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와 함께 하는 예컨대 | 원정출산은 개인의 문제인가]
최진헌/ 인천고 2학년
최근 〈LA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부모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원정출산으로 낳은 아이가 연간 출생아의 1%에 해당되는 5천명이나 된다고 한다. 즉, 해마다 대한민국 1%에 해당되는 상류층 자녀는 미국 국적과 한국 국적을 동시에 확보하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이다. 그 비용도 2만달러가 들거니와 장거리 비행으로 적잖은 고통을 감수해야 함에도 상당수 만삭의 산모들이 제발로 미국으로 떠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 사회의 진보에 아킬레스건이 되는 이른바 사회 귀족층의 ‘도덕적 해이’의 편린에 불과하다. 해마다 30~40%씩 증가하는 조기 해외유학, 신문 사회면에 단골로 등장하는 고위층 병역비리, 탈세 등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이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가야 할 사회 귀족층들의 퇴행적이고 반애국적 행태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악순환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에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이는 피를 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한 서구의 사례와는 달리, 일제에서 해방된 이후 미국에게 선뜻 보따리째 받은 민주주의 사상의 부적응 현상에서 그 연원을 밟아볼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뒤 고도의 발전을 거듭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수준은 이러한 발달수준에 미치지 못한 나머지 여러 지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너도나도 ‘내 가족 먼저’라는 ‘가족이기주의’나 ‘배타적 개인주의’의 인식에 사로잡혀 있고, 부끄러운 행동에 죄책감 없이 자신의 자식에게까지 이중 국적자라는 ‘명예로운’ 이름표를 달아주고 있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볼 때, 원정출산 문제는 개인적 차원의 윤리의식의 붕괴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빚어낸 합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잘못된 제도적 관행도 지적되어야 한다. 본래 만삭임이 밝혀지면 안전상의 문제로 비자 발급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 사회의 상류층은 원정출산을 위해 출국할 때, 서류 허위기재나 영사 인터뷰를 면제받을 수 있는 여행사 패키지 등 각종 편법으로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그릇된 현상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로마와 베네치아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마 제국은 역사의 중심에서 2천년 동안이나 존속된 대제국이었다. 로마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상류층이 더 큰 희생을 치르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철저한 준수를 통해 로마제국의 장구한 역사는 이어질 수 있었다. 로마의 최고 권력을 쥔 원로원의 의원들도 전쟁 발발시 가장 먼저 전쟁에 나가 선봉에 섰고, 또한 자신의 재산으로 가도, 극장과 같은 사회 인프라를 구축함을 가문의 영광으로 삼았다. 500년간 지중해를 제패하고 겨룬 베네치아의 경우에서도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많은 전쟁 부담을 져야 했다.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변질되면서 퇴보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로마와 베네치아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이 두 나라의 경우에서 미루어보건대 사회 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풍토가 사회의 통합력을 유지하는 바탕이 됨을 알 수 있다. 원정출산에 대한 우려는 원정출산으로 생기는 2%의 병역손실 때문만은 아니다. 2%의 병력손실은 98% 병력의 사기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원정출산으로 인해 신성하고 자랑스러운 국방의 의무가 도리어 못 가진 자들이 짊어지어야 할 노역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로 야기될 수 있는 군인들의 충성심·애국심 저하는 자못 심각하다. 하나의 공동체적 연대의식으로 이어진 우리 한국사회에서 두 나라의 국적에 양다리를 걸친 기회주의자들의 의도적인 변절은 결코 정당화될 수도, 용납될 수도 없다. 근시안적이고 섣부른 선택으로 말미암아 ‘반사회적 기회주의자’라는 오명을 스스로 씌우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 한국을 조국 이상의 운명공동체로서 인식하는 의식 변화를 촉구한다.
[ 칭찬과 아쉬움 ] 이번주 예컨대의 편지함에는 열혈 애국 고등학생들의 울분에 찬 글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학생들이 울분을 토한 이번주 예컨대 주제는 ‘원정출산은 개인의 문제인가, 사회구조의 탓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울분을 토하느라 이성이 마비된 탓일까. 대다수의 글이 울분의 목소리는 드높은데 비해 비판의 논리는 치밀하지 못했다. 원정출산 문제를 새롭게 해석하는 허를 찌르는 통찰력도, 발칙한 상상력도 찾기 어려웠다. 올망졸망한 범작들이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가운데, 인천고 최진헌 학생의 글이 이주의 논술글로 뽑혔다. 최진헌 학생의 글은 원정출산을 비판하는 논조와 정서에서는 다른 글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최군도 원정출산을 상류층의 도덕적 타락으로 비판했다. 최군은 나아가 조기유학, 병역비리, 탈세 등 상류층의 ‘반애국적’ 행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최군은 상류층의 도덕적 타락을 한국 현대사의 맥락 속에서 분석했다는 점에서 다른 글과 차별화된다. 피를 통해서 세운 서구 근대 공화국과 달리 한국의 국가체제는 외부의 힘에 의해 주어졌기 때문에 상류층의 책임의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이어 그는 로마와 베네치아의 사례를 통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사회통합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대비시켰다. 최군의 글은 같은 논조의 논술글이라도 분석의 틀과 사례에 따라 내용이 한층 풍부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의 ‘고정 기고가’ 인하대 부속고 전해준 학생도 원정출산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원정출산이 사익을 좇아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친일파 또는 어용 지식인의 행태와 비슷하다는 내용이었다. 주제 탓인지 전군의 글은 다른 때보다 다소 ‘보수적’인 논지를 보여줬다. 서울 정신여고 신하영 학생은 유일하게 원정출산이 왜곡된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강조하는 글을 보내왔다. 과열 입시경쟁과 억압적인 군대 문화가 원정출산을 부추긴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글은 주장이 앞서고 논리적 설득력이 떨어졌다. 애국의 열정을 식히고 원정출산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보면 어떨까. 가수 유승준씨의 입국금지 사건이 새삼 떠올랐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한 홈쇼핑의 이민상품 판매에 대해 당국이 뒤늦게 제재 조치를 취한 사실도 겹쳐졌다. 어쩌면 병역을 피하기 위해 미국 시민이 된 유승준씨에 대한 비난과 원정출산에 대한 여론몰이는 닮아 있는 것 아닐까. 두 논리의 핵심에는 조국을 버렸다는 배신감과 병역을 기피한다는 반감이 숨어 있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개인에게는 국적 선택의 자유도 있는 것 아닐까. 물론 원정출산이 미국 시민권이라는 ‘기득권’을 얻기 위한 편법이긴 하지만, 어떠한 다른 목소리도 없다는 점도 정상은 아니다.

일러스트레이션 | 장광석
또한 잘못된 제도적 관행도 지적되어야 한다. 본래 만삭임이 밝혀지면 안전상의 문제로 비자 발급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 사회의 상류층은 원정출산을 위해 출국할 때, 서류 허위기재나 영사 인터뷰를 면제받을 수 있는 여행사 패키지 등 각종 편법으로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그릇된 현상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로마와 베네치아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마 제국은 역사의 중심에서 2천년 동안이나 존속된 대제국이었다. 로마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상류층이 더 큰 희생을 치르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철저한 준수를 통해 로마제국의 장구한 역사는 이어질 수 있었다. 로마의 최고 권력을 쥔 원로원의 의원들도 전쟁 발발시 가장 먼저 전쟁에 나가 선봉에 섰고, 또한 자신의 재산으로 가도, 극장과 같은 사회 인프라를 구축함을 가문의 영광으로 삼았다. 500년간 지중해를 제패하고 겨룬 베네치아의 경우에서도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많은 전쟁 부담을 져야 했다.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변질되면서 퇴보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로마와 베네치아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이 두 나라의 경우에서 미루어보건대 사회 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풍토가 사회의 통합력을 유지하는 바탕이 됨을 알 수 있다. 원정출산에 대한 우려는 원정출산으로 생기는 2%의 병역손실 때문만은 아니다. 2%의 병력손실은 98% 병력의 사기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원정출산으로 인해 신성하고 자랑스러운 국방의 의무가 도리어 못 가진 자들이 짊어지어야 할 노역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로 야기될 수 있는 군인들의 충성심·애국심 저하는 자못 심각하다. 하나의 공동체적 연대의식으로 이어진 우리 한국사회에서 두 나라의 국적에 양다리를 걸친 기회주의자들의 의도적인 변절은 결코 정당화될 수도, 용납될 수도 없다. 근시안적이고 섣부른 선택으로 말미암아 ‘반사회적 기회주의자’라는 오명을 스스로 씌우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 한국을 조국 이상의 운명공동체로서 인식하는 의식 변화를 촉구한다.
[ 칭찬과 아쉬움 ] 이번주 예컨대의 편지함에는 열혈 애국 고등학생들의 울분에 찬 글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학생들이 울분을 토한 이번주 예컨대 주제는 ‘원정출산은 개인의 문제인가, 사회구조의 탓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울분을 토하느라 이성이 마비된 탓일까. 대다수의 글이 울분의 목소리는 드높은데 비해 비판의 논리는 치밀하지 못했다. 원정출산 문제를 새롭게 해석하는 허를 찌르는 통찰력도, 발칙한 상상력도 찾기 어려웠다. 올망졸망한 범작들이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가운데, 인천고 최진헌 학생의 글이 이주의 논술글로 뽑혔다. 최진헌 학생의 글은 원정출산을 비판하는 논조와 정서에서는 다른 글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최군도 원정출산을 상류층의 도덕적 타락으로 비판했다. 최군은 나아가 조기유학, 병역비리, 탈세 등 상류층의 ‘반애국적’ 행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최군은 상류층의 도덕적 타락을 한국 현대사의 맥락 속에서 분석했다는 점에서 다른 글과 차별화된다. 피를 통해서 세운 서구 근대 공화국과 달리 한국의 국가체제는 외부의 힘에 의해 주어졌기 때문에 상류층의 책임의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이어 그는 로마와 베네치아의 사례를 통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사회통합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대비시켰다. 최군의 글은 같은 논조의 논술글이라도 분석의 틀과 사례에 따라 내용이 한층 풍부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의 ‘고정 기고가’ 인하대 부속고 전해준 학생도 원정출산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원정출산이 사익을 좇아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친일파 또는 어용 지식인의 행태와 비슷하다는 내용이었다. 주제 탓인지 전군의 글은 다른 때보다 다소 ‘보수적’인 논지를 보여줬다. 서울 정신여고 신하영 학생은 유일하게 원정출산이 왜곡된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강조하는 글을 보내왔다. 과열 입시경쟁과 억압적인 군대 문화가 원정출산을 부추긴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글은 주장이 앞서고 논리적 설득력이 떨어졌다. 애국의 열정을 식히고 원정출산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보면 어떨까. 가수 유승준씨의 입국금지 사건이 새삼 떠올랐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한 홈쇼핑의 이민상품 판매에 대해 당국이 뒤늦게 제재 조치를 취한 사실도 겹쳐졌다. 어쩌면 병역을 피하기 위해 미국 시민이 된 유승준씨에 대한 비난과 원정출산에 대한 여론몰이는 닮아 있는 것 아닐까. 두 논리의 핵심에는 조국을 버렸다는 배신감과 병역을 기피한다는 반감이 숨어 있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개인에게는 국적 선택의 자유도 있는 것 아닐까. 물론 원정출산이 미국 시민권이라는 ‘기득권’을 얻기 위한 편법이긴 하지만, 어떠한 다른 목소리도 없다는 점도 정상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