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 노벨 문학상 수상자 존 맥스웰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
올해 노벨 문학상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소설가 존 맥스웰 쿳시에게 돌아갔다. 수상자 발표 직전 출판사 들녘이 그의 수상을 예견이라도 한 듯 대표작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펴냈다. <야만인을 기다리며> 외에도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책세상) <추락>(동아일보사) 등 쿠시의 주요 작품 3편이 이미 번역돼 나와 있어 노벨 문학상이 발표될 때마다 수상자의 주요작을 번개처럼 번역해 내놓는 일은 없게 됐다. 3편의 책은 모두 왕은철 전북대 영문과 교수가 번역했다.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는 제국 변경의 자그마한 경작지의 한 백인 치안판사가 수십년 동안 그곳에서 목격한 일을 폭로한다. 그는 몇십년 동안 변경 정착지의 일들을 관장하면서 살아온, 제국의 충실한 하인이었다. 그러나 야만인들에 대한 정복 전쟁을 앞두고 취조 전문가들이 도착하면서 그는 제국이 전쟁 포로들을 잔인하고 부당하게 대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힘 없고 죄 없는 원주민들을 잘 조직된 적이라고 우기며 무자비한 고문을 일삼는 제국주의 군대의 모습을 분노의 시선으로 응시하다 결국 감옥에 갇힌다. ‘진보 인사’인 셈이다.
야만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원하는 대로 살기를 원하는 가난한 보통 사람들일 뿐이지만 제국주의자들의 ‘상상’ 속에서 밤에 나타나 여자들을 강간하고 집에 불을 지르는 난폭한 야만인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근거 없는 ‘위험한 야만인에 대한 상상’은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야만인’은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 것이다. 이제는 허구로 밝혀지고 있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미국 제국이 유지되고 팽창하는 조건인 것처럼.
쿠시는 의도적으로 이 소설의 배경을 익명의 공간으로 남겨두면서 식민주의자가 피식민주의자에게 가하는 폭력과 억압의 사슬이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국한된 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존 체제에 대항하는 진보적인 주인공 또한 그같은 체제를 유지하는 데 오랫동안 연루돼 왔고 자유로울 수 없음을 드러낸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의 백인 가정에서 나고 자란 존 쿳시는 탈식민주의 문학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소설가로 알려졌다. 언어학, 수학, 컴퓨터를 전공했으며 아일랜드 극작가 베케트의 전문가이도 한 쿳시의 작품은 남아공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의 유산 속에 스며 있는 유럽 제국주의의 잔재를 드러내고 제국주의의 은밀한 억압을 빼어나게 형상화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특히 지배층의 일원인 백인의 시점에서 제국주의를 비롯한 모든 부당한 지배와 폭력에 맞서는 한편, 그 지배체제를 떠받치는 개인들의 책임 역시 놓치지 않는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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