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인간관 - 닫힌 인간관
이기적 인간관은 뭐가 문제일까? 그건 인간을 닫힌 존재로 만든다는 거야. 여기서 ‘닫는다’는 건 두 가지 점에서야. 하나는 나와 이웃의 관계를 차단한다는 거지. 사람이 이기적이라면 우리가 이웃과 관계를 맺는 이유도 간단하지 않아? 나한테 이익이 되니까. 결국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다는 결론밖에 나올 게 없잖아? 이렇게 이웃에 열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닫아놓은 게 오늘 이기적 인간의 실상이야. 또 하나는 사람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야. 이건 이기적 인간관의 필연적 귀결이야. 생각해봐. 사람이 어떻게 변할까? 그건 이웃과, 자연과 맺는 관계 때문이야. 근데 이 관계를 끊어놓은 인간관을 받아들이면? 당연히 변화 자체가 없어지잖아. 이처럼 사람의 변화 가능성을 봉쇄해놓은 인간관을 받아들이니까 불신만 남는 거야.
또 하나의 신화, 유전자 결정론
최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닫힌 인간관을 부추기는 이론이 등장했어. 이른바 ‘생물학적 결정론’ 또는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거지. 생명체의 근원에서 작용하는 유전자가 사람의 성향과 능력, 그리하여 삶을 결정한다는 거야. 이들의 대표선수인 도킨스의 이론은 간단 명쾌해. “사람이라는 생명체는 유전자의 명령에 따르는 존재다. 그런데 그 유전자는 자신의 유지와 번식을 목표로 한다. 즉, 이기적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거야. 이 강력한 ‘과학적’ 의견은, 실상 허술해. 그것은 사람을 고정된 존재, 다른 무엇과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려.
모든 결정론을 거부한다! 이 유전자 결정론을 꺾는답시고 나온 게 ‘문화적 또는 사회적 결정론’이야. 이들은 인간의 성향을 결정하는 건 유전자가 아니라 사회환경이라고 해. 그러나 나는 이것이든 저것이든 ‘결정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온 거라면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아. 자, 여기 히틀러가 있어. 얘가 사람을 막 죽인단 말야. 그가 말해. “내가 사람을 죽인 건 내 탓이 아니에요. 내 유전자가 그렇게 시킨 건데요, 뭘.” 또 이렇게도 말해. “내 환경이 날 그렇게 만든 거예요. 난 아무 잘못도 없어요.” 결정론은 인간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을 배제해놓은 이론일 뿐이야. 인간은 과정적 존재다 “그럼 너는 성선설이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군. 아니! 난 그렇게 인간을 딱 고정시키는 이론들 자체가 문제라고 봐. 사람은 자연과 이웃, 즉 나 아닌 것과 무한대로 관계를 맺으며 사는 존재야. 물론 유전자도 그 관계 중의 일부지. 문제는 그 일부분만 가지고 사람 자체를 규정하려는 시도야. 그러다보니 어떤 결론을 미리 내리고 그것에 자꾸 끼워 맞추기식으로 사람을 설명하게 돼. 내 주장은 말야, 있는 그대로의 인간, 무한관계 속의 인간, 따라서 무한 가능성으로서의 인간을 생각하자는 거여. 그럴 때 인간은 나 아닌 것들과 더불어 늘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존재가 돼. 이렇게 어울려서 어딘가로 나아간다는 자체가 소중한 것 아닐까?
모든 결정론을 거부한다! 이 유전자 결정론을 꺾는답시고 나온 게 ‘문화적 또는 사회적 결정론’이야. 이들은 인간의 성향을 결정하는 건 유전자가 아니라 사회환경이라고 해. 그러나 나는 이것이든 저것이든 ‘결정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온 거라면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아. 자, 여기 히틀러가 있어. 얘가 사람을 막 죽인단 말야. 그가 말해. “내가 사람을 죽인 건 내 탓이 아니에요. 내 유전자가 그렇게 시킨 건데요, 뭘.” 또 이렇게도 말해. “내 환경이 날 그렇게 만든 거예요. 난 아무 잘못도 없어요.” 결정론은 인간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을 배제해놓은 이론일 뿐이야. 인간은 과정적 존재다 “그럼 너는 성선설이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군. 아니! 난 그렇게 인간을 딱 고정시키는 이론들 자체가 문제라고 봐. 사람은 자연과 이웃, 즉 나 아닌 것과 무한대로 관계를 맺으며 사는 존재야. 물론 유전자도 그 관계 중의 일부지. 문제는 그 일부분만 가지고 사람 자체를 규정하려는 시도야. 그러다보니 어떤 결론을 미리 내리고 그것에 자꾸 끼워 맞추기식으로 사람을 설명하게 돼. 내 주장은 말야, 있는 그대로의 인간, 무한관계 속의 인간, 따라서 무한 가능성으로서의 인간을 생각하자는 거여. 그럴 때 인간은 나 아닌 것들과 더불어 늘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존재가 돼. 이렇게 어울려서 어딘가로 나아간다는 자체가 소중한 것 아닐까?

우한기 | 광주 플라톤 아카데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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