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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새/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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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0-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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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파고드는 맥시밀리언 해커>

점점 많은 ‘위안’을 부지런히 사는데도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첨단의 도시 베를린에서 온 싱어송라이터 맥시밀리언 해커는 그 외로움을 너무나 솔직하게 쏟아내는 서정적이고 슬픈 사랑 노래로 가슴을 쿡쿡 찔러댄다.

‘주문을 외우며 그 상처의 치유를 꿈꾸는 음악’ ‘몽환적 음색에 실린 젊은 날의 우울한 독백’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떠돌던 그의 첫 앨범 <인피니트 러브 송스>(2001)와 두 번째 앨범 <로즈>(2003)가 한꺼번에 국내에 발매됐다.

“내가 뭔가를 말하면 사람들은 늘 웃어버린다. 내가 심각할수록 더 웃는다. 하지만 내가 노래하면 대부분 조용해지고 들어야만 하는 분위기가 된다. 물론 다 들어야만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나가버릴 수도 있겠지만”이라고 말하는 이 수줍고 소심한 젊은이는 동네 슈퍼마켓의 어두침침한 구석에서 오아시스(Oasis)의 커버곡을 연주하고, 무명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음악을 키웠다. 그는 자신의 음반에서 연주와 작사, 엔지니어링과 프로듀싱까지 직접 맡는다. 영미 포크의 서정성과 고전적인 연주를 담은 그의 음악은 무엇보다도 힙합이나 애시드재즈 같은 최신 유행 음악에서 리듬에 눌렸던 선율의 힘을 재발견하게 해준다. 편안하고 익숙한 듯하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잘 짜인 음들의 배치는 강력한 힘이 있다. 특히 “다수의 ‘그들’과 소통할 수 없는 소외감을 드러내는 가사는, 복병처럼 삶의 곳곳에 매복한 상처에 민감한 젊은 날의 일기와 같다.”

‘끝없는 사랑 노래’라는 ’촌스런’ 제목을 달고 있는 첫 음반 <인피니트 러브>는 소박하게 편성된 곡들과 차분하면서도 섬세한 선율이 그의 미성과 묘하게 결합돼 있다. 자조적인 가사, 넘실대는 피아노와 쟁글거리는 기타와 함께 무엇을 갈구하는 듯한 그의 고음은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특히 그의 기타와 피아노 연주는 흔들리고 머뭇거리면서 마음을 뒤흔든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 차디찬 얼음이 흩날려. 빛은 푸르게 갈망하고 내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지.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어”(<콜드 윈드 블로윙>) 같은 가사에 흐르는 것은 독일이나 한국이나 뉴욕의 구분 없이 소외됐다고 느끼는 우울한 도시 젊은이들의 정서를 정확하게 파고든다. “내가 악물고 있는 그 모든 슬픔, 사랑을 향한 그 모든 질주. 아니야, 넌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너의 사랑스러운 눈길은 더 이상 나를 향하지 않아”(<플라워 포>) 같은 사랑 노래 역시 ‘남성적’ 표현방식을 뛰어넘는다.

두 번째 앨범 <로즈> 역시 로맨티시즘의 극단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음반, 서정성은 여전하지만 댄스리듬이나 전자음악의 다양한 효과 등으로 더욱 풍성한 음을 들을 수 있다. 아무런 가사도 없이 반복되는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드럼이 울린 뒤에 사랑이 끝나가는 7일 동안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케이트 모스>부터 “내가 비틀거리는 게 들려, 친구들 …떠나는 것만이 내게 남은 선택, 날 위에 울어줄 거야”라고 묻는 <마이 프렌즈>를 지나 새롭게 부르는 레디오헤의 <크립>까지 자아와 사랑, 소통의 상실에 대한 가사와 그것을 절절하게 표현하는 음들은 풍성한 느낌을 담고 있다. 파스텔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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