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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뇌를 속여 식욕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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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9-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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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 분비 호르몬 이용한 식욕억제 약물 개발… 아직까지 부작용 없는 비만치료제는 없어

우리나라에서도 갈수록 비만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만은 이미 서구사회에서 큰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비만은 위암과 유방암의 위험률을 2배 이상 증가시킨다. 게다가 관절염, 고혈압, 당뇨병 등 대표적인 성인병의 주요 원인이 바로 비만이다. 단순하게 비만은 신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많은 고통을 주고 있다. 비만으로 인한 부적응으로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서서히 고립된다. 서양인의 경우 비만한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이혼율과 자살률을 보인다.

지방을 축적해야 살아남았던 ‘비극’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비만한 사람의 수입은 그렇지 않은 일반인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것이 원인과 결과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뚱뚱해서 활동력이 떨어져 경제력이 떨어지는 면도 있지만, 경제력이 떨어지다보니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아 이것저것 먹다보니 살이 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과식의 주요 원인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거의 맛과 포만감을 모르는 상황에서 식사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과식으로 이어진다. 비만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 특히 보건의료비의 지출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모든 성인병의 원인인 비만은 현재 서구 선진국의 최대 골칫거리여서 이를 약물로 치료하기 위한 연구가 매우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사진/ 지금까지 개발된 비만치료제는 일정한 부작용을 지니고 있다. 한 여성이 복부 비만도를 측정하고 있다.(한겨레 윤운식 기자)
인간은 왜 자신이 필요한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미련하게 먹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인간의 진화과정과 깊은 관계가 있다. 원시인류 시절에는 지금처럼 음식물을 저장하거나 따로 경작하지 못했기에 일단 음식물이 보이면 최대한 많이 먹어두는 것이 유리했다. 그 뒤 음식물을 거의 구경도 하지 못하는 어려운 시절이 올 때, 영양분을 잘 축적해둔 인간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특히 이러한 영양분의 저장에는 지방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다. 뱃살이나 신체 곳곳에 저장된 지방은 원시인류가 춥고 배고픈 시절을 잘 견디게 하는 필수 물질이었다. 축적된 지방 덕택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로 잘 넘겨줘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대인들은 남은 열량을 축적하지 않고 모두 태워버릴 수 있는 신체를 원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신체구조를 가진 원시인류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그들의 신체 메커니즘은 이어질 수 없었다. 원시시대와 달리 현대는 음식이 차고 넘친다. 또한 생산과 소비가 철저히 분리돼 있어, 쇠고기를 먹기 위해 소를 잡으러 들판을 뛰어다닐 필요가 없다. 이 때문에 현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우리 몸은 열심히 열량을 축적시키는 데 익숙해 비만에 이른다. 지구가 다시 원시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인간들의 유전적 소인이 앞으로 100여년 사이에 바뀔 가능성은 없기에 약물로 비만을 치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제약회사는 그야말로 엄청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사업임에 틀림없다.

만일 부작용이 없는 비만치료제가 개발된다면 본격적으로 지방이 축적되는 15살 이후부터 대략 80살까지 비만치료제를 복용할 것이라고 볼 때, 비만치료제 시장은 엄청나다. 비만을 약물로 치료하는 방식은 크게 4가지다. 가장 단순하며 널리 알려진 방법은 흡수되는 양분의 양을 줄여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약으로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스위스 로슈(Hoffman-La Loche)제약의 제니칼(Xenical)이다. 이 약은 지방이 위에서 소화 흡수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하지만 시중의 많은 비만치료제가 그렇듯 부작용이 있어 모두가 안심하고 사용할 수는 없다. 소화 흡수되지 못한 지방 때문에 전혀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급성 설사가 유발될 수도 있다.

사진/ 현대인은 남은 열량을 축적하면서 진화를 거듭해왔다. 많은 여성들은 출산 뒤 비만으로 고통을 겪는다.
다음의 방법은 축적된 열량을 몸 안에서 모두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물질을 투여하는 것이다. 티록신(Thyroxine)은 활동성을 매우 높여주는 대표적인 호르몬이다. 갑상선에서 분비되는 이 호르몬이 과다한 사람들은 매우 활동성이 높아서 언제나 몸을 움직여야만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특이한 체질이다. 왕성한 식욕에도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인공적으로 투여된 티록신이 심장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현재까지 개발된 인체 내 에너지 소비를 활성화시키는 약물은 부작용으로 독성이 나타나 널리 보급되지 못한 상태이다. 에너지 소비는 힘들지만 운동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지방이 소화돼 에너지원으로 공급되는 길목을 차단하는 게 있다. 이는 첫 번째 방법에 비해 분자생물학적 수준의 기술이다. 이 기술은 사람이 양분을 섭취해 세포 내에서 에너지원으로 바뀌는 과정에 개입하는 것으로 대단히 정교한 기술이다. 하지만 인간의 몸에서 가장 중요하며 기초적인 세포 내 에너지 대사 과정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예상조차 하기 힘든 기술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곧 안전한 약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열량 적은 음식물도 비만 막지 못해

그리고 식욕을 조절함으로써 아예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섭취량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는 약물을 사용하는 방식이 있다. 인간의 식욕은 렙틴(leptin)과 게레린(Ghrelin)이라는 호르몬이 서로 경쟁적으로 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지방분을 많이 섭취할수록 분비되는 렙틴이 많아지고, 높아진 렙틴의 농도는 신경을 타고 뇌로 전달돼 포만감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식욕을 줄인다. 또 게레린은 위에서 혈류를 타고 두뇌로 전달되는 물질로, 식욕을 증가시켜 음식물을 섭취하도록 뇌에 명령을 한다. 그런데 비만한 사람의 식욕을 줄이기 위해 렙틴만을 따로 주사해도 식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 이유는 이미 그들의 뇌는 높아진 렙틴의 농도에 적응된 상태이며, 렙틴의 비타민과 같이 필요한 이상으로 투여된 용량이 별다른 작용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대장과 소장에서 분비되는 PYY라는 호르몬 물질을 이용하면 더욱 안정적으로 식욕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약은 내장으로 음식물이 들어와서 식욕을 줄여야 한다는 신호를 극단적으로 증폭시켜 뇌에 전달시킴으로써 식욕을 억제시킨다는 것이다. 즉, 내장이 두뇌에서 음식을 많이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약은 기존의 식욕억제 약물, 예를 들어 알파-MSH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성욕 저하와 같은 현상이 없으나 매일 일정량을 직접 주사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이전의 어떤 치료약물과 비교해서 가장 안정적이라고 한다. 이런 과학적인 약물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아주 ‘밥맛’ 떨어지는 이야기나 동영상을 보여줌으로써 식욕을 줄여주는 새로운 서비스 산업이 곧 생길지도 모르겠다.

조환규 | 부산대 교수·컴퓨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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