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카우보이처럼 사는 도시의 이방인들… 정녕 도시인들은 무엇을 바랄까
얼마 전부터 나는 이 ‘도시’라는 일반명사가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말이라고 확신하게 됐는데, 그것은 한대수와 백현진이라는 두 남자와 관련이 있다.
2년 전 뉴욕에서 한대수를 만났다. 별난 남자일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그와 뉴욕 거리 한복판을 걷는 일이 그렇게 당혹스러울 줄은 몰랐다. 발목까지 오는 검정색 아르마니 코트에 청바지를 입고 멋진 이탈리안 부츠를 신은 장발의 이 오십대 남자는 시도 때도 없이 생면부지의 뉴요커들에게 한 손을 번쩍 들어 “Hi, Boys and Girls”를 외쳐댔다. 나중에 그가 좋아한다는 바에 앉아(정확히 나만 앉고 그는 멸종된 카우보이처럼 바 카운터 앞에 시종일관 서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왜 자꾸 그런 인사를 하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 외롭잖아. 모두 바쁜 척 분주하게 걷고 있지만 실은 다들 외로워 미칠 지경이라고.”
맨해튼을 배경으로 사랑에 관한 달콤한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이 도시에서는 완벽한 자기방어와 주변 관계의 단절이 최고의 미덕이라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서울에 돌아와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는데 몹시 씁쓸했다. 400달러짜리 고급 마놀로 샌들을 신은 잘나가는 독신 여자들이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섹스에 대해서 화끈하게 입을 놀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들 중에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이 도시에서 사랑이나 로맨스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이제 게이바밖에 없다고.”
한달 전 우연히 극장 앞에서 백현진을 만났다. 아직 한여름인데 그는 두툼한 가죽점퍼에 아랍인들이 즐겨 입는 젤라바 같은 초록색 바지를 입고 트렌디한 고무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헤어스타일은 최첨단 도시에서 거세당한 레닌그라운드 카우보이 같았다. 그런 그가 어어부 말고 ‘백진’이라는 이름으로 첫 솔로앨범을 내는데, 이번엔 사랑 노래라고 했다. 나는 그후 인터뷰차 백현진을 다시 만나 그의 첫 솔로앨범에 대해 이런 논평을 했다. “니 음악을 들으니 울고 싶더라. 마치 악다구니 쓰며 진탕 술 마신 다음날 아침, 누군가 아스팔트 위에 말갛게 토해놓은 토사물을 볼 때처럼 좀 아리더라.” 그러자 백현진은 이렇게 대꾸했다. 잘 아는 후배가 술 먹고 객기 부리다가 한강에 빠져 죽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안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그 후배 형이 “동생이 도시에 올라와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 ‘도시’라는 단어에 필이 꽂혀 불쑥 눈물이 미친 듯 흘러내리더라는 것이다. 나는 이 도시가 미치도록 좋고, 또 미치도록 싫다. 요즘 이 도시에서 유행하는 ‘사랑의 행로’란 이런 것이다. 낭만적인 법석을 떨며 술을 퍼마시다가 남과 여는 잠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곤 섹스를 한다. 사내들은 주먹다짐을 하기도 하고, 여자들은 자기연민에 찬 목소리로 울기도 하지만, 곧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곤 부질없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모두들 노예처럼 일한다. 이런 도시인들에게 절실한 건 ‘사랑’이나 ‘끈끈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어쩌면 한병의 자양강장제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시청 앞 삼성프라자 앞에 서서 건너편 빌딩 위에 세워진 거대한 ‘박카스’ 모형을 바라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 풍경이 너무 쓸쓸해 눈물이 나는 건 역시 내가 감상적인 여자이기 때문일까?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한달 전 우연히 극장 앞에서 백현진을 만났다. 아직 한여름인데 그는 두툼한 가죽점퍼에 아랍인들이 즐겨 입는 젤라바 같은 초록색 바지를 입고 트렌디한 고무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헤어스타일은 최첨단 도시에서 거세당한 레닌그라운드 카우보이 같았다. 그런 그가 어어부 말고 ‘백진’이라는 이름으로 첫 솔로앨범을 내는데, 이번엔 사랑 노래라고 했다. 나는 그후 인터뷰차 백현진을 다시 만나 그의 첫 솔로앨범에 대해 이런 논평을 했다. “니 음악을 들으니 울고 싶더라. 마치 악다구니 쓰며 진탕 술 마신 다음날 아침, 누군가 아스팔트 위에 말갛게 토해놓은 토사물을 볼 때처럼 좀 아리더라.” 그러자 백현진은 이렇게 대꾸했다. 잘 아는 후배가 술 먹고 객기 부리다가 한강에 빠져 죽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안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그 후배 형이 “동생이 도시에 올라와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 ‘도시’라는 단어에 필이 꽂혀 불쑥 눈물이 미친 듯 흘러내리더라는 것이다. 나는 이 도시가 미치도록 좋고, 또 미치도록 싫다. 요즘 이 도시에서 유행하는 ‘사랑의 행로’란 이런 것이다. 낭만적인 법석을 떨며 술을 퍼마시다가 남과 여는 잠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곤 섹스를 한다. 사내들은 주먹다짐을 하기도 하고, 여자들은 자기연민에 찬 목소리로 울기도 하지만, 곧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곤 부질없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모두들 노예처럼 일한다. 이런 도시인들에게 절실한 건 ‘사랑’이나 ‘끈끈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어쩌면 한병의 자양강장제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시청 앞 삼성프라자 앞에 서서 건너편 빌딩 위에 세워진 거대한 ‘박카스’ 모형을 바라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 풍경이 너무 쓸쓸해 눈물이 나는 건 역시 내가 감상적인 여자이기 때문일까?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