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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해우소 풍경/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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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0-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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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解憂所), 말 그대로 근심을 푸는 곳이다. 뒷간, 변소, 화장실 등으로 불리는 해우소는 불가의 말이지만 요즘엔 널리 쓰인다.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라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기도 하는데, 나열하자면 머리를 숙여 아래를 보지 말 것, 낙서하거나 침을 뱉지 말고 힘쓰는 소리도 내지 말 것, 외고자 하는 게송(偈頌)이 있다면 속으로 욀 것, 일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나올 것, 손을 씻기 전에는 다른 물건을 만지지 말 것 등이다.

행복한 산중생활 6년

한두 가지 주의야 자연스레 지킬 수 있겠지만, 이대로 따르자면 근심이나 번뇌를 풀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악화될 것만 같다. 똥오줌을 누러 갔으면 오직 내 몸에 쓰이고 남은 똥오줌의 배설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똥을 누면서 온갖 고뇌의 포즈를 잡는 것은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몰래 카메라로 찍는다면, 뇌 속까지 찍는다면 정말 가관일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 이우만
옛말에 ‘상선유수’라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그렇다.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것, ‘배고프면 밥 먹고, 똥 마려우면 시원하게 싸고, 잠이 오면 자는 것’이 최고의 행복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살아 있다는 건 공교롭게도 배가 고픈데 먹을 게 없거나 아직 갈 길이 멀고, 똥 마려운데 변비이거나 급한 전화가 오고, 잠이 오는데 불면증 아니면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은 것이다. 이렇듯 늘상 몸과 마음이 따로 노니 피곤하고 고통스럽다. 몸이 흐르는 데로 마음도 가고, 마음이 가는 데로 몸도 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병이 생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내가 지리산에 온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불협화음 때문이었다. 산중에 6년쯤 살며 오매불망하는 행복이 바로 산짐승처럼 살아보는 것이었으니 배가 고프면 먹고, 똥이 마려우면 싸고, 졸리면 자는 것 아니겠는가. 다른 모든 것은 버리더라도 이것만은 꼭 실현하고픈 욕심만은 버리지 못했다. 자본과 노동의 문제 등은 일단 내 인생의 가지 않은 길 혹은 괄호 속에 넣어두고 싶었다.


그리하여 웬만하면 책을 읽지 않고,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지 않았다. 돈을 벌지 않아도 쓸 일이 별로 없으니 굶어죽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산중의 노인들이 죽거나 해서 버려진 빈집이나 절방에서 사니 집세가 필요 없고, 군불을 지피는 토방만을 고집하다보니 겨울의 보일러 가동비가 필요치 않고, 쌀 등의 먹을거리는 이래저래 뜯어먹고 절에서 얻어먹고 하다보니 사실 도시 생활비의 십분의 일이면 살 만하다.

그러니 나의 해우소는 꼭 배설의 공간이 아니라, 내가 지리산에서 거쳐간 다섯채의 집이 바로 근심을 푸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산짐승이 되리라는 것은 어차어피에 어불성설이었다. 다만 눈을 뜨자마자 냉수 한잔 마시고 곧바로 해우소로 달려가 산 너머 떠오르는 해를 보며 똥을 싸니 변비가 없고, 오전은 굶고 ‘아점’으로 한끼를 때우지만 급한 전화야 있을 리 만무하고, 잠이 오면 별로 바쁜 일이 없으니 편히 자는 것만은 해온 셈이다. 서울에 살 때 화장실에서 온갖 고민을 하고, 시간에 쫓기면서도 신문을 뒤척이며 쓸데없는 정세분석까지 하던 일 중독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가.

책은 현대적 의미의 ‘해우소’

지리산에서 내가 거쳐간 기억 속의 해우소는 여러 군데가 있다. 그 중에서도 피아골의 피아산방과 실상사의 해우소 풍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피아산방의 해우소는 재래식 그대로인데 양철 지붕만 있고 벽이 없다. 얼마 전에 펴낸 <옛 애인의 집>의 시들도 대개는 바람이 아랫도리를 스치고 지나가는(거풍) 그곳에서 얻은 것들이며, 그곳에서 읽은 책이라고는 달랑 <채근담> 한권을 철사로 매어두고 하루 한장씩 1년 반을 들여다본 것뿐이다.

실상사 생태 뒷간의의 아주 작은 창을 내다보면 천왕봉이 마주 보인다. 천왕봉을 바라보며 똥을 누고, 목조건물이어서 금지된 담배를 몰래 피우는 순간만은 그 자리 그대로가 ‘경전’이며, 해우소였다. 연재를 끝내며 굳이 책에 대해 말하라면, 지적 욕구에 사로잡히지 말고 아주 천천히 음미하며 읽는다면 ‘책은 곧 현대적 의미의 해우소’가 아닌가 할 뿐이다.

이원규 | 시인
* 시인 이원규씨의 연재는 이번호로 마칩니다. 다음호부터 소설가 이남희씨의 칼럼이 4주 동안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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