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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김성녀] “엄마는 아직 끝을 보지 못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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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9-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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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와 닮은 그녀, 김성녀의 ‘뻔뻔스러움’을 가슴 뻐근하게 이해하다

1993년, 장안의 화제가 됐던 악극 <번지 없는 주막>에 난 그녀와 함께 무대에 섰다. 윤문식, 박인환, 최주봉 같은 화려한 선배들도 그랬지만, 특히 그녀와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건 아직 신인 티를 못 벗었던 내겐 큰 영광이었다. 난 그녀와 ‘함께’ 무대에 서긴 했지만 연습기간과 공연기간 내내 그녀를 ‘구경’하느라 넋을 잃곤 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끝내 고백하진 못했지만 난 공연마다 그녀의 노랫소리를 듣고 연기하는 모습을 훔쳐보면서 그녀의 팬이 됐고 한편으론 그녀의 실력과 매력을 훔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곤 했다. 질투는 감히 느낄 수 없었다. 그저 그녀는 내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무대 밖에서도 그녀는 언제나 밝고 유쾌하고 따뜻한 선배였다.

최승희의 영혼이 그녀를 택했다?

그녀가 이번엔 무용계의 전설, 최승희를 살아낸다고 한다. 극단 미추가 제작하고 그녀의 남편이자 연출가인 손진책이 연출하는 뮤지컬 <최승희>. 그녀의 몸을 빌려 최승희가 우리 곁에 잠시나마 다녀간다고 생각하니 감격스러움에 소름이 돋는다. 언젠가는 최승희가 우리 무대 위에 재현될 거라 생각했고 그 작업이 김성녀의 몸에서 이뤄진다는 소식은 너무나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우리나라 여배우 중에서 최승희를 제대로 그려낼 이는 김성녀뿐임을 그녀 자신을 비롯해서 모든 여배우들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외모가 비슷하다는 게 공연의 성공요인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지만 생전의 최승희 모습과 너무나 흡사한 이번 공연 포스터를 보고는 최승희의 영혼이 스스로 김성녀를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용수를 연기하기 위해 살을 8kg이나 뺐다는 그녀의 모습은 50대의 나이가 무색하게 너무나 젊고 아름다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작품 얘기부터 했다. 실존인물을, 그것도 세계 무용사에 큰 별인 사람을 극화한다는 건 잘해야 본전인지라 제작진의 산고는 유난했다. 결국 최승희를 ‘브리핑’하는 걸 피하고 ‘인간’ 최승희의 모습을 부각시키기로 했다. 공연의 컨셉트를 정하자 준비는 순조롭게 풀렸는데 정작 최승희를 보여줘야 하는 김성녀는 호된 가슴앓이를 하게 됐다고 한다. 천재 무용수 최승희가 아닌 ‘인간’ 최승희를 얘기하자면 가족 얘기가 빠질 수 없었고 그러다보니 최승희의 딸 안성희의 슬픔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안성희의 슬픔이란 어머니 최승희에게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끝내 세계 무용팬들에게 ‘어미’를 빼앗긴 것인데, 그런 최승희 모녀의 애증이 바로 자신과 자신의 딸이자 딴따라의 길로 들어선 딸 지원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했던 것이다.

김성녀 자신 역시 아들 지형과 딸 지원을 뱃속에 가지고 있다가 낳기만 했을 뿐, 반은 양쪽 할머니들이 키우고 나머지 반은 스스로들 알아서 컸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잘나가는 국극 배우셨기 때문에 그녀는 기억이 날 때부터 극장 먼지를 마시며 자랐다. 또 어머니의 존재는 부엌에서보다 무대 위에서 더 크게 각인됐기 때문에 자신 역시 가정보다 일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가끔 어린 남매가 자신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엄마를 서운해하면 그녀는 언제나 “기운 내, 얘들아. 엄마를 이해해야 해. 엄마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이야. 난 너희에게 잘못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스스로 헤쳐나가야지”라고만 했고 그녀는 아이들의 반응을 살필 새도 없이 공연장으로 바삐 떠나곤 했다. 그리고 외로움은 아이들의 친구가 돼버린다.

사진/ 그녀는 정신없이 공연 얘기만 했다. 마치 연극이라는 ‘신흥종교’에 빠진 신도 같았다.

“가족에게 미안”울고 또 울다가…

딸 지원의 경우는 섭섭함이 더했다. 부모의 뒤를 이어 연극인이 됐지만 부모 덕을 본다는 말을 듣게 하지 않으려는 김성녀 부부의 걱정은 공연마다 이어지는 날카로운 비평으로 표현됐고 어느 날 지원은 대성통곡을 하며 섭섭함을 토로하더란다. 제발 한번만이라도 따뜻하게 얘기해 달라고…. 아들 지형은 군입대 전에 우울증까지 앓았다. 정신과 의사의 충고는 의외로 너무 간단한 거여서 충격적이었다. 그저 아들의 말에 귀기울여 달라는 거였다. 지금은 두 아이 다 훌륭한 어른이 돼서 자기 인생을 똑 부러지게 살아가고 있는데 무용에 미쳐서 가족을 등한시했던 최승희의 영혼 속에 푹 빠진 그녀는 지금에서야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아이들을 외롭게 했는지 깨달았다.

가진 재능이 너무 많아서 평생 일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 무대 위의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고 프로로서의 욕심이 끝이 없었던 것, 남편이 최고의 후원자였다는 것, 딸이 자신의 길을 이어받았다는 것, 그 모두 최승희와 닮은 점이지만 특히 딸과의 애증관계가 너무나 자신의 얘기였다. 극중 마지막 대사인 “얘야, 엄마는 아직 끝을 보지 못했구나. 내 마음은 아직 춤을 추고 있단다”를 연습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면서 인터뷰 내내 눈시울을 적셨다. 남편에게도 좋은 동료일 뿐 아내 노릇을 한 적이 없다면서 가족 모두에게 너무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는 울고 또 울었다.

그런데 잠시 뒤, 후회하시나, 앞으로 이 공연을 계기로 뭔가 변화가 생기는 것인가를 물었다가 같은 딴따라가 아니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할 대답을 들었다. 자신에게 상처받았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도록 미안하지만 그저 지금 많이 미안할 뿐 이 공연이 끝나면 도로 원래 자리로 돌아갈 것 같다는 거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 앞에서 두 시간 내내 훌쩍이며 아들과 딸의 고통을 전해주고 나서 한 말치고는 참으로 황당한 대답이었다. 심지어 언제 슬퍼했느냐는 듯 생기 가득한 얼굴로 신이 나서 새 작품 얘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선배한테 할 소린 아니지만 뻔뻔스럽기까지 했다.

아빠 같은 엄마, 이웃집 아저씨 같은 아빠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년 내내 연습과 공연 안에서 사는데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체력에 신경쓸 겨를조차 없단다. 언제나 피로에 쌓여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잠을 자야 했고 그래서 딸과 놀아줄 시간이 없었다는 거다. 똑같이 연극 만드는 일을 하는데 아이들에 대한 부채감은 남편보다 여자인 자신이 더 크게 느껴야 하는 현실이 억울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인간’ 최승희에 대한 연기를 해야 하는 ‘인간’ 김성녀에 대해서 묻고 싶었지만, 공연 홍보를 위해 인터뷰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정신없이 공연 얘기만 했다. 마치 연극이라는 신흥종교에 빠진 신도 같았다. 나도 딴따라지만 그녀의 그런 에너지 앞에선 내가 가진 끼와 열정은 애들 장난 같다고 생각했다.

작곡을 공부하는 그녀의 아들 표현에 따르면 그녀는 ‘아빠 같은 엄마’였고 그녀의 남편 손진책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아빠’였다고 한다. 내가 오랜 세월 객석에서 그녀의 명연기와 남편의 멋진 연출을 보며 행복해했던 데는 이들 가족의 희생이 녹아 있었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저려온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 중 어느 한 가지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예술을 할 수 없다는 한 선배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곧 그녀의 ‘뻔뻔스러움’을 가슴 뻐근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혹 내 아이에게 섭섭한 엄마가 될지라도 나 역시 그녀처럼 그렇게 뻔뻔스러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뻔뻔스러움의 정체는 딴따라만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난 지형 지원 남매가 이제는 그녀를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 아이들(이젠 ‘아이’가 아니지만) 둘 다 딴따라의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오지혜 | 영화배우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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