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 표류 350주년에 깊이 읽는 히딩크의 나라… 선진 항해술로 동방 개척하고 자유·합의 존중
1653년 8월16일 네덜란드 배 스페르베르호가 엄청난 폭풍을 만나 난파하면서 당시 네덜란드에 켈파르트(Quelpaert)로 알려진 제주도의 차귀진 해안에 흘러왔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무역선인 이 배는 상품을 가득 싣고 보름 전 인도네시아 바타비아항을 출발해 일본 나가사키의 동인도회사로 가던 중이었다. 선원 64명 중 살아남은 이는 36명, 이들 가운데 뒷날 ‘표류기’를 써 조선을 유럽에 알린 헨드리크 하멜도 있었다. 하멜과 그 일행은 조선에서 13년28일간 살다가 1666년 일본으로 탈출했다. 올해는 조선을 유럽에 최초로 알린 하멜의 표류 350주년이 되는 해다.(조선에 온 첫 네덜란드인으로 기록된 것은 박연으로 알려진 얀 야네스 벨테브레다.)
<하멜 표류기> 통해 우리 근대사 조명
하멜 표류 350주년과 지난해 히딩크가 일으킨 월드컵 돌풍이 겹쳐져 올해는 네덜란드가 훨씬 가깝게 다가왔다. 얼마 전에는 네덜란드 노사의 합의 체제인 ‘폴더 모델’이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모델이 될 수 있는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에는 벌써 몇만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초기 자본주의 미술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은 네덜란드 거장들의 그림을 감상했고, 국립제주박물관(064-720-8101)에서는 10월12일까지 하멜 표류를 비롯해 조선의 표류사를 통해 한국과 외부 세계의 교류사를 바라보는 특별전 ‘항해와 표류의 역사’가 열리고 있다. 서적과 지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문서와 당시 상선에 실렸던 도자기 등 250여점을 소개하는 이 전시에는 네덜란드 국립공문서보관소에서 빌려온 <하멜 표류기>가 전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런 떠들썩한 관심 속에서 정작 네덜란드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일까? 튤립, 풍차, 마약, 축구말고. 올해 나온 네덜란드 관련 책 중 <항해와 표류의 역사>와 <네덜란드 -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찬찬히 읽어볼 만하다.
김영원 국립제주박물관장 등이 쓴 <항해와 표류의 역사>는 제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의 도록을 겸하면서, <하멜 표류기>를 통해 우리 근대사를 조명해보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전국의 박물관과 네덜란드 국립공문서보관소, 일본 고베시립박물관 등에서 전시회에 출품한 유물과 자료사진, 논문 등이 잘 정리돼 실려 있다. ‘항해’와 ‘표류’라는 독특한 키워드를 통해 역사에 접근하는 방법도 참신하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특히 근대사에서 네덜란드는 단연 흥미로운 나라다. 조선이 임진왜란의 전란을 수습할 무렵 네덜란드는 중상주의 정책 아래 네덜란드 연합동인도회사를 1602년에 세웠고 융성기인 17~18세기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500척 이상의 배를 움직이며 네덜란드와 아시아에서 수백만명을 고용하는(당시 네덜란드 인구가 200만명이었다) 당대 세계 최대의 무역회사였다. 당시 지금의 미국 땅에서 세력을 떨치던 것도 네덜란드인들이어서 뉴욕은 뉴암스테르담이었고, 인도네시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리남 등 식민지를 지배했다. 하멜이 한국에 도착한 그 시대에 네덜란드는 일찍부터 발전한 항해술과 상인정신으로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 경쟁 상대를 물리치고 ‘동방무역’을 주도하며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하멜 표류기> 자체가 당시 네덜란드인들이 얼마나 ‘자본주의’적 세계관을 철저하게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제주, 한양, 남원, 순천, 여수 등을 떠돌며 노역에 종사하고 고관들의 구경거리가 되면서 조선에 반감이 많았을 하멜이 조선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은 <표류기>가 13년28일 동안 일행이 못 받은 임금을 받아내기 위해 동인도회사에 낸 보고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668년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에서 <하멜 표류기>가 출판되자, 외부 세계의 정보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유럽 전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어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됐다. 한국에서는 1917년 재미동포 잡지인 <태평양>에 연재되는 것을 최남선이 발견하고 그대로 <청춘>에 전재해 처음 알려졌다. 네덜란드를 더 알고 싶어졌다면 <네덜란드 -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를 펼쳐보자. 과거부터 현재까지 네덜란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를 친근한 글 속에서 풍부하게 보여준다. 지은이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유럽 근대 자본주의를 공부하기 위해 몇년 동안 네덜란드에 머물면서 체험하고 느낀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회·문화·경제·생활상 등을 들여다보고, 과거 역사도 촘촘하게 담았다. 약자에 대한 배려… 식민지 착취의 역사 지은이는 네덜란드를 ‘작지만 강하고 행복한’ 나라라며 벤치마킹해볼 것을 권유한다. “세계 중심국가가 되겠다고 이 악물고 사는 것보다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조화로운 사회를 목표로 삼아보면 어떨까”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작지만 강하고 행복한 이 나라를 떠받치는 밑심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라고 지적한다. 빈집 점유자들에게 국가가 나서 집주인이 새로 개발하기 전까지 싼 집세를 내고 눌러살도록 하고 “번 돈 1길더보다 아낀 돈 1센트가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절약하는 사람들이지만, 개인소득의 33~60%나 되는 세금을 내며 사회복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물보다) ‘낮은 땅’을 의미하는 네덜란드에서 홍수와 싸우며 나라를 만들어온 역사, 국민 대부분이 영어 등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면서도, 강한 h 발음과 복잡한 철자법 등으로 ‘악명’ 높은 네덜란드어에 대해 가진 사랑,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마약을 합법적으로 팔 수 있지만 나름의 규제가 있고 보통 사람들의 삶은 ‘보수적인’ 나라, 다른 의견을 존중해 엄청나게 긴 토론을 벌이고, 비폭력적인 항의와 불평, 시위가 보장된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가 네덜란드다. 그러나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많다. 너무나 합의를 강조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순응주의 때문에 네덜란드에서는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제일 심각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벌어졌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덜 활발하고 여성의 임금도 낮은 나라, 식민지의 농민들을 착취했던 역사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 <항해와 표류의 역사> 김영원 지음, 솔 펴냄 · <네덜란드 -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 주경철 지음, 산처럼 펴냄.
김영원 국립제주박물관장 등이 쓴 <항해와 표류의 역사>는 제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의 도록을 겸하면서, <하멜 표류기>를 통해 우리 근대사를 조명해보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전국의 박물관과 네덜란드 국립공문서보관소, 일본 고베시립박물관 등에서 전시회에 출품한 유물과 자료사진, 논문 등이 잘 정리돼 실려 있다. ‘항해’와 ‘표류’라는 독특한 키워드를 통해 역사에 접근하는 방법도 참신하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특히 근대사에서 네덜란드는 단연 흥미로운 나라다. 조선이 임진왜란의 전란을 수습할 무렵 네덜란드는 중상주의 정책 아래 네덜란드 연합동인도회사를 1602년에 세웠고 융성기인 17~18세기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500척 이상의 배를 움직이며 네덜란드와 아시아에서 수백만명을 고용하는(당시 네덜란드 인구가 200만명이었다) 당대 세계 최대의 무역회사였다. 당시 지금의 미국 땅에서 세력을 떨치던 것도 네덜란드인들이어서 뉴욕은 뉴암스테르담이었고, 인도네시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리남 등 식민지를 지배했다. 하멜이 한국에 도착한 그 시대에 네덜란드는 일찍부터 발전한 항해술과 상인정신으로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 경쟁 상대를 물리치고 ‘동방무역’을 주도하며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하멜 표류기> 자체가 당시 네덜란드인들이 얼마나 ‘자본주의’적 세계관을 철저하게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제주, 한양, 남원, 순천, 여수 등을 떠돌며 노역에 종사하고 고관들의 구경거리가 되면서 조선에 반감이 많았을 하멜이 조선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은 <표류기>가 13년28일 동안 일행이 못 받은 임금을 받아내기 위해 동인도회사에 낸 보고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668년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에서 <하멜 표류기>가 출판되자, 외부 세계의 정보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유럽 전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어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됐다. 한국에서는 1917년 재미동포 잡지인 <태평양>에 연재되는 것을 최남선이 발견하고 그대로 <청춘>에 전재해 처음 알려졌다. 네덜란드를 더 알고 싶어졌다면 <네덜란드 -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를 펼쳐보자. 과거부터 현재까지 네덜란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를 친근한 글 속에서 풍부하게 보여준다. 지은이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유럽 근대 자본주의를 공부하기 위해 몇년 동안 네덜란드에 머물면서 체험하고 느낀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회·문화·경제·생활상 등을 들여다보고, 과거 역사도 촘촘하게 담았다. 약자에 대한 배려… 식민지 착취의 역사 지은이는 네덜란드를 ‘작지만 강하고 행복한’ 나라라며 벤치마킹해볼 것을 권유한다. “세계 중심국가가 되겠다고 이 악물고 사는 것보다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조화로운 사회를 목표로 삼아보면 어떨까”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작지만 강하고 행복한 이 나라를 떠받치는 밑심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라고 지적한다. 빈집 점유자들에게 국가가 나서 집주인이 새로 개발하기 전까지 싼 집세를 내고 눌러살도록 하고 “번 돈 1길더보다 아낀 돈 1센트가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절약하는 사람들이지만, 개인소득의 33~60%나 되는 세금을 내며 사회복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물보다) ‘낮은 땅’을 의미하는 네덜란드에서 홍수와 싸우며 나라를 만들어온 역사, 국민 대부분이 영어 등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면서도, 강한 h 발음과 복잡한 철자법 등으로 ‘악명’ 높은 네덜란드어에 대해 가진 사랑,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마약을 합법적으로 팔 수 있지만 나름의 규제가 있고 보통 사람들의 삶은 ‘보수적인’ 나라, 다른 의견을 존중해 엄청나게 긴 토론을 벌이고, 비폭력적인 항의와 불평, 시위가 보장된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가 네덜란드다. 그러나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많다. 너무나 합의를 강조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순응주의 때문에 네덜란드에서는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제일 심각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벌어졌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덜 활발하고 여성의 임금도 낮은 나라, 식민지의 농민들을 착취했던 역사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