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남자가 늙을수록 귀여워야 하는 까닭… 규범에 충실하기보다는 흔들리는 게 매력적
한 2년 전부터인 것 같다.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많은 여자들이 시도때도 없이 ‘귀엽다’는 감탄사를 남발하는가 싶더니, 최근엔 급기야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게도 서슴없이 이 방자한 감탄사를 쓰기 시작했다.
대상이 또래 남자일 경우 ‘귀엽다’의 의미는 ‘다른 사람한테는 ‘꽝’일지 몰라도 나로서는 한번쯤 연예해보고 싶은 대상이다’ 정도의 함의를 지닌다. 예를 들어 내 후배는 자기 친구가 ‘별 볼일 없다’는 이유로 차버린 남자를 자신이 주섬주섬 챙겨 사귀고 있는데, 그 전말은 이렇다. 그 남자가 잘나가는 금융인인 줄 알고 미팅 자리에 나갔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별 볼일 없는 은행원(요즘 여자들은 은행원을 금융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급기야 그 남자가 미팅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나. “요즘은 저도 모르게 사석에서도 ‘아, 고객님∼’ 하는 직업병적인 호칭이 마구 튀어나와요.” 자신을 초라하고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일화를 여자 앞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랍시고 해대는 그 순진한 청년이 내 후배에게는 몹시 귀엽게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강력한 성적 함의를 내포한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예를 들어 포토그래퍼 L과 O는 자기 자랑을 드러내놓고 하는 타입이다. “어유, 이 화보 죽이네” 하고 칭찬하면, L은 “내가 물이 오를 만큼 올랐잖아” 하는 말로 응수하고, O는 “내 별명이 오죽하면 지니어스 오일까” 한다. 우리는 이때도 약간 눈꼴시지만, 자기 자랑을 솔직하고 뻔뻔스럽게 하는 인간들을 ‘역시 좀 귀엽다’고 결론 내린다. 예전 같으면 ‘상종 못할 인간 베스트 3’ 안에 들어갈 만한 타입들이 자신의 인격적 혹은 도덕적 결함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호감’의 대상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노인들에게도 대단한 호감의 표시로 이 깜찍한 감탄사를 헌사하고 있다. 우리 현대사가 존경하는 어른 리영희 선생님이 안티조선 캠페인 ‘나를 고발하시오’ 명단에 사인하면서 보낸 편지를 봤을 때다. 그분은 편지 말미에 홍세화 선생과 김정란 선생 같은 이 운동의 핵심 인물들에게 어른답게 충고하고 있었다. “너무 일들만 열심히 하지 말고, 술도 먹고 좀 놀기도 하라고.” 그 대목에서 나는 겉으로는 그냥 정신없이 ‘귀엽다’ 소리를 연발했지만, 속으로는 ‘일상적 파시즘을 경계하라’는 말보다 더 속 깊은 충고라고 생각했다. 마치 공자를 보는 것 같았다. 심심치 않게 어린아이 장난 같은 농담도 즐겨 했다는 이 성인은 일부러 어수룩한 체하며 소인을 멀리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풍문에만 의지한 채 진짜 공자가 이 나라를 망쳤다고 생각해온 나는 공자의 이러한 귀여운 성품에 호감을 가진 다음부터는 <논어>를 읽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 노인들을 경멸하는 풍조가 있다고 하는데, 젊은이들에게,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어른이 되려면 누구나 조금씩 귀여워야 한다는 발칙한 주장을 하고 싶다. 세키 간테이라는, 일본에서 존경받을 만큼 철없는 노인네가 쓴 <불량 노인이 되자>란 책을 그 교본으로 삼아도 좋겠다. 80살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집 카운터에 앉아서 객쩍은 소리를 늘어놓는다는 이 어른에게는 지금도 여자친구라면 버스 가득 채울 만큼 많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지나치게 어른답게(솔직히 ‘∼답게’라는 규약처럼 답답한 것은 없다) 살면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그냥 인간답게 열심히 흔들리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그런데 나는 요즘 노인들에게도 대단한 호감의 표시로 이 깜찍한 감탄사를 헌사하고 있다. 우리 현대사가 존경하는 어른 리영희 선생님이 안티조선 캠페인 ‘나를 고발하시오’ 명단에 사인하면서 보낸 편지를 봤을 때다. 그분은 편지 말미에 홍세화 선생과 김정란 선생 같은 이 운동의 핵심 인물들에게 어른답게 충고하고 있었다. “너무 일들만 열심히 하지 말고, 술도 먹고 좀 놀기도 하라고.” 그 대목에서 나는 겉으로는 그냥 정신없이 ‘귀엽다’ 소리를 연발했지만, 속으로는 ‘일상적 파시즘을 경계하라’는 말보다 더 속 깊은 충고라고 생각했다. 마치 공자를 보는 것 같았다. 심심치 않게 어린아이 장난 같은 농담도 즐겨 했다는 이 성인은 일부러 어수룩한 체하며 소인을 멀리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풍문에만 의지한 채 진짜 공자가 이 나라를 망쳤다고 생각해온 나는 공자의 이러한 귀여운 성품에 호감을 가진 다음부터는 <논어>를 읽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 노인들을 경멸하는 풍조가 있다고 하는데, 젊은이들에게,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어른이 되려면 누구나 조금씩 귀여워야 한다는 발칙한 주장을 하고 싶다. 세키 간테이라는, 일본에서 존경받을 만큼 철없는 노인네가 쓴 <불량 노인이 되자>란 책을 그 교본으로 삼아도 좋겠다. 80살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집 카운터에 앉아서 객쩍은 소리를 늘어놓는다는 이 어른에게는 지금도 여자친구라면 버스 가득 채울 만큼 많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지나치게 어른답게(솔직히 ‘∼답게’라는 규약처럼 답답한 것은 없다) 살면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그냥 인간답게 열심히 흔들리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