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와 영화로 만나는 뉴 이란 시네마의 누이 파로하저드, 그 영혼의 울림
“생명의 모든 것이여/ 쓰라린 기억의 손을 내 사랑의 손에 두어라/ 그리고 삶의 뜨거움을 느끼는 너의 입술을/ 내 사랑의 입술에 보내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국내에도 개봉됐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의 원제이기도 한 이란의 여성 시인 포루흐 파로허저드(Furugh Farrukhazad 1932~65)의 시 한 구절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를 기억하는 분들께는 감회가 새로울 특별전을 준비한다. 서른세살의 나이에 요절한 파로허저드의 시와 영화 세계를 살펴보는 ‘파로허저드 특별전: 뉴 이란 시네마의 누이’가 그것이다. 파로허저드의 유작 다큐멘터리 <검은 집>의 상영과 함께 시낭송회를 할 예정이며 시집도 발간한다. 키아로스타미 등 많은 이란 감독들에게 영감을 준 파로허저드의 예술세계가 영화제에서 소개된 적은 거의 없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낭송회나 시집 발간을 하는 것도 처음이다. 그래서, 이번 특별전은 말 그대로 ‘특별한 행사’다.
유작 <검은 집> 상영하고 시낭송회도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 아직 이란 시인의 시집이 단행본으로 발간된 적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페르시아 문화에 무관심하다. 부산국제영화제를 8회째 치러오고 있지만, 국내 관객들에게 생소한 아시아 영화를 소개하는 일은 지금까지도 어려운 과제다. 물론 아시아 영화 중 일본이나 중국 영화는 대중의 관심을 쉽게 끌어모으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의 영화는 여전히 많은 홍보와 설명이 필요하다. 이란 영화의 경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나 마지드 마지디, 모흐센 마흐말바프 등이 한때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페르시아 문화가 금방 친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서구에 경도된 우리네 문화풍토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사실 필자는 페르시아 문화의 깊이와 다양함에 압도되는 경험을 여러 번 했지만, 현재에도 3만명의 시인이 활동하고 있으며 역사상 페르도시(Ferdowsi), 사디(Sadi), 하페즈(Hafez), 오마르 하이얌(Omar Khayyam) 같은 걸출한 시인을 배출한 나라의 시집 한권 출간되지 않은 현실에 당혹감을 느끼곤 했다. 이번에 파로허저드 특별전을 기념해 출간되는 그의 시집은 그런 면에서 기대가 크다.
그런데, 왜 파로허저드인가? 파로허저드는 숱한 이란의 시인 가운데 여성을 노래한 거의 유일한 시인이었고, 때문에 특히 여성들에게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친미 팔레비 왕조와 보수적인 이슬람 성직자들이 장악한 당시 이란 사회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표상처럼 여겨졌던 그의 시 세계는 이란 문화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이란 영화의 자양분이 됐다.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던 ‘운동권’ 학생들이었고, 이제는 이란 영화의 거장이 된 키아로스타미나 마흐말바프는 자신들의 영화가 그의 시 세계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이란의 거장에게 깊은 영향 끼쳐
키아로스타미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의 제목을 파로허저드의 시에서 따왔고, 마흐말바프는 그에 관한 장문의 글을 여러 편 써서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하곤 했다. 말하자면 파로허저드는 ‘뉴 이란 시네마’의 누이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또한 파로허저드 자신이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였으며, 1962년에 연출한 <검은 집>은 이란 다큐멘터리 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마흐말바프는 이 작품을 알랭 레네의 걸작 다큐멘터리 <밤과 안개>와 비교하며 그보다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1965년 의문의 교통사고(보수 세력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로 서른세살의 나이에 요절했고, 이후 이란인들에게 신화가 되었다.
사실 이번 특별전은 우여곡절을 여러 차례 넘어야만 했다. 먼저 그의 유작 다큐멘터리 <검은 집>의 프린트를 확보하는 일이 난제 중의 난제였다. 몇몇 이란의 지인들이 <검은 집>의 프린트를 가지고 있었지만, 판권 소유주가 분명하지 않아 보내주기를 거절했다. 결국 궁리 끝에 일본에 살고 있는 이란 영화인인 쇼흐레 골파리안에게 프린트를 요청했고, 공식행사 상영용으로는 빌려주기를 꺼리는 그를 간곡히 설득해 겨우 프린트를 확보할 수 있었다.
다음은 누가 번역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파로허저드의 시가 영문으로는 많이 번역되어 있지만, 이중번역을 했을 경우 그의 시의 본래 의미나 맛이 제대로 전달될지 의문이었다. 수소문 끝에 한국외국어대에서 이란어를 강의하는 파테메 유세피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유세피 교수는 약 20년간 한국에서 살았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했다. 처음 유세피 교수를 만나서 파로허저드의 시 번역을 부탁했을 때 기뻐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 역시 파로허저드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출간되는 시집에 실릴 시의 선정도 모두 그가 해주었다.
이 시집에는 파로허저드를 소개하는 한편의 글이 실린다. 바로 마흐말바프 감독이 쓴 ‘태양은 죽었다, 아이들의 상상 속에서’라는 제목의 글이다. 마흐말바프는 지난 2000년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살롬 시네마! 마흐말바프가의 영화들’ 특별전을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란의 대표적인 감독이다. 특히 그는 부산과는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2000년 특별전 때는 온 가족이 다함께 부산을 찾았고, 올해도 그가 제작하고 큰딸 사미라가 감독한 <오후 5시>(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막내딸 한나가 감독한 <광기의 즐거움>(올해 베니스영화제 비평가 주간 초청작)과 함께 부산에 온다. 그는 또 지난 2001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칸다하르>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 교육운동과 영화·문화 산업 재건을 위해 애쓰고 있고, 탈레반 정권 이후 최초의 아프가니스탄 영화이며 올해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스페셜 멘션’ 선정작인 세디그 바르막의 <오사마>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그에게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여할 예정이다.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는 당신에게!
이러한 마흐말바프 역시 파로허저드의 열렬한 추종자이며 기꺼이 자신의 글을 보내주었다. 그는 이 글에서 파로허저드의 시를 여성에 억압적인 이란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보고, 더 나아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현대인에게 자신을 진솔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시 속에서 진정한 그를 드러냈으며, 우리는 그 속에서 진정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상상에서 존재하는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역사적·지리적 한계에서 탈피했지만 가야 할 방향을 잃고 수많은 길 앞에 놓여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그는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개요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는 오직 존재하는 것을 표현할 뿐이다. 우리였거나 혹은 우리였을지 모르는 것들에 대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진정한 자아 혹은 잃어버린 정체성에 관하여.”
마흐말바프의 이 글은 파로허저드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마흐말바프는 또 10월8일에 열릴 시낭송회에서 직접 페르시아어로 파로허저드의 시를 낭송하기로 했다. 거장 감독이 읽어주는 시 한편의 감동이 오랫동안 관객의 가슴과 뇌리에 남아 있기를, 페르시아와 한국 사이의 거리감을 좁혀주기를 고대한다.
김지석 |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
유작 <검은 집> 상영하고 시낭송회도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 아직 이란 시인의 시집이 단행본으로 발간된 적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페르시아 문화에 무관심하다. 부산국제영화제를 8회째 치러오고 있지만, 국내 관객들에게 생소한 아시아 영화를 소개하는 일은 지금까지도 어려운 과제다. 물론 아시아 영화 중 일본이나 중국 영화는 대중의 관심을 쉽게 끌어모으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의 영화는 여전히 많은 홍보와 설명이 필요하다. 이란 영화의 경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나 마지드 마지디, 모흐센 마흐말바프 등이 한때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페르시아 문화가 금방 친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서구에 경도된 우리네 문화풍토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 파로허저드의 시적 상상력은 이란 영화의 자양분 구실을 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마흐말바프의 〈칸다하르〉, 파로허저드에 대한 다큐멘터리 〈The Mirror of the Soul〉.(위에서부터 아래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