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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40년 만에 돌아와 ‘말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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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9-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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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미술가 차학경 회고전, 한국인의 다층적 정체성 되돌아보는 문화적 체험 되길

차학경, 미국명 테레사 학 경 차(Theresa Hak Kyung Cha). 그는 국내의 몇몇 미술과 문학 이론가들 사이에만 알려져 있을 뿐 아직 일반인에게는 매우 생소한 존재이다. 미국에서 활동했던 시인이며 작가, 퍼포먼스와 비디오 미술가, 영상 제작자. 그러나 다재다능한 재주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이 세상을 떠난 여성. 그의 회고전이 미국 내 5개 도시 순회 여정을 마치고 마지막 기착지인 서울(쌈지스페이스 9월5일~10월26일)에 도착했다. 한국을 떠난 지 40년 만에 작가는 넋이 되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사진/ 재미 미술가이자 작가였던 고 차학경. 세계의 중심, 미국에서 사는 주변부 아시아 여성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차학경은 1951년 부산에서 5형제 중 셋째로 태어나 1963년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른바 1.5세대에 속하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의 부모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피해 만주에서 성장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중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이승만 정권의 몰락 이후 가족이 정치적 불안과 소요에 휘말리게 되자 미국 이민을 선택한다. 그들은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면서 구한말부터 시작된 긴 유랑에 종지부를 찍는다.

만주에서 성장해 샌프란시스코에 정착


한국의 근대사에 얽힌 독특한 가족사를 배경으로 차학경은 미 서부에서 미술가이자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는 1969년부터 10년간 버클리 대학교에서 비교문학과 미술 공부를 하며 문학사·미술학사·미술석사 학위를 받았고, 1976년에는 현대 영화이론 공부를 위해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그는 이때 알게 된 고다르 등의 실험영화와 프랑스 영화 이론에서 큰 영향을 받아 이후 영상 작업에 적용하였다. 그의 비디오와 영상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미묘한 명암의 변화, 느린 장면 이행, 시간의 점진적 추이, 현실도 꿈도 아닌 듯한 모호한 시간과 공간의 연출에서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

그의 재학시절, 당시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은 반전운동과 인권운동, 전위적 문화운동의 중심지였다. 그는 이런 사회·문화 운동이 제시하는 비전을 간파하는 한편, 모더니즘을 탈피할 새로운 양식적 실험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 오브제, 아티스트 북, 종이 작업, 퍼포먼스, 비디오와 영상 등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은 장르의 경계를 ‘위반’하게 된다. 또 사진, 다양한 타이포그래피와 언어적 텍스트, 여백 등을 이용한 몽타주 방법과 분절된 이미지와 불확실한 내용, 변하기 쉽고 고정되지 않는 다층적 정체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일찌감치 예견하였다.

그는 졸업 뒤 예술의 중심지에서 활동하려는 야망을 품고 1980년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진행 중이던 많은 작업들을 남겨둔 채 1982년 비극적인 사고로 32살을 일기로 삶을 마감한다. 그 뒤 그를 기리기 위한 가족의 부단한 노력 끝에 1991년 모교인 버클리 대학교 부설 ‘버클리 미술관/태평양 필름 아카이브’에 ‘차학경 아카이브’가 설립되었다. 현재 그의 작품 일체와 자료들은 이곳에 안전하게 보관, 관리되고 있다.

차학경은 몸소 겪은 이주의 경험에서 미술과 문학작품의 주제를 끌어내었다. 이 경험은 단순히 한 장소를 떠나 다른 장소에 도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 곳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바람, 다시 말해 ‘현재 이곳’에서 ‘과거의 그곳’을 기억하려는 갈망과 더불어 그것의 지속적인 좌절과 애초에 그것의 불가능성이 동시에 제시된다. 또 이주의 경험은 작가가 “나의 주제는 언어에 관한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언어의 문제, 즉 모국어의 상실과 새로운 언어의 습득과 직결된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에서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기능적 측면에 머물지 않고 그 생성과 변화 등 구조적 탐구로 확장되는 것이 특징이다.

△ 퍼포먼스 <눈먼 목소리>는 언어 유희를 통해 모국어 상실을 말한다.

모국 상실의 고통이 표현된 작품들

예컨대 <비데오엠>(Videoeme·1976), <망명자>(Exilee·1980)와 같은 작품의 제목은 영어와 프랑스어의 짜깁기 또는 교묘한 말장난에 의한 조어이다. 대표적 퍼포먼스인 <눈먼 목소리>(Aveugle Voix·1975)는 프랑스어 단어의 위치를 역설적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이런 언어의 놀이는 작품 내에 사용된 텍스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8분짜리 흑백 비디오 <입에서 입으로>(1975)에서는 한글 모음소와 그것을 발음하는 입술의 이미지가 전파 장애로 발생하는 흰 반점과 물 흐르는 소리에 의해 거의 지워지고 들리지 않게 됨으로써 시간의 흐름에 따른 모국어 상실의 고통이 표현되어 있다.

1979년 차학경은 17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는데, 귀환에 대한 기대와 기쁨도 잠시, 자신이 모국을 떠날 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외국인임을 깨닫는다. 이민자로서 귀환에 대한 갈망과 그것의 좌절, 한국과 미국,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두 국가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이산(離散)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한국 방문 이후 더욱 확고해져서 그의 멀티미디어 대표작 <망명자>와 문학작품 <딕테>의 주제가 되었다.

▷ <딕테>는 탈식민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 앞서 지난 30년간 미국 내에서 몇 차례의 차학경 개인전이 열린 바 있지만 1992년 겨울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를 제외하곤 대개 한두 작품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다. 사실 <딕테>와 그 책에 관한 몇몇 아시아계 여성학자들의 재평가 노력이 없었다면 그는 어쩌면 아직도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 책은 탈식민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서 미국 대학의 교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딕테>는 1997년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되었고, 1999년에는 이것을 각색한 <말하는 여자>를 극단 미토스가 연극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차학경의 작품이 21세기의 문턱에서 재조명되는 이유는 후기 식민시대 이후 초국가주의와 인간(여성)의 복잡한 위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간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유랑민이 더욱 증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더 이상 순수한 하나의 기원이나 뿌리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는 일찍이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불확정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중심에서 사는 아시아 여성이란 이중 식민 상태의 정체성을 표현하였다. 그가 모국을 기억할 때 그것은 언제나 한국과 미국, 세계의 역사가 겹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순수한 기원에 대한 향수나 귀환과 재화합은 불가능한 것이 된다. 이런 점 때문에 그의 문학작품과 미술작품은 탈식민주의와 여성주의 담론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는 대표적 모델로 인식되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9월5일엔 국제심포와 <말하는 여자> 공연

이번 전시가 시작되는 9월5일에는 차학경의 작업을 재조명하기 위한 국제 심포지엄과 연극 <말하는 여자> 공연이 함께 열린다. 어렵게 실현된 회고전이 작가를 오랜 어둠으로부터 밝은 곳으로 끌어내어 재평가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더 바란다면 이번 전시가 단순한 미적 체험의 차원을 넘어 한국과 한국인의 다층적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문화적 체험으로 확장될 수 있으면 좋겠다.(02-3142-1694~5)

김현주 | 미술사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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