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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작은 어른들의 고난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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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0-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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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 필리프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

오늘날 부모는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고된 노동을 견디며 미래를 위해 서슴없이 이민을 떠나고, 아이를 위해 죽어도 좋다는 것은 부모라면 자랑할 것도 없는 당연한 ‘의무’다.

그러나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는 1960년 내놓은 <아동의 탄생>(문지영 옮김, 새물결 펴냄)에서 아이와 부모의 끈끈한 관계에 대한 이 당연한 통념을 뒤집는다. 14세기 이전 유럽에서는 어른과 다른 아동기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며 귀여워하고 보살피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오랫동안 가르치는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사료로 활용되지 않던 개인의 편지, 가정일기, 교육서 등의 기록과 온갖 도상들을 탐구하면서 그는 “아동을 어떻게 보는가는 그때그때의 역사와 문화에 지배된다”고 밝혔다. 중세의 아이들은 젖을 떼자마자 어른들 사이에 섞여 함께 생활하면서 함께 일하고 함께 놀았다. 14세기 이전 중세의 그림들에서 아이들은 전혀 아이다운 모습이 아닌 축소된 어른으로만 등장한다.

소르본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지만 대학 졸업 뒤 열대과일 수입상을 하면서 대학 밖에서 역사를 연구한 ‘일요일의 역사가’였던 아리에스는 이 독창적인 책을 통해 기성 사학계를 뒤흔들었다. 아동과 부모와의 관계, 가족 내에서의 성역할,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 등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시작됐고 인문·사회 과학 전반의 지형도가 바뀌었다.

아리에스에 따르면 아동의 탄생은 근대적 학교와 가족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중세의 학교는 일차적으로 성직자를 위한 기관이었지 결코 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아이들의 도덕적·정신적 완성을 위한 규율이 도입되었다. 나폴레옹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민족국가 건설과정에서 아이들은 국민교육을 위해 막 병영처럼 운영되기 시작한 학교에 대대적으로 감금되기 시작했다.

14세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새로운 가족은 18세기 귀족과 상층 부르주아 계층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귀여운 아이들로 이루어진 ‘근대적 가족’으로 완성된다. 중세까지 보편적이던 사회 중심의 삶은 위축되고 가족이 그 자리를 확고하게 대체한다. 집안에서 남편의 권위는 점점 더 확고해지고 아내와 아이들은 부권에 철저하게 종속된다. 한편 사람들은 점점 가족을 위해 그 중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심적·물적 에너지를 쏟아붓게 된다.

그리하여 아리에스는 이렇게 선언한다. “근대에 들어와 승리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그렇다면 근대 이후의 가족은 또 어떻게 변화할까 가족 안에서 남녀, 아이들의 관계는?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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