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 형사입니다. 죄송하지만 또 부탁 좀 드려야겠네요.”
지난 6월부터 영광경찰서로부터 4건의 어린이 성폭력사건 피해자 진술 확보를 위한 상담을 요청받아왔다. 상담소를 거치거나 피해자 부모가 직접 경찰서로 고소한 사건들이다.
“오늘은 제가 시간이 안 되니 다른 상담원을 보낼께요. 오후 2시까지 학교로 바로 가면 되지요”하며 약속을 잡고 1시30분경 상담원이 학교로 출발했다.
2시부터 시작하면 늦어도 3시반에는 사무실에 도착하는데 5시가 거지반 되어서야 상담원이 씩씩대며 들어오고 그 뒤를 아이와 엄마가 뒤따른다. “교장선생님이 잡상인 취급하며 내다시피 해서 싸우다가 말이 안 먹혀 상담소로 데려왔다”며 상담원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도 아닌데 왜 이 사람(상담원)이 여기에 있냐”며 거의 내몰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담임선생님도 당황하고 경찰도 교장선생님을 설득하려 했으나 결국 학교에서 철수하고 만 것이다.
왕복거리 40분, 교장선생님과의 실랑이, 경찰서로 비디오 가지러 간 경찰 기다리느라 지칠 대로 지친 아이는 엄마를 보채고 아이아빠와 통화하는 엄마도 내심 불편한 심기다.
땀 뻘뻘 흘리며 비디오를 가져와 상담소에 설치하는 경찰에게 “가정폭력이건, 성폭력이건 일차적인 신고와 어린이 보호에 책임이 있는 학교에서 이렇게 비협조적이고 피해 아이를 몰아붙이는 듯한 태도는 문제 삼아야 하지 않느냐”며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자 “저희도 화가 나지만 현실인 걸 어쩌겠냐”며 슬쩍 피해간다. 아이 마음 가라앉히고 두달 전의 기억 꺼내서 비디오로 촬영하는 내내 마음도 불편하고 밖에서 기다리는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학교 안에서 생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피해 어린이와 상담원, 경찰까지 몰아낼 만한 사안인가? 아이가 가장 편안해할 공간에서 촬영한다는 원칙으로 아이 부모와 상의해서 장소를 선정하고 학교쪽에 협조를 구한 상태에서도 학교 책임자들은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다. 세계 2위의 성폭력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신고율이 0.2%를 기록하는 건 피해자를 둘러싼 주변의 반응 탓이 크다. 도둑이나 강도를 당했다면 가해자가 죽일 놈이다. 그러나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피해자는 폭행당한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냉대와 동정까지 감내해야 한다. 그러니 누가 신고를 하려 하겠는가? 어린이 성폭력의 경우 진술과정에서 아이가 받을 상처를 줄이고 진술의 신빙성을 확보하고자 피해 어린이 증언 비디오를 증거로 채택한다. 아이들은 학교가 편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전적으로 아이의 심리상태에 맞게 장소를 선정해야 한다. 피해자는 피해자일 뿐이다. 피해 어린이가 그 학교를 다닌다고 학교의 명예가 떨어진다는 고루한 발상은 이제 제발 멈췄으면 한다. 학생의 인권을 학교 밖으로 내칠 때 학교의 명예는 추락하는 것이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일러스트레이션 | 경연미
땀 뻘뻘 흘리며 비디오를 가져와 상담소에 설치하는 경찰에게 “가정폭력이건, 성폭력이건 일차적인 신고와 어린이 보호에 책임이 있는 학교에서 이렇게 비협조적이고 피해 아이를 몰아붙이는 듯한 태도는 문제 삼아야 하지 않느냐”며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자 “저희도 화가 나지만 현실인 걸 어쩌겠냐”며 슬쩍 피해간다. 아이 마음 가라앉히고 두달 전의 기억 꺼내서 비디오로 촬영하는 내내 마음도 불편하고 밖에서 기다리는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학교 안에서 생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피해 어린이와 상담원, 경찰까지 몰아낼 만한 사안인가? 아이가 가장 편안해할 공간에서 촬영한다는 원칙으로 아이 부모와 상의해서 장소를 선정하고 학교쪽에 협조를 구한 상태에서도 학교 책임자들은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다. 세계 2위의 성폭력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신고율이 0.2%를 기록하는 건 피해자를 둘러싼 주변의 반응 탓이 크다. 도둑이나 강도를 당했다면 가해자가 죽일 놈이다. 그러나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피해자는 폭행당한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냉대와 동정까지 감내해야 한다. 그러니 누가 신고를 하려 하겠는가? 어린이 성폭력의 경우 진술과정에서 아이가 받을 상처를 줄이고 진술의 신빙성을 확보하고자 피해 어린이 증언 비디오를 증거로 채택한다. 아이들은 학교가 편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전적으로 아이의 심리상태에 맞게 장소를 선정해야 한다. 피해자는 피해자일 뿐이다. 피해 어린이가 그 학교를 다닌다고 학교의 명예가 떨어진다는 고루한 발상은 이제 제발 멈췄으면 한다. 학생의 인권을 학교 밖으로 내칠 때 학교의 명예는 추락하는 것이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