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권투 입문 2년1개월만에 세계 챔피언 올라… 스폰서 구하지 못해 대회 두 차례나 연기
여자권투 세계 정상에 오른 이인영(32·산본체육관)은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방송 출연이다 신문 인터뷰다 해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큰 시합을 치른 뒤에는 적당한 휴식이 필요하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매스컴은 마치 새로운 영웅이라도 발견한 듯 연일 호들갑이다. 이인영은 지난 9월27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칼라 윌콕스(34·미국)를 9회 1분40초 만에 KO로 누르고 챔피언이 됐다. 그가 권투에 입문한 지 2년1개월 만의 일이다.
남자선수 못지 않은 팔힘 자랑
“(세계) 챔피언이 되려면 적어도 8∼10년은 해야 되는데, 인영이는 2년 만에 해냈어요. 참 대단한 기록이죠.” 그에게 권투를 가르친 김주병(52) 관장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제자를 칭찬했다. “팔힘이 남자선수 못지않게 좋아서 펀치력이 대단해요. 체력도 타고났고 연습도 성실하게 하고. 잔기술이 부족한 게 좀 흠이긴 한데 앞으로 연습을 많이 하면 보완될 겁니다.”
그가 챔피언에 오르는 과정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애초 올 7월에 열릴 예정이던 챔피언전은 두 차례나 연기됐다. 대회를 후원해줄 스폰서를 구하지 못한 것이다. 시합 일정이 확정되기까지 두달여 동안 이인영은 국내 여자권투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이인영이 이번 챔피언전에서 받은 대전료는 500만원. 남자권투가 1천만원 이상 받는 것과 비교해보면 턱없이 적다. 이 돈으로는 생활비는커녕 훈련비도 댈 수 없다. 프로모터(경기를 주선하는 사람)는 ‘시장원리’로 설명하지만,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인영은 자신을 대하는 매스컴의 태도도 맘에 들지 않는다. 최근 발행된 수기 <나는 복서다>(들녘)에서 알코올중독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털어놨는데, 언론은 그의 권투선수로서의 자질보다 알코올중독자였다는 사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국내 언론들이 여자권투를 아직 스포츠의 영역이 아닌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의 과거보다는 미래를 주목하라 미국은 그렇지 않다. 1990년대 후반부터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여자권투는 여성의 이미지, 여성성과 남성성의 균형, 남성 영역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여성들의 공격성 등 사회 이슈를 건드리면서 시대적인 문화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프로선수 중에는 고학력을 자랑하는 전문직 엘리트 여성들도 많다. 또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등 옛 유명선수의 딸들도 맹활약하고 있어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인영은 10여년 전 자동차 사고 등으로 아버지와 큰오빠를 잃은 직후 술에 절어 살았다. 그는 고교 졸업 뒤 미용사 보조, 봉제공장에서 실밥 따기, 학원 셔틀버스 운전, 트럭운전 등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술의 유혹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것을 잊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 그를 구제한 것이 바로 권투였다. “2001년 8월에 킴 메서(한국계 미국 권투선수)의 경기를 TV에서 봤는데, ‘바로 저거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인영은 주저 없이 동네 체육관의 문을 두드렸다. 그 문은 2년 뒤 그를 세계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사진/ 나는야 챔피언! 지난 9월27일 챔피언 결정전에서 이인영 선수가 미국의 칼라 윌콕스 얼굴에 펀치를 날리고 있다. 이 선수는 윌콕스를 KO로 물리치고 챔피언에 올랐다.(연합)
그가 챔피언에 오르는 과정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애초 올 7월에 열릴 예정이던 챔피언전은 두 차례나 연기됐다. 대회를 후원해줄 스폰서를 구하지 못한 것이다. 시합 일정이 확정되기까지 두달여 동안 이인영은 국내 여자권투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이인영이 이번 챔피언전에서 받은 대전료는 500만원. 남자권투가 1천만원 이상 받는 것과 비교해보면 턱없이 적다. 이 돈으로는 생활비는커녕 훈련비도 댈 수 없다. 프로모터(경기를 주선하는 사람)는 ‘시장원리’로 설명하지만,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인영은 자신을 대하는 매스컴의 태도도 맘에 들지 않는다. 최근 발행된 수기 <나는 복서다>(들녘)에서 알코올중독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털어놨는데, 언론은 그의 권투선수로서의 자질보다 알코올중독자였다는 사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국내 언론들이 여자권투를 아직 스포츠의 영역이 아닌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의 과거보다는 미래를 주목하라 미국은 그렇지 않다. 1990년대 후반부터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여자권투는 여성의 이미지, 여성성과 남성성의 균형, 남성 영역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여성들의 공격성 등 사회 이슈를 건드리면서 시대적인 문화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프로선수 중에는 고학력을 자랑하는 전문직 엘리트 여성들도 많다. 또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등 옛 유명선수의 딸들도 맹활약하고 있어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인영은 10여년 전 자동차 사고 등으로 아버지와 큰오빠를 잃은 직후 술에 절어 살았다. 그는 고교 졸업 뒤 미용사 보조, 봉제공장에서 실밥 따기, 학원 셔틀버스 운전, 트럭운전 등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술의 유혹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것을 잊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 그를 구제한 것이 바로 권투였다. “2001년 8월에 킴 메서(한국계 미국 권투선수)의 경기를 TV에서 봤는데, ‘바로 저거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인영은 주저 없이 동네 체육관의 문을 두드렸다. 그 문은 2년 뒤 그를 세계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