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군신위>/배우들이 모여사는 경북 합천군 가회면… 집안의 잔치로 일상의 소용돌이 잠재워
우리는 사람이 죽었을 때 ‘돌아간다’라는 말을 쓴다. 돌아가는 곳이 망자의 생명을 품었던 어머니의 자궁 속인지, 태초의 인간을 빚어냈다는 흙인지, 우리 민족의 시원지라는 북서쪽 바이칼호 부근의 어디쯤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죽음은 어디론가 돌아가는 것이다. 돌아간다는 말에는 익숙했던 것으로부터의 결별과 동시에 시작될 새로운 삶에 대한 기원이 담겨 있다. 거추장스런 육신의 짐을 벗고 가벼워진 영혼으로 더 나은 생으로 옮겨가기를 바라는 남은 이들의 바람이 아마도 ‘돌아간다’는 말을 더욱 간절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명횡사나 요절이 아닌 이상, 죽음은 축복받을 일이다. ‘좋은 죽음’, 언뜻 형용모순처럼 느껴지는 ‘호상(好喪)’이라는 표현이 한국인에게는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병원 지하실에 빈소가 마련된 도시의 장례식장에서는 사라진 풍경이지만 전통적인 상례는 환갑이나 혼례 못지않게 떠들썩한 집안의 잔치가 된다. 한 집안에 상사가 났다고 하자. 가족들은 불을 밝혀 죽음을 알리고, 이웃과 친지, 그리고 이웃의 이웃과 친지의 친지까지 상가에 모인다. 넓은 마당에는 차양이 처지고 바깥으로 나온 솥뚜껑에는 손님들을 접대할 부침이 부산하게 만들어진다. 빈소에서 엄숙하게 절을 하고 나온 사람들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 친지들과 인사를 하면서 벌어진 술판은 어느새 동창회와 향우회 자리로 변해버린다. 동네 아이들은 벅적대는 잔칫판을 뛰어다니며 어른들이 건네는 짓궂은 술잔을 얻어먹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화투판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빈소에서 나오는 곡소리는 동네 아낙들의 수다와 화투판에서 가끔씩 오가는 고성에 묻혀버린다. 한 집안의 애사가 온 동네의 경사가 되고 죽음이 삶의 에너지를 묶어내는 과정, 그것이 우리네 죽음의 풍경인 것이다.
유교적 집안에서 자란 박철수 감독의 사유
박철수 감독(50)의 <학생부군신위>(1996)는 이러한 우리 고유의 상례 과정을 풍속화처럼 그린 독특한 영화다. 유교적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시골집의 5일장이 날짜와 상례 순서별로 기록된 이 작품에는 죽음이라는 큰 줄기 밖으로 가지를 펴는 인간 군상의 갖가지 행동과 표정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이 영화는 경북 청도의 유교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박 감독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허물어진 시골집의 기억”이기도 하다. 박 감독은 이 작품에서 영화감독인 맏상주 역할을 직접 연기하면서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시골의 상가 풍경을 관찰한다.
“92년 아버지가 고향 청도에서 돌아가셨어요. 도착한 첫날에는 공들여 키워 놓은 맏아들로부터 대접다운 대접 한번 못 받고 돌아가신 어르신 생각에 한없이 슬펐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정신없이 바쁜 상갓집이 눈에 들어오자 슬픔 대신 구경꾼이 된 나를 발견했어요. 더없는 불효자였던 셈이지요. 병풍 뒤에서 상갓집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메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골 고향집에서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나가다가 쓰러지자 가족들에게 부음이 날아간다. 객지에 흩어져 있던 고인의 자손과 형제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상가에서는 온 이웃들이 모여 돼지를 잡는다, 음식을 준비한다며 부산한 움직임이 벌어진다. 카메라는 상례 의식이 진행되는 빈소 안과 떠들썩하게 술판이 펼쳐지는 마당의 구석구석을 다큐멘터리처럼 따라간다. 서울서 성공했다는 고인의 동생이 데려온 새파란 젊은 여자는 딸 사진찍기 바쁘고, 오빠의 주검을 붙잡고 까무러칠 듯 울었던 고인의 여동생은 언제 그랬냐 싶게 술판을 옮기며 보험장사하기에 여념이 없다. 동네 아낙들은 흐느껴 울다가도 연속극 시간에는 잽싸게 텔레비전 앞에 다가 앉는다. 곡소리가 어설픈 아들 형제 앞에서 집안의 어른은 곡소리 교습도 하고 미국서 독실한 크리스천이 돼 돌아온 막내 아들은 불경 소리 옆에서 나즈막히 ‘요단강 건너서 다시 만나리∼’ 찬송가를 부른다. 마을 유지들의 상가에 어김없이 얼굴이 비치는 정치꾼들은 막간 유세도 벌이고 고인이 소일거리하던 다방 아가씨들까지 몰려와 “박 주사 돌아가시면 우리 로타리다방은 어떻게 되나요?” 통곡을 한다. 아가씨들은 손님들에게 다방 홍보를 한답시고 커피를 돌리다 급기야 노래판까지 벌인다. 박 감독의 특기이기도 한 일상의 소묘에 작은 드라마가 삽입되기도 한다. 상것의 아이를 뱃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났던 막내 딸과 ‘도라꾸’(트럭)를 훔쳐 달아나 한 집안을 몰락하게 만든 ‘원수’도 죽음 앞에서 용서를 받는다.
“상가는 죽음을 매개로 만들어지는 삶의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입니다. 잔칫집 같은 흥겨움이 있으면서 비극적이고 폭력적이며, 죽음 앞이기 때문에 용서와 화해도 쉽게 이루어 지는 곳, 한마디로 인간희극인거죠”
<학생부군신위>는 경남 합천군 가회면에서 촬영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산다’(佳會)는 이 마을에는 백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전통가옥들이 아직도 드문드문 고즈넉하게 서 있다. 영화의 주무대가 된 집은 담을 끼고 들어가 서 있는 대문 안에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구별되어 지어진 아담한 전통가옥이다. 100년 가까이 된 이 집에는 불과 석달 전만 해도 촬영팀에게 집을 빌려준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올해로 일흔여덟 된 내외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각각 지난 4월과 6월에 돌아가셨다. 동갑내기로 같은 햇수를 정정하게 살다가 사이좋게 돌아갔으니 이 역시 흔치 않은 호상이다.
단역의 애드리브가 영화의 생기 불어넣어
“남쪽 지방에 오픈 세트로 쓸 만한 집들은 많이 찾았는데 상가로 만든다니까 다들 꺼렸어요. 특히 이런 집에는 연세 많은 노인들이 많이 살잖아요. 이 집 어른들만 흔쾌히 승낙하셨지요. 할머니는 ‘이렇게 미리 상례를 치러 놓으면 더 오래 산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오셔서 오히려 좋아하셨지요. 시신 거두는 과정 연출에도 일일이 도움을 주면서 불편한 내색을 좀처럼 안 하던 분들이었는데, 어저께 찾아오는 길을 알아보러 전화했다가 돌아가신 걸 알았어요. 이렇게 잠겨진 문을 보니 바람이 가슴 한구석을 쓸고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마당에는 주인 할아버지가 올 봄 심었다는 잔디가 파랗게 깔려 있었다. 박 감독을 반겨 찾아온 마을 주민 허종홍씨(52)씨가 덧붙였다.
“6·25 동란 뒤부터 40년 넘게 두 내외가 사이좋게 사시다가 할머니가 먼저 가신 뒤에는 할아버지는 서울 아들집에 올라가셨더랬심더. 두달쯤 뒤에 잠시 들러본다고 오셔서 같이 추어탕도 먹고 정담도 나누고 했는데 그 다음날 돌아가셨다 아임니꺼. 생전에 이곳에 우체국도 세우고 존경받는 어른이었는지라 가회면 사람들만 1천명 이상 상가에 찾아와서 일손도 돕고 밤도 새웠지예.”
마을 소방서의 대장을 맡고 있어 허 대장으로 불리는 허씨는 이 영화에서, 민방위 훈련으로 우왕좌왕하는 상객들을 진정시키는 민방위 대장 역을 능청스럽게 연기한 배우이기도 하다. 허 대장뿐 아니라 이 영화에는 400여명의 가회면 주민들이 배우로 등장했다.
“주·조연급을 제외한 모든 배우들이 동네주민이었습니다. 약간 어설퍼도 자연스러울 것 같아서 그렇게 했죠. 한두개씩 주어진 대사를 제대로 외우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오히려 뜻밖의 애드리브가 영화의 생기를 불어넣었죠. 예를 들면 습을 하는 과정에서 “저승가는 길에는 씻지도 못하니까”를 “저승 길에는 목간통도 없으니까”로 바꾸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제 영화이기도 하지만 가회면 주민들의 영화이기도 해요.”
대사는 전혀 없었지만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바위 역시 8살난 동네 아이였다. 서울에서 데려간 두 아이와 현장에서 발견한 이 아이에게 “마을 저편에서 어른들이 돼지를 잡는 거야, 그럼 어떻게 뛰어갈래?” 엉뚱한 오디션을 시켜봤다. 흥분된 발걸음으로 뛰어간 것은 당연히 시골아이였고 서울아이들은 울면서 서울로 돌아가는 차를 탔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바위는 얼마 전 대구에 유학가 영화에서 달리던 실력으로 축구선수를 하고 있다고 한다.
허 대장과 주민일행은 박 감독의 초대를 받아 버스까지 두대 전세내 개봉날 서울로 <학생부군신위> 관람을 갔었다.
“차에서 내리니까 극장 앞에 사람들이 억수로 많데예. 그래서 우리 영화 떴는 갑다하고 신이 났는데 안에 들어가보니 파리만 날리는 기라. 알고보니 <은행나무침대> 보러 온 사람들이 아닙디꺼.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줌씨들은 “우리가 영화를 망쳤는 갑다”며 눈물도 흘리고 그랬지예. 그래도 다들 좋은 추억이 됐심더. 지금도 텔레비전에 박 감독님이나 방은진씨 나오면, “언능 테레비 키라”고 서로 전화해주고 안캄니꺼.”
마을주민들의 안타까웠던 상경 관람기
개봉 당시 이 영화는 서울 관객 1만명의 참패를 겪었다. 시사회 뒤 좋은 평을 했던 비평가와 언론마저 예상보다 훨씬 참혹한 기록에 당황할 정도였고, 영화전문지 <씨네21>에서는 ‘흥행의 손길 비껴가는 외로운 작가주의’라는 제목으로 이 영화에 관한 특집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런 소재로 만드는 영화가 장사될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어요. 제 이름 달지 않았더라면 제작도 되지 않았을 작품이니까요. 그래도 신경이 전혀 안 쓰였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관객들은 야박했지만 박철수 감독은 특유의 ‘무모함’으로 죽음에 대해 유쾌하게 사유한 영화 한편을 한국영화사의 갈피 속에 끼워넣었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사진/<학생부군신위>는 상례라는 집안의 행사를 풍속화처럼 유쾌하게 펼쳐간 영화다. 촬영 당시를 회고하는 박철수 감독(왼쪽)과 마을주민 허종홍씨)

(사진/<학생부군신위>)

(사진/영화의 주무대는 경남 합천 가회면의 전통가옥이다. 무대가 됐던 집 안채 쪽마루에 앉은 박철수 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