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회장님과 봉정씨가 낫을 들고 논둑가에 핀 억새와 노란들꽃을 꺾어낸다.
무대 꾸밀 소품들이다. 토요일 오후 산아치·화정동·덕평·월계 마을 여성들이 모여 축제판을 열 작정이다.
영광 여성의전화와 영산 원불교대학교 여성문화연구소가 매년 열어온 제5회 농촌여성문화축제가 올해는 마을 여성들의 노고까지 보태져 노란 벼이삭 만큼이나 준비부터 오지다. “받아놓은 날은 잘도 간다”며 며칠 전부터 행사를 위해 애쓰신 마을 여성들 덕분에 준비팀 어깨엔 흥겨움마저 실린다.
월산리 4개 마을의 중심인 화정동 모정을 무대 삼고 땅바닥을 객석으로 쓰기 위해 마을사람들은 묵은 청소를 해대고 우린 들꽃을 꺾어 항아리에 담아 한껏 멋을 낸다. 한쪽에선 해장죽(얇은 대나무)으로 투호놀이감을 만든다, 풍선을 매어단다 하며 수선들을 떤다.
동네 어르신들은 낯모르는 여자들이 설레발치고 다니자 “뭣한디야?” 하며 짐짓 모른 척하기도 하고 “고맙소, 우리 마을서 잔치 열어줘서”라며 앞선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십여명의 아이들은 주위를 맴돌며 저희들끼리 노는 듯하며, 우리들이 하는 양을 훔쳐본다.
“이따가 밤 8시에 동네 앞에서 영화 틀어준께 보러들 오씨요. 추운께 세타들 꽉 껴입고.” 전야행사로 마련한 야외 영화상영 홍보를 위해 마을 사람들만 보면 입을 놀려야 한다. 걸개그림이며 만장이 자리잡고 널뛰기, 투호놀이 등 민속놀이감을 동네에 들여놓으니 축제 전날임이 실감나나 보다. 부산스런 오후 한낮을 넘기니 금세 깜깜해진다.
마을 회원들이 만들어놓은 오뎅국물이 멸치와 다시마 냄새를 풍기며 맛을 우려내고, 저녁밥 드신 마을 여성들 삼삼오오 농기계창고 앞으로 모여든다. 어딜 가나 아이들이 선수를 치게 마련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그런지 아이들 소리가 가득하다.
조립식으로 지은 농기계창고 한쪽을 스크린 삼아 야외영화관을 만드니 ‘자동차전용 영화관’이 부끄러워 울고 갈 판이다. 오른쪽엔 노랗게 익은 벼들이 살랑거리고 왼쪽엔 장작더미 불길이 묻어놓은 고구마를 달구며 따신 기운 몰아준다. 쏟아지는 별빛까지 맞으며 마을 관객들은 영화 <집으로>에 빠져든다. <집으로> 주인공과 같이 쪽지고 허리 굽은 할머니들은 영화 속 손주놈의 버릇없는 몸짓엔 “예끼 이놈” 하며 한대 쥐어박을 듯하다가도 두메산골 모습엔 “오메, 쩌런 디가 다 있디야” 하며 어깨를 으쓱해한다. 팝콘을 대신한 강냉이가 한 순배 돌고 한기 느낄 즈음 오뎅국물이 날라진다. 부녀회장님이 어느새 대병짜리 소주병 돌리면서 야외영화관이 제법 자리를 잡아간다. 차안에서 영화를 보는 아저씨들도 눈에 띄고 지나가던 차들이 “뭔 일이냐”며 멈춰서기도 한다. 한껏 감정이입된 상태에서 영화가 끝나서인지 장작불로 모여선 마을 여성들은 묻어뒀던 고구마로 꺼진 배를 달래며 돌아갈 생각을 잃는다. 내일 본행사를 잘 치르는 일이 남았지만 그보다 내게 남는 흥분은 기획부터 진행까지 함께 참여한 농촌여성들의 당찬 모습이었다. 농촌여성문화축제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여성들의 솜씨로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일러스트레이션 | 경연미
조립식으로 지은 농기계창고 한쪽을 스크린 삼아 야외영화관을 만드니 ‘자동차전용 영화관’이 부끄러워 울고 갈 판이다. 오른쪽엔 노랗게 익은 벼들이 살랑거리고 왼쪽엔 장작더미 불길이 묻어놓은 고구마를 달구며 따신 기운 몰아준다. 쏟아지는 별빛까지 맞으며 마을 관객들은 영화 <집으로>에 빠져든다. <집으로> 주인공과 같이 쪽지고 허리 굽은 할머니들은 영화 속 손주놈의 버릇없는 몸짓엔 “예끼 이놈” 하며 한대 쥐어박을 듯하다가도 두메산골 모습엔 “오메, 쩌런 디가 다 있디야” 하며 어깨를 으쓱해한다. 팝콘을 대신한 강냉이가 한 순배 돌고 한기 느낄 즈음 오뎅국물이 날라진다. 부녀회장님이 어느새 대병짜리 소주병 돌리면서 야외영화관이 제법 자리를 잡아간다. 차안에서 영화를 보는 아저씨들도 눈에 띄고 지나가던 차들이 “뭔 일이냐”며 멈춰서기도 한다. 한껏 감정이입된 상태에서 영화가 끝나서인지 장작불로 모여선 마을 여성들은 묻어뒀던 고구마로 꺼진 배를 달래며 돌아갈 생각을 잃는다. 내일 본행사를 잘 치르는 일이 남았지만 그보다 내게 남는 흥분은 기획부터 진행까지 함께 참여한 농촌여성들의 당찬 모습이었다. 농촌여성문화축제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여성들의 솜씨로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