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의 공리주의적 인간관 - 이기적이면서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인간관
공리주의적 인간관의 특징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뭘까? 나는,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하고, 나아가 부추기기까지 하는 체제’라고 생각해. 어떤 체제도 이기심을 긍정한 경우는 없었거든. 그런데 뭘 믿고 이렇게 대담할 수 있었을까? 그걸 설명해주는 게 바로 공리주의적 인간관이야. 공리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막연히 이기적인 존재, 탐욕스런 존재가 아냐. 즉, 인간은 ‘이기적이면서도 계산을 하는 존재’이자, 이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존재’야. 한마디로 ‘주판을 두드리는 합리적인 경제인’이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아담 스미스, 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나 ‘자유방임주의’가 떠오르지 자유시장경제의 토대를 깐 이 논리가 근거하고 있는 게 바로 앞의 인간관이야.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기적인 개인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자기 이익을 충족하고, 그런 개인들의 집합인 사회는 자연스럽게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함으로써 국가 전체의 부를 증대시킨다는 거야. 이때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로 시장의 가격조절 기능, 즉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지. 그 손의 실상은 다름 아닌 개인들의 합리적 선택인 게야. 국가나 그 밖의 다른 무엇도 이 과정에 개입해서는 안 돼. 이게 바로 자유(방임)주의야. 여기서 자유주의란 자유로운 경쟁을 최고 가치로 놓고 그를 위해 정부의 간섭을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이념이란 걸 알 수 있어. 비판 1 : 공익의 몰락 폐수 방류 문제를 예로 들어볼까? 방류하면 사익이, 억제하면 공익이 늘겠지 당연히 억제해야 한다고? 빙고! 그러나!! 우리의 스미스 선생께서는 절대 이 문제를 해결 못 해. 왜? 그의 이기적이면서 합리적인 개인들은 당연히 방류할 테고, 정부는 절대 이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되거든. 도서관에 책이 없는 것도, 장애인을 위한 기본시설도 갖추지 않는 것 등도 바로 이 합리적 선택의 결과 아닐까? 비판 2 : 인간 왜곡 더 큰 문제는 인간을 경제적으로만 규정한다는 거야. 그리하여 그의 ‘합리성’은 효과적으로 돈 잘 버는 능력, 즉 ‘효율성’으로 왜곡돼. 오늘의 현실을 보라고. 효과적으로 돈 잘 버는 사람, 보이지 않는 손의 은총을 많이 받는 사람만이 존중받고 있잖아? 우리 젊은이들도 노동시장에서 비싼 값에 자기를 팔아먹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말야.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인간은 어느새 자기를 잃고 시장의 노예가 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돼. 마치 꼭대기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효율적으로) 기둥을 오르는 애벌레 같은 거야. 그러나… 기둥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냐. 그 기둥은 하나같이 기어오르는 애벌레의 무더기일 뿐이야. 하나씩 기어내려온다면, 그리하여 저마다의 날개를 펼치는 모습을 보인다면, 기둥은, 이기적 인간은 이윽고 사라질 테지. 이건 다음번에 자세히 보자고.
아담 스미스, 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나 ‘자유방임주의’가 떠오르지 자유시장경제의 토대를 깐 이 논리가 근거하고 있는 게 바로 앞의 인간관이야.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기적인 개인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자기 이익을 충족하고, 그런 개인들의 집합인 사회는 자연스럽게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함으로써 국가 전체의 부를 증대시킨다는 거야. 이때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로 시장의 가격조절 기능, 즉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지. 그 손의 실상은 다름 아닌 개인들의 합리적 선택인 게야. 국가나 그 밖의 다른 무엇도 이 과정에 개입해서는 안 돼. 이게 바로 자유(방임)주의야. 여기서 자유주의란 자유로운 경쟁을 최고 가치로 놓고 그를 위해 정부의 간섭을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이념이란 걸 알 수 있어. 비판 1 : 공익의 몰락 폐수 방류 문제를 예로 들어볼까? 방류하면 사익이, 억제하면 공익이 늘겠지 당연히 억제해야 한다고? 빙고! 그러나!! 우리의 스미스 선생께서는 절대 이 문제를 해결 못 해. 왜? 그의 이기적이면서 합리적인 개인들은 당연히 방류할 테고, 정부는 절대 이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되거든. 도서관에 책이 없는 것도, 장애인을 위한 기본시설도 갖추지 않는 것 등도 바로 이 합리적 선택의 결과 아닐까? 비판 2 : 인간 왜곡 더 큰 문제는 인간을 경제적으로만 규정한다는 거야. 그리하여 그의 ‘합리성’은 효과적으로 돈 잘 버는 능력, 즉 ‘효율성’으로 왜곡돼. 오늘의 현실을 보라고. 효과적으로 돈 잘 버는 사람, 보이지 않는 손의 은총을 많이 받는 사람만이 존중받고 있잖아? 우리 젊은이들도 노동시장에서 비싼 값에 자기를 팔아먹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말야.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인간은 어느새 자기를 잃고 시장의 노예가 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돼. 마치 꼭대기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효율적으로) 기둥을 오르는 애벌레 같은 거야. 그러나… 기둥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냐. 그 기둥은 하나같이 기어오르는 애벌레의 무더기일 뿐이야. 하나씩 기어내려온다면, 그리하여 저마다의 날개를 펼치는 모습을 보인다면, 기둥은, 이기적 인간은 이윽고 사라질 테지. 이건 다음번에 자세히 보자고.

우한기 | 광주 플라톤 아카데미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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