고, 허클베리 핀은 아예 제도 밖에 있는 인물이다. 무철은 톰 소여, 상식은 허클베리 핀인 셈이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인물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적응하고 살아가는지를 그려보려고 한다”고 말해 드라마의 새로운 대립축을 이끌어내 보겠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나는 달린다>가 <네 멋대로 해라>의 영광을 그대로 이어받아 다시 한번 드라마의 새로운 전기를 열어낼지, 아니면 실패한 시도로 머무를지는 아직 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의 척박한 토양 위에서 기존 틀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시도는 그 자체로 평가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이제 막 스타트 라인을 출발한 <나는 달린다>의 앞으로의 질주를 꾸준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피소현 기자 | 스카이라이프 plavel@hani.co.kr

달리기와 책읽기로 삶의 여백을 채워나가는 용접공 무철(김강우)이 잘 짜인 시간표 같은 인생을 걸어가던 사진기자 지망생 희야(채정안)를 만나면서 서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려나가는 것이 뼈대다. 무철에게 달리기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달리기를 통해 내일로 나아갈 힘의 원천을 부여받고, 책읽기로 몽상의 공간을 쌓아나가며, 용접이라는 일로 현실의 시간을 꾸려나가는 무철은 분명 일반적 드라마의 주인공과는 다른 색다른 캐릭터다. 희야는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실패를 모르고 살아왔으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통제권은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당찬 젊은이. 처음에 호기심으로 무철에게 접근했다가 점차 순수한 그의 모습에 이끌려 새로운 사랑을 꽃피워 나가게 된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도 등장한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을 지닌 젊은 남녀의 사랑 공식이 이어지는 접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