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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논바닥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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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9-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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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매미’의 북상 소식으로 어수선한 추석 연휴다.

빗길에, 태풍에, 발 묶인 식구들과 몇날 며칠을 복작거리다 보니 답답증이 난다. 비오는 동네나 한 바퀴 돌자며 동행자를 모집하니 조카 둘이 따라나선다. 우산 하나씩 받쳐쓰고 집 아랫녘으로 내려서니 고만고만한 논 가득 푸른 벼이삭이 이리저리 고개를 저어댄다.

초등학교 2학년, 4살짜리 조카에게 연방 밭에 심은 상추나 배추를 보고 “이게 뭐냐”며 질문해대니 “몰라요”를 남발하다가 벼이삭을 가리키는 손길엔 정답을 맞힌다.

“쌀은 이렇게 물이 많은 데서 자라요”라고 묻는 아이에게 그 중 누르스름하게 익어 보이는 나락 한톨을 따내 껍질을 까고 하얀 쌀을 보여주니 이해가 빠른 눈치다.

50년 만의 최대 흉작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마을의 논들은 싯누렇게 익어갈 채비를 차린다. 몇 줄기씩 내리는 비에 우산을 접고 맨발이 되어 조카들과 “깊은 산속 옹달샘”을 부르며 논둑을 걷다보니 문득 논바닥 세상이 그리워진다.

한뼘 길이의 모를 심어놓고 뜬모를 때우느라 허리 굽혀 논바닥을 메우다 허리 아파 일어서서 바라본 논바닥 세상은 경이로움이었다. 진흙 뻘밭에 발목을 묻고 찰랑거리는 논물과 파란 모들은 이 세상에 생명과 자연, 그리고 나만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새겨주곤 했다. “이런 이런 또 감상에 젖다니” 하고 애써 반성의 고삐를 죄며 서둘러 감정을 수습했던 기억까지 몽땅 남아 있다.

거름을 뿌리기 위해 들어선 논바닥은 무릎까지 차올라온 벼포기를 이리저리 피하며 거름통 메고 훠이훠이 손을 흩뿌리며 걸어야 했기에 논 한가운데 서면 아찔한 어지럼증을 느끼곤 했다.


농민운동을 핑계로 유난히 피를 많이 키웠던 우리집 논은 동네사람들 눈이 무서워 맘먹고 며칠간 피사리를 하곤 했다. 허리춤까지 자란 벼포기 속을 걸으며 논 속 깊이 뿌리 박은 피를 거둬내 냅다 논둑까지 던져내야 하는 힘겨운 노동에 진흙탕에 멱감는 것은 물론 몸은 곤죽이 되곤 했다.

그래도 논 속에서 바라본 세상은 잠시라도 한시름 놓고 그냥 “야, 좋구나. 논바닥 세상만 같아라”고 외치고 싶었다.

물빠짐 잘되라고 개를 잘 쳐놓은 생계댁 논에 두 발을 담그고 세상을 돌아본다.

고 이경해씨가 멕시코 칸쿤에서 배를 그어 세상을 등지면서 보고 싶었던 평화로운 세상이지 싶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잇속 뻔한 협상에 불려나온 힘 없는 나라 중의 하나인 우리 정부는 일찌감치 농업을 자동차와 휴대전화로 바꾸는 게 낫다는 계산속을 곧잘 드러내왔고 농민운동가들의 절망은 더해갔었다.

쌀농사의 가치를 어찌 돈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공기를 맑게 하고 홍수조절 기능과 식량주권을 이루기 위한 농업은 자본이 아닌 ‘생명철학’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 태풍이 몰고 온 빗줄기 맞으며 조카들과 함께한 소풍에서 벼이삭들은 내게 속삭인다. “논 속 세상으로 들어오지 않을래?”

고 이경해님의 명복을 빈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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