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많이 읽는 사람들이 있다. 독서중독자(bibliobibuli)들이다. 사람들이 술이나 종교에 취하듯, 그들은 책에 계속 취해 있다.”(H. L. 멘켄)
현기증, 분노, 의기소침…
책을 읽는 건 훌륭한 일이라는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독서중독에도 나쁜 면이 있다.
어떤 사람이 차를 몰고 가다 사고를 냈다. 평소 조심운전을 하던 사람인지라 주변에선 왜 사고가 났을까 궁금했다. 그가 설명하기를 ‘언덕 굽잇길을 도는데 입간판이 하나 서 있었다. 그런데 운전석에 앉은 자세로는 간판 글씨가 보이지 않아 몸을 슬몃 일으켰더니 순간 차가 언덕 아래로 굴렀다’는 거였다.
“그 간판에 뭐라고 써 있었는데?”
“일어서면 위험함.” 독서중독의 위험을 풍자한 이야기인데, 똑같지는 않아도 글자가 있으면 일단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나도 종종 불편을 겪는다.
한때 대여섯 종류의 신문을 한꺼번에 보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커피를 마시며 들어온 신문들을 대충 훑어보는데, 그 때문에 하릴없이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가곤 하는 거였다. 그 신문 중엔 내 의견과 상반되는 논조를 가진 신문이 있어 읽을 때마다 울화통이 터지는데다, 내용도 대충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많아, 늘 시간이 아깝다 아깝다 하면서도 어쩌지를 못했다.
“그게 바로 아줌마 근성이야. 음식이 남으면 아깝다고 꾸역꾸역 먹고 탈나는 거하고 같은 거야.”
주변에선 그렇게 놀렸다.
인터넷, 휴대전화, TV. 이 세 가지 매체 때문에 문자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영상이 문자를 밀어내 이젠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러면서 독서를 하지 않기 때문에 문화적인 위기를 맞았다, 출판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논조를 펼친다. 그럼에도 요즘처럼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도 없지 않을까 싶다. 황혼이라서 더 번쩍거리는 셈인가? 읽을거리가 하도 정신없이 쏟아져서 홍수에 휩쓸린 것처럼 정신을 못 차리겠다는 기분이다.
아침마다 맞던 신문의 홍수에선 이사를 단행해 벗어났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읽어야 할 것들에 치인다는 기분에선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변엔 늘 읽어야 할 뭔가가 쌓여간다. 어쩌다 한번씩 정리하지 않으면 서재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질 정도로 책이 쌓여버린다. 두번은 읽지 않을 책부터 잡지며 갖가지 단체의 기관지, 증정본들…. 그러나 무엇보다도 치일 정도로 책이 넘쳐나는구나 하고 느끼게 만드는 첫 번째는 내가 산 책이 전에 읽은 책의 표지와 제목만 바꾼 경우이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서 그런 경험은 더욱 늘어난다. 그럴 때마다 책을 부치라느니, 그냥 다른 이를 주고 말겠다느니, 환불하라느니 하여 번거로울뿐더러, 왜 원래 제목과는 다르게 이런 제목이 붙었을까 궁금해하느라 심란해진다. 두 번째는 근사한 서평이며 선전을 보고 샀는데 읽은 시간과 책값이 아까울 정도로 내용이 없거나 결국 다른 책들을 짜깁기한 경우이다. 게다가 장정까지 고급 하드커버가 유행이고 보면 현기증, 분노, 세상이 말세라는 의기소침. 내 기분은 그런 순서를 밟느라 정신 못 차린다. 나도 책 읽어주는 로봇을 하나 거느리고 싶다.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은 다음 읽을 만한 책 리스트를 만들어주는 그런 로봇 말이다.
게다가 요즘은 어디를 가든 자신의 책을 써보겠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누구나 다 뭔가를 쓰려고 하거나 쓰고 있는 중으로 보인다. 쓰기를 원하는 만큼 읽기도 한다면-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게 널리 알려진 글쓰기 비법이다- 책이 안 팔린다, 독서를 안 한다, 는 말이 나올 리가 없는데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잉크가 아닌 피로 써라
이처럼 지구상의 나무란 나무는 다 펄프가 되어 책으로 만들어졌을 것처럼 읽을거리가 넘쳐나 발에 툭툭 차이고 있다.
그래서 더 안 읽지 않는 풍조가 횡행하는지도 모른다. 안병무 박사의 유훈이 생각난다.
‘쓸데없는 책을 자꾸 써서 후학들을 괴롭히지 말라.’
또 니체의 경구도 있다. ‘책은 잉크가 아닌 피로 쓰라.’
말도 글도 정선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캐비아가 맛보다는 희귀함 때문에 누구나 맛보고 싶어하는 고급음식이 된 것처럼, 읽을거리도 흔하게 나돌아 천대받지 않도록, 필요한 말을, 규모 있게 펼치는 소박한 정신을, 읽을거리를 공급하는 입장에서도 한번쯤 되새겨볼 때가 아닌가 싶다.
“일어서면 위험함.” 독서중독의 위험을 풍자한 이야기인데, 똑같지는 않아도 글자가 있으면 일단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나도 종종 불편을 겪는다.

일러스트레이션 | 이우만

이남희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