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 일대를 새롭게 사유하려는 각계의 움직임… 거침없는 상상력에서 나온 기발한 제안들
한때 우리에게 ‘광장’은 결핍된 꿈이었다. ‘밀실’만 강요된 억압의 시대를 산 세대에게 개인의 소통과 집단의 정치적·사회적 요구가 활발히 오가는 너른 공간을 갖는 것은 의사표현의 자유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였다. 광장을 만들자는 것 자체가 불온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월드컵의 열기는 이 모든 것을 넘어섰다. ‘대한민국’을 고래고래 외쳐대는 젊은이들은 개인의 욕망이 국가적 역량 안에 포함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붉은 악마’를 경험한 뒤 서울시는 시청앞 광장 계획을 적극적으로 검토했고 설계안 공모를 거쳐 현재는 사업 투자자를 물색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시청앞 광장의 실현을 앞두고 ‘광화문’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문화재청은 경복궁·광화문 복원 사업과 맞물려 세종로 일대 복원 계획을 추진하고 있고, 서울시도 시정개발연구원에 용역을 맡겨 세종로 광장 계획의 타당성을 검토 중이다.
시청앞 광장 계획 맞물려 변화 모색
민간 부문의 목소리가 여기에서 빠질 수 없다. 일찌감치 세종로 문화광장 계획을 제안해온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와 건축전문잡지 월간 <건축문화>가 함께 손잡고 광화문을 새롭게 사유하자는 프로젝트를 마련한다. 10월14일 오후 2시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광화문을 걷다’라는 포럼이 열린다. 이 자리에선 안창모(경기대 건축대학원), 원용진(서강대 신문방송학과·문화연대 정책위원장) 교수가 각각 ‘광화문의 과거와 현재’ ‘공간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해본 세종로’라는 주제로 발제를 한다. 무엇보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건국·경기·경희·한양대 등 서울시내 건축전문 대학원 4곳이 연대해 그동안 설계수업 시간에 준비해온 광화문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것이다.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초반 젊은 건축학도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종로는 엄숙한 국가 상징로라든가 광활한 광장 같은 권위로부터 자유롭다. ‘도시에 새로운 지형 만들기’를 주된 테마로 삼은 경기대학원 학생들은 세종로를 놓고 상상의 끝까지 밀어붙인다. 설계스튜디오를 지도하는 건축가 장윤규(운생동 대표)씨는 “광장이 꼭 평평하고 넓은 1차원적 공간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을 대규모로 집합시킬 수 있는 운동장 같은 공간이 광장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을 깨는 것이다. 강 둔치 같은 부드러운 선, 움푹 파였다가 솟아나는 둔덕 등 새로운 지형도 광장 안에 포함될 수 있다. 물론 광장은 보행자를 위한 곳이다. 차를 위한 도로는 지하에 넣고 사람의 길은 지상에 풀어놓아 사람과 차의 관계를 역전시키기도 한다(김동찬). 광장과 별다른 연관 없는 건물들은 대지예술가 크리스토의 거대한 포장 설치 작품처럼 외벽을 감싸거나 스크린을 쳐서 길의 한 요소처럼 보이게 만든다. 사람이 주인이니 이곳에서는 행인의 발길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다. 나무그늘 아래 주저앉아 쉬거나 아이스크림을 사먹거나 조각품을 보거나 제 맘대로 길을 즐긴다. 길에서 펼쳐지는 활동을 크게 세 갈래 동선으로 나눠 이를 머리타래 꼬듯 엮은 시도도 재미나다(류삼열). 문화적 공간, 쉼터 공간, 상업 공간 등 세 갈래 길을 각각 쫓아가다보면 지하로 내려갔던 길은 어느새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다. 굳이 세종로길을 다 광장으로 만들지 말고 건물 앞 자투리 공간들을 유기적으로 얽는 것만으로도 광장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제안도 눈에 띈다(황효철).
신개념의 광장안들… 공공영역 1번지도
현재 세종로는 차에게만 관대한 길이다. 사람들은 8차선 너른 길을 건너가려면 지하보도를 건널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 지하철 5호선 역과 세종문화회관 앞 지하보도가 연결되지 않아 ‘세종로 초보자’들은 수차례 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지하통로를 원활하게 이어주고 각 건물 1층 앞 공간을 통일감 있게 엮는 것만으로도 세종로는 사람에게 친근한 부드러운 공간이 된다는 것이다.
한양대학원은 아예 세종로 광장 대신 ‘공공영역 1번지’란 말을 쓰기로 했다. 설계수업을 지도하고 있는 건축가 이종호(스튜디오 메타 대표)씨는 “우리는 이번에 ‘월드컵’과 ‘광장’이란 말을 쓰지 말자는 약속을 했다”고 말한다. “월드컵의 정신을 이어받아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단순하다. 사실 우리 생전에 대한민국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건 두번 다시 못 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월드컵 때와 같은 광장을 꼭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광장 대신 택한 ‘공공영역 1번지’란 말은 세종로가 가진 역사적 무게를 환기시킨다.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코디네이터 서현(한양대 교수)씨는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 집회는 시청앞 광장이 아니라 광화문 앞에서 열렸다. 월드컵 때 시청앞 광장이 떴던 것도 그곳이 접근성이 좋다거나 모이기 편리해서가 아니었다. 미국대사관 등이 있는 세종로에 군중이 모이는 것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광화문은 정치적 이슈를 토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곳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공공영역 1번지’는 조선시대 육조거리가 있었던 세종로의 역사를 살려 당당한 경관을 만들어가는 것도 포함한다. 일제 때 위치가 바뀌었던 광화문을 본래 자리로 옮겨놓고, 현재 교보문고 건물 옆에 초라하게 놓여 있는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비각을 이순신 동상 앞으로 배치하는 안도 제시됐다(윤설윤).
또한 지하철 5호선 광화문 역에서 바깥으로 나오는 공간을 300m 길이의 기다란 경사로로 만들어 지하에서 지상으로 발걸음을 옮김에 따라 광화문의 자태를 점진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극적인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광화문 밑에 근정전 앞마당과 똑같은 크기로 지하홀을 만들어 궁궐을 21세기적 공간으로 바꿔낸다(백수철).
그런가 하면 세종문화회관-정통부 건물을 다리 또는 판으로 연결하는 것처럼 마주 보고 있는 동서 건물을 연결하는 방법도 있다(박철흥).
이때 세종로는 높낮이가 다른 각 판들이 조합돼 다양한 결을 이루게 된다. 또한 문광부·미대사관은 미디어센터로, 정부종합청사는 도서관으로 만드는 프로그램도 제안된다(최기호·김해식).
서울을 바꾸는 구체적인 계획의 밑거름
이번 포럼을 주관한 <건축문화> 최연숙 팀장은 “문화재청과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일정을 감안할 때 앞으로 2~3년 안에 세종로 광장 계획은 안에 현실로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청계천 복원, 시청앞 광장과 아울러 세종로의 변화는 서울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업이 될 것이다. 그는 “이처럼 중요한 프로젝트에 젊은 건축학도들의 거침없는 상상력을 듣는 기회를 마련해 막연했던 꿈이 구체적인 현실로 변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 “이런 세종로 어때요?” 한양대 건축대학원 학생들이 세종로 설계안을 놓고 건축가 이종호씨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류우종 기자)
민간 부문의 목소리가 여기에서 빠질 수 없다. 일찌감치 세종로 문화광장 계획을 제안해온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와 건축전문잡지 월간 <건축문화>가 함께 손잡고 광화문을 새롭게 사유하자는 프로젝트를 마련한다. 10월14일 오후 2시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광화문을 걷다’라는 포럼이 열린다. 이 자리에선 안창모(경기대 건축대학원), 원용진(서강대 신문방송학과·문화연대 정책위원장) 교수가 각각 ‘광화문의 과거와 현재’ ‘공간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해본 세종로’라는 주제로 발제를 한다. 무엇보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건국·경기·경희·한양대 등 서울시내 건축전문 대학원 4곳이 연대해 그동안 설계수업 시간에 준비해온 광화문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것이다.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초반 젊은 건축학도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종로는 엄숙한 국가 상징로라든가 광활한 광장 같은 권위로부터 자유롭다. ‘도시에 새로운 지형 만들기’를 주된 테마로 삼은 경기대학원 학생들은 세종로를 놓고 상상의 끝까지 밀어붙인다. 설계스튜디오를 지도하는 건축가 장윤규(운생동 대표)씨는 “광장이 꼭 평평하고 넓은 1차원적 공간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을 대규모로 집합시킬 수 있는 운동장 같은 공간이 광장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을 깨는 것이다. 강 둔치 같은 부드러운 선, 움푹 파였다가 솟아나는 둔덕 등 새로운 지형도 광장 안에 포함될 수 있다. 물론 광장은 보행자를 위한 곳이다. 차를 위한 도로는 지하에 넣고 사람의 길은 지상에 풀어놓아 사람과 차의 관계를 역전시키기도 한다(김동찬). 광장과 별다른 연관 없는 건물들은 대지예술가 크리스토의 거대한 포장 설치 작품처럼 외벽을 감싸거나 스크린을 쳐서 길의 한 요소처럼 보이게 만든다. 사람이 주인이니 이곳에서는 행인의 발길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다. 나무그늘 아래 주저앉아 쉬거나 아이스크림을 사먹거나 조각품을 보거나 제 맘대로 길을 즐긴다. 길에서 펼쳐지는 활동을 크게 세 갈래 동선으로 나눠 이를 머리타래 꼬듯 엮은 시도도 재미나다(류삼열). 문화적 공간, 쉼터 공간, 상업 공간 등 세 갈래 길을 각각 쫓아가다보면 지하로 내려갔던 길은 어느새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다. 굳이 세종로길을 다 광장으로 만들지 말고 건물 앞 자투리 공간들을 유기적으로 얽는 것만으로도 광장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제안도 눈에 띈다(황효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