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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사이언스크로키] 과학은 발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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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0-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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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분야에 내려오는 해묵은 의문 가운데 “과학은 발전하는가?”라는 게 있다. 언뜻 이 의문은 매우 어이없는 듯하다. 자동차, 비행기, 텔레비전,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 등 옛날엔 없던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계속 창출되는 것만 봐도 인간 세상이 점차 발전해왔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의 뒷면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공기, 물, 토양, 해양의 오염과 소음의 증가, 도시의 슬럼화, 인간소외, 인간성의 황폐화, 생명 경시, 가치관 혼란 등 구체적으로 보자면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든 많은 문제들이 제기된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발전이라고 보는 현상은 겉모습에 지나지 않을 뿐, 실제로는 끝없는 퇴보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일러스트레이션 | 유은주
이 자연스런 반론에서 가장 먼저 파생되는 생각이 이른바 감상주의다. 쉽게 말하면 이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 또는 “옛날이 좋았다”는 식의 막연한 표현에 내포된 회고주의적 사고방식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문명의 발전이고 뭐고 사실은 다 헛것이며, 설령 헛것이 아니더라도 갈수록 우리를 귀찮고 힘들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구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물론 이런 생각에도 일부 수긍할 만한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껏 실제로 이어져온 인류 역사를 돌이켜볼 때 그 도도한 흐름을 거역하는 복고, 회고, 반동 등의 시도가 제대로 성공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발전의 관념을 부정하는 두 번째 갈래로는 이른바 엔트로피 증대법칙에 근거한 사뭇 과학적인 비판을 들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이 지구상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엔트로피는 더욱 증가한다. 그런데 잘 알려져 있듯 엔트로피란 개념은 ‘무질서’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알고 보면 문명의 발전은 혼란의 가중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엔트로피 증대법칙은 자연계의 ‘모든’ 현상에 적용된다. 따라서 문명활동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는 이 비판은 사실상 설 자리를 잃고 만다.

다른 한편으로 발전이란 관념을 어떤 절대적 진보가 아니라 상대적 선택의 문제로 보는 논리주의적 입장이 있다. 이런 관점에 선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패러다임’이란 용어로 유명한 토마스 쿤을 들 수 있다. 그는 과학의 역사를 ‘패러다임 변환(shift)’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여기서의 변환은 자동차의 ‘기어변속(shift)’과 사실상 거의 같은 관념이다. 곧 상황에 따라 가장 적절한 패러다임이 선택될 뿐 ‘4단’이 ‘후진’보다 본질적으로 더 낫다는 식의 절대적 비교는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이제껏 과학의 발전에 대해서는 주로 위 세 가지 방향에서 많은 비판이 가해졌다. 실제로는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그러하며 별다른 결정적 계기가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특기할 것은 이와 같은 비판론 자체도 예전보다 갈수록 세련되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과학의 발전을 비판한다고 하면서도 스스로의 논리는 과학적이란 점을 은연중에 강조한다. 결국 논점은 진정한 과학과 진정한 발전이 무엇인가 하는 데로 모아진다. 이를테면 논의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라 하겠으며, 이를 통해 소모적 논쟁을 접고 더 실질적인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고중숙 |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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