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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주가 떨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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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0-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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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기 이용한 태양계 탐사선 개발 움직임… 폭발 위험 높고 군사 목적으로 활용할 수도

유로파는 지구에서 6억km 떨어진 목성의 위성이다. 화성보다 10배나 먼 거리다. 이 위성이 관심을 모으는 것은 온도가 -130℃인 표면에 얼음 균열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표면 아래에 액체상태의 물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만일 물이 있다면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태양계 탐사에 나선 미 항공우주국(NASA)은 유로파의 궤도에서 고해상도 카메라와 레이더 스캐너로 대양을 탐사해 생명체의 흔적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유로파에 탐사선을 보내려면 재래식 로켓보다 훨씬 빠른 추진체가 필요하다. 이를 해결하려는 방법이 바로 ‘원자로켓’(atomic rocket)이다. 다시 말해 핵을 이용해 태양계를 탐사하는 것이다.

▷ 태양계 탐사선에 핵이 탑재되고 있다. 이온추진기로 작동하는 달 탐사선 ‘스마트 1호’(위)와 핵발전기를 이용할 유로파 탐사선(아래)의 활동 모습을 담은 상상도.

유로파 탐사를 위한 프로젝트 임박

이미 원자로켓을 이용한 태양계 탐사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미국은 내년부터 5년 동안 원자로켓 개발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에 30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나사에서 개발할 원자로켓은 커다란 원통을 여러 개 겹친 모습으로 원통에 핵연료를 넣는다. 이때 핵분열이 일어나 전기를 띤 입자들이 분사구로 배출되어 광속의 3%에 이르는 속도를 낸다. 여기에 가속장치를 달면 광속의 12%까지 도달할 수 있다. 목성의 얼음위성 궤도탐사선(JIMO) 개발에 참여하는 케임브리지대학 천문학자 폴 머딘 박사는 “핵발전기만이 유로파 탐사선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머지않아 쓰레기통 크기의 핵발전기를 이용한 탐사선이 유로파 궤도에 진입해 대양을 탐사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원자로켓이 태양계 탐사에 나서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둘이 아니다. 우선 핵발전기에 사용할 핵연료가 마땅치 않다. 현재 주목받는 핵연료는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서 빠른 반감기를 가진 아메리슘(americium)이다. 아메리슘 242m는 1㎛(마이크로미터, 10-6m) 정도의 아주 얇은 금속막 형태로도 핵 연쇄반응을 지속적으로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이 물질의 임계질량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아 소형 핵발전기를 만드는 데 유리하다. 만일 아메리슘으로 핵발전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 화학추진 연료로 8개월에서 10개월 정도가 걸리는 화성까지의 비행시간을 단 2주일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아메리슘 242m을 얻는 공정이 확립되지 않았고, 핵반응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누출되는 등 안전성을 의심받고 있다.

이런 까닭에 나사의 태양계 탐사 계획은 지구를 위협하는 핵의 공포를 우주공간으로 확장한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우주를 향하는 사람들은 골드러시를 꿈꾸는 게 사실이다. 우주공간의 생명체 탐사 역시 신천지를 찾으려는 정복자의 야망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우주궤도에 핵물질을 올려놓는 것은 무분별한 탐사욕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주공간에서 핵무기에 반대하는 지구적 네트워크’(www.globenet.free-online.co.uk) 활동가들은 우주를 향한 원자로켓에서 비롯될 대재앙을 경고한다. “핵의 평화적 이용은 슬로건에 지나지 않는다. 원자로켓으로까지 우주를 탐사할 이유가 없다. 원자로켓을 지구 밖으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한 대재앙을 누가 감당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비판이 거세도 우주 개발에 사활을 건 나사가 원자로켓 개발 프로젝트를 포기할 리 없다. 그동안 나사는 우주시대 개막을 위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48억달러 이상을 지출한 우주 로켓 개발의 결실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캘리포니아 모하비사막에 버려진 6층 건물 높이의 우주선 로턴(Roton)과 우주 왕복선 X-33 몸체 일부가 고작이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로켓 개발은 생각 이상으로 난해하다는 것.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선은 전체 우주선 무게의 10배에 이르는 연료탱크를 실어야 했다. 이렇듯 교착 상태에 빠진 우주 시대를 나사는 원자로켓에 의한 태양계 탐사로 돌파하려고 한다. 일부에서 원자로켓에 대해 사양길에 접어든 원자력과 갈림길에 선 우주개발의 ‘잘못된 만남’으로 조롱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원자로켓의 핵발전기는 정말로 대재앙을 예고하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핵발전기에 대해 단지 새로운 로켓추진장치 시스템인 이온추진기(Ion drive)에 전력을 공급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이온추진기는 가스 입자들을 뿜어내는 장치로 수년 동안 작동한다. 여기에서 약 3만6천mph 정도인 초당 10마일 이상의 속도가 나온다. 지난 9월27일 발사된 유럽연합의 달 탐사선 ‘스마트 1호’(Smart 1)에도 이온추진기가 장착됐다. 이 이온 엔진은 태양발전기에서 나오는 전기로 추진된다. 물론 화성 너머에 있는 깊은 우주공간의 약한 태양빛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없다. 그래서 핵발전기로 이온추진기의 한계를 돌파한다는 것이다.

핵배터리 이미 사용… 우주의 파멸 오는가

핵 공포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핵발전기의 가공할 만한 폭발력을 우려한다. 이온추진기보다 폭발력이 훨씬 크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나사에서 태양계 탐사 원자로켓 발사 시기를 2011년 이후로 잡은 것도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주공간의 핵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미 외계 행성을 탐사하는 우주선에 핵배터리가 장착돼 있다. 핵배터리는 플루토늄으로 싸인 캡슐로 만들어져 열을 전기로 바꾼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외계 탐사선에 핵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유럽우주기구(ESA)는 지난 1997년에 발사돼 내년 7월에 도착할 ‘카시니호’(Cassini)에 핵배터리를 사용하려다가 반대 움직임에 따라 폐기한 바 있다. 핵배터리로 작동하는 우주탐사선만 해도 발사 과정 혹은 지구 궤도상에서 폭발하면 적지 않은 피해를 낳을 게 틀림없다.

나사는 원자로켓을 이용해 달과 화성에 우주기지를 만들고 명왕성까지 탐사선을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핵발전기를 이용한 원자로켓을 추진하려면 발사 순간에 플루토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플루토늄 생산지는 어떤 식으로든 방사능 오염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핵발전기는 언제든지 태양계 탐사 이외의 목적, 군사적 활용이 가능하다. 미국은 태양계 탐사를 명분으로 내세워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란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더구나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계획을 대량살상무기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많은 공상과학 소설에 등장하는 강력한 제국은 대부분 교만으로 인해 자멸에 이르렀다. 지구적 지배력을 강화하고 우주를 정복하길 꿈꾸는 미국, 우주에 떠도는 핵은 미국이 파멸의 길에 접어든 징후일 수도 있다. 지금 우주는 핵의 공포에서 벗어난 미지의 공간으로 남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참고자료: <가디언> 10월5일치 ‘우주공간의 핵무기 공포’, <한겨레21> 472호 ‘별자리 여행, 그 현실과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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