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맞춤정보로 독자 사로잡는 실용서들… 자기계발 돕고 욕망 자극하며 시장 넓혀
<사슴벌레·장수풍뎅이 키우기> <오카리나 배우기> <내 피부에 딱 맞는 천연비누 만들기> <메모의 기술> <나의 꿈 10억 만들기> <내 아이 똑똑한 부자 만들기> <노멀한 사람이 스페셜하게 성공하기> <펜션으로 떠나는 낭만여행> <성공하는 10대의 비밀노트>….
서점에 등장하는 실용서의 세계는 끝이 없다. 고상하고 수준 높은 학문의 장식을 떼버리고, “어때 솔직하게 네가 필요한 게 뭐야?”라고 직설화법으로 말을 거는 이 실용서들은 신문이나 잡지의 ‘우아한’ 출판면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지만, 독자들과는 아주 가까운 사이다. 인문서나 사회과학 서적들이 1천~2천권만 팔려도 다행이라는 출판 불황 속에서도 이 책들은 수만권씩 팔려나간다.
지금 한국인은 무엇을 원하는가
‘실용서’라는 말엔 이미 인문·사회과학 서적보다는 약간 ‘수준 낮은 책’ ‘장사를 위한 책’이라는 선입견이 따라다닌다. 그러나 사슴벌레를 키우고, 강아지 털 자르는 법을 알려주고, 10억원 버는 방법을 이야기하며, CEO들은 이렇게 메모를 한다고 보여주고, 아이에게 부자 되는 법을 가르치라고 하는, 그래서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이 책들이야말로 지금 한국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너무나 너무나 솔직한’ 잣대가 아닐까.
‘나밖에 중요하지 않다. 나를 찾아서, 나에게 투자하라.’ 출판계 관계자들은 요즘 실용서들에 반영되는 사람들의 욕망을 이렇게 정리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은 “회사에서도 언제나 잘릴 수 있고, 사회나 가족이라는 안전망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철저히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며 “외환위기 이후 철저한 개인주의가 굳어지면서 나에게 ‘딱 필요한’ 매우 세분화되고 세밀한 맞춤정보, 개인적인 욕구에 솔직한 실용서들이 잘 팔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누구나 개인의 능력에 따라 마음껏 활동하며 대우받을 수 있는 시대”라는 홍보성 문구와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제든 직장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현실에서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처럼 “당신의 인생에서 일어날 변화에 대응하는 확실한 방법을 찾으라”는 책은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변화해서 살아남으라, 회사에서 ‘잘려도’ 살아날 나만의 방도를 찾아 준비하라는 ‘노동의 유연성’ 메시지가 이런 책들에 담겨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직후에는 창업, 재테크, 미래예측 등이 최고의 판매부수를 기록했지만 이제 그런 책들의 인기는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창업으로 성공하기도 어렵고, 경제침체 때문에 주식·부동산 등 재테크도 불안해진 요즘 경제, 경영서의 초점은 자기의 몸값을 높이고 인맥을 관리하고 회사 안팎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퍼스널 브래딩> <인맥지도를 그려라> 같은 책이나 <메모의 기술> <설득의 기술> <설득의 심리학> 등 세련되게 정리돼 ‘실전’에서 바로 응용할 수 있는 매뉴얼이 인기다. ‘이대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과 ‘다른 사람을 앞지르고 살아남고 싶다’는 욕망을 현란한 문구로 자극하는 책들이 팔린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단순하게 살아라>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처럼 스스로 조금만 변하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자기계발서도 꾸준히 독자들의 호응을 얻는다.
10대들도 자기관리 대열에 합류
최근의 새로운 현상은 이러한 자기관리와 경영서의 타깃 독자가 10대로까지 내려가고 있다는 것, <열두살에 부자가 된 키라>를 선두로 <부자는 10대에 결정된다> <우리 아이 똑똑한 부자 만들기> <10대들을 위한 리더십> 등이 관심을 끌고 있다. 20·30대에게는? <신용카드 빚 해결하기> <빚, 확실하게 줄여주는 63가지 방법> <내가 찍은 회사에 들어가는 17가지 비법> 등 현실을 반영한 씁쓸한 책들이 나오고 있다.
자기관리와 어학 외에 일반 실용서들은 훨씬 더 세밀하고 치밀하게 진화하고 있다. <이은결의 눈으로 배우는 마술책> <내 몸을 살리는 요가 30분> <사슴벌레·장수풍뎅이 키우기> <콜린 박의 미국 유학 파일> 등 실용서의 화제작들을 기획한 넥서스의 이명희 실용서 팀장은 “취향에 맞게 자기를 계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나만의 것’을 찾는다. 피아노 같은 흔한 악기 대신 오카리나를 배우고, 단순히 애완견 키우기 같은 책보다는 직접 애완견의 털을 잘라줄 수 있는 미용서적을 읽으며, 애완동물 서적 코너에서도 햄스터, 곤충, 도마뱀 등과 관련된 독특한 것을 찾는 이들이 많다”고 말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 이상은 돼야 실용서 시장이 발달하고,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실용서 시장은 커진다는 게 출판계의 정설이다. 여가나 취미를 즐길 만한 광범위한 계층이 등장하면서 “나만의 독특한 것”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전문적인 책들이 기획되고 팔려나간다.
이런 점에서 솔출판사의 은 최근 실용서 기획자들 사이에 화제가 됐던 책이다. 영국 특수부대 SAS가 북극의 빙판, 사막, 열대우림, 망망대해 등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소지품으로 생존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고, 어떤 풀을 뜯어 먹으며 탈출하는지를 경악스러울 정도로 자세히 설명하는 629쪽짜리 이 생존교본이 의외로 잘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몇몇 출판 기획자들이 검토했지만 “도대체 이런 책을 누가 살까” 하는 걱정 때문에 선뜻 출판하지 못한 책이었다. 기획자들은 “이런 책까지 잘 팔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 독자들의 취향이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전문화·세분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교보문고 홍보이벤트팀 남성호 팀장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1~2년 전부터 주5일제가 퍼져가면서 여행이나 레저 관련 책이 인기를 끄는데, 이전처럼 동해안 여행, 미국·중국 여행처럼 어느 한 지역을 포괄적으로 소개하는 책보다는 <펜션으로 떠나기> <기차 타고 떠나기> <자전거로 떠나기> <주말에 떠날 수 있는 곳> 등 매우 세분화된 책들이 잘 팔린다”고 지적했다.
세분화된 정보들… 취미·부업을 함께
일반적인 건강관리 책보다는 발마사지나 요가 등이 인기를 얻고, 다이어트 서적도 뱃살 빼기, 골반 다이어트, 다리살 빼기 등으로 특화됐다. <아카데미 토익> 한권이면 끝이었던 토익 준비 서적도 기초들을 위한 책, 700점을 900점으로 올려주는 책 등 점수대에 맞게 세분화됐다. 고령화 사회에 맞게 실버출판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여성학자 박혜란의 <나이듦에 대하여>는 출간 1년 만에 10만부를 넘겼고, 적극적인 삶의 방법론을 재치 있게 제안하는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58> <중년이후> <인생의 황혼에서> <남자의 후반생> <마흔혁명> 등이 잇따라 중년 이상의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취미와 부업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천연비누 만들기, 손뜨게, 인형, 비드 만들기 등도 잘 팔린다. 출판사들은 독자들의 다변화된 욕망에 맞게 맞춤형 정보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실용서가 이렇게 급속도로 발달하게 된 것은 구제금융 위기를 겪고 난 3~4년 전부터다. 그 전에는 실용서라 해도 영어책이나 일반적인 수준의 경제·경영서, <엄마가 딸에게 주는 요리책>이나 <주부백과> 같은 온갖 요리를 책 한권에 담은 요리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을 맞아 경제가 불안할수록 사람들이 자기에게 더 투자하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는 욕구를 먼저 읽어낸 출판사들이 전문 실용서를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했다. 넥서스, 영진닷컴, 중앙M&B, 김영사, 웅진출판 등 실용서에 주력한 출판사들이 1년에 거의 두배씩 성장할 정도로 성공을 거두면서 다른 많은 출판사들도 잇따라 이 영역에 뛰어들고 있어 출판사들간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출판사들은 치열한 시장에서 미리 트렌드와 독자들의 관심을 읽고 기획하고 서점의 진열대에 한번 스치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의 마음을 확 잡아끌 수 있는 디자인과 사진까지 깔끔하게 만들어내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실용서 시장에서는 특히 저가책은 실패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행과 애완동물 키우기에 꽤 많은 돈을 쓰는 독자들이 고급스러운 종이와 사진, 편집 등이 돋보이는 책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발빠르게 움직이느냐가 중요한 시장에서 무엇을 만들 것인가 하는 기획은 출판 기획자들이 가장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는 부분이다. 최근 마술책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은결의 눈으로 보는 마술책>은 넥서스의 이명희 팀장이 우연히 텔레비전의 ‘인생역전’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은결씨를 보면서 기획한 것이다. 소극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마술을 배웠다는 (당시에는) 무명 청년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이 팀장이 다음날 바로 이씨를 찾아간 것이 베스트셀러로 이어졌다. 물론 이처럼 기획자의 감으로 만들어지는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엄청난 시장조사와 트렌드 분석, 여러 번의 회의를 통해 기획된다.
치밀한 조사로 시장의 욕구 읽어내
보기와 달리 실용서는 대필작가나 사진작가의 오랜 작업을 거쳐 완성된다. 유명한 요리나 인테리어 전문가의 이름으로 나온 실용서들은 실제론 대필작가들의 솜씨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가가 실제로 참여하고 내용을 알려주지만 전문가라고 해서 글을 직접 쓰고 내용을 정리하는 솜씨까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필작가가 전문가를 오랫동안 취재해 많은 정보를 자세하게 얻은 다음 정리해 책을 써낸다.
공짜 인터넷 정보와의 경쟁도 기획자들이 신경을 쓰는 부분,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꼭 필요한 것을 추려주는 역할, 인터넷보다 빨리 시장의 욕구를 읽어내고 구체적인 정보를 단순명쾌하게 정리해주는 것이 실용서의 경쟁력이다. 인터넷에 수많은 공짜 정보가 떠돌더라도 독자들은 신뢰할 만한 출판사나 지은이가 골라 정리해주는 정보에 비싼 돈을 기꺼이 지불한다.
빡빡한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 ‘여가’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시간 동안 그나마 내 것이 될 수 있는 무엇을 애타게 찾는 한국인들의 욕망의 지도에 근거해, 출판사들은 실용서라는 이름의 세심한 ‘꿈의 매뉴얼’을 오늘도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 장광석
‘나밖에 중요하지 않다. 나를 찾아서, 나에게 투자하라.’ 출판계 관계자들은 요즘 실용서들에 반영되는 사람들의 욕망을 이렇게 정리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은 “회사에서도 언제나 잘릴 수 있고, 사회나 가족이라는 안전망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철저히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며 “외환위기 이후 철저한 개인주의가 굳어지면서 나에게 ‘딱 필요한’ 매우 세분화되고 세밀한 맞춤정보, 개인적인 욕구에 솔직한 실용서들이 잘 팔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누구나 개인의 능력에 따라 마음껏 활동하며 대우받을 수 있는 시대”라는 홍보성 문구와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제든 직장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현실에서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처럼 “당신의 인생에서 일어날 변화에 대응하는 확실한 방법을 찾으라”는 책은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변화해서 살아남으라, 회사에서 ‘잘려도’ 살아날 나만의 방도를 찾아 준비하라는 ‘노동의 유연성’ 메시지가 이런 책들에 담겨 있다.

▷ , <회사에서 살아남기>, <펜션으로 여행>, <서바이벌 백과사전>…. 치열한 실용서 시장에 나오는 수많은 책들은 독자들의 욕망에 직설적으로 호소한다.

사진/ 대형서점의 실용서 코너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 ‘나만의 것’을 찾는 독자들을 겨냥한 새롭고 전문화된 책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김진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