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로 시작한 영화판…이제 성지루가 나오는 작품과 성지루가 안 나오는 작품이 있을 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영화를 딱 두 가지로 나눈다면 ‘명계남 나오는 영화와 명계남 안 나오는 영화’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하지만 명계남이 노무현 대통령 만드는 일에 몸을 던지고 이제는 본업인 영화제작에 몰두하면서 우리나라 영화의 종류를 나누는 기준은 그 판세가 달라졌다. 바로 ‘성지루가 나오는 영화와 성지루가 안 나오는 영화’다. 평범한 얼굴인데 배우가 됐다는 말은 이제 제발 하지 말자. ‘생긴’ 걸로 배우가 되는 시대는 끝나도 한참 전에 끝났으니까(물론 남자배우에 한해서!).
‘뜬 ’배우와 카페 쿠폰
나의 오랜 대학로 친구이기도 한 그는 우리 연극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 오태석이 이끄는 극단 목화의 원년멤버 중 하나다. 철나고 연극관객이 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재미’를 떠나 행복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연극은 손에 꼽는데, 목화 연극은 작품마다 내게 관극의 최고 기쁨을 안겨줬고 그 무대 위엔 항상 성지루가 있었다. 단역 시절부터 굵직한 주연을 맡아 연기상을 탈 때까지 언제나 무대 위에서의 그의 모습은 작품 속에 꾸덕꾸덕 녹아 들어가서 원래 그냥 거기 있었던 극중 인물 같았다.
그의 투박한 질그릇 같으면서도 스폰지 같은 캐릭터 흡수력은 스크린에서도 유감 없이 발휘됐다. 최근 웬만한 한국영화마다 얼굴을 내밀면서 영화의 퀄리티를 높여주는 그의 활약을 보면서 난 마치 자신이 키운 배우가 잘나가는 걸 보고 흐뭇해하는 매니저처럼 가슴이 뻐근해지는 걸 느꼈다. 허름한 막걸리집이 제격일 것 같은 그를 말끔하고 우아한 카페에서 만났다. 내가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냐고 할 때는 눈초리가 올라가던 카페 매니저가 잠시 뒤 성지루가 나타나니까 ‘당연히’ 찍어도 된다고 하는 건 물론이요 사인까지 받아가는 게 아닌가. 아… 역시 딴따라는 뜨고 봐야 된다는 선배의 말이 ‘퍽’ 하고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한데 이 스타배우 하는 짓이 재밌다. 그 카페가 자기 단골이라며 지갑 안에서 꼬깃꼬깃 접어둔 카페 쿠폰 여러 장을 주욱 펼쳐놓더니 뭘 먹겠느냐고 묻는다. ‘뜬’ 배우와 카페 쿠폰이라니…. 쿠폰을 진짜로 써먹는 것도 좀 쪽팔린데, 심지어 한 테이블당 하나만 된다고 정중하게 말하는 종업원을 거의 협박하다시피 해서 마늘빵과 케이크 한 조각을 동시에 얻어먹게 됐다. 영락없는 아줌마 같았다. 엔간히 벌었을 텐데 좀 쓰지 그러냐니까 뜨기 전과 뜨고 난 뒤가 달라진 거라곤 차 한대 생긴 거밖에 없고 전부 빚투성이라 빚 갚느라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하긴 영화에 얼굴 좀 내밀었다고 뭐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게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왜 쿠폰 좀 써먹은 걸 쪽팔려했을까. 그가 다시 측은해졌다. 그러고 보니 섭외전화를 하기 위해 영화사로 전화번호를 물어보려다가 혹시나 해서 5~6년 전에 내게 가르쳐준 번호를 눌러봤는데,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전화를 받던 며칠 전의 일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연극배우들이 다 배고픈 건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목화 배우들은 나 같은 관객을 행복하게 해주느라 다른 극단들보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연습시간을 가졌고, 그렇다고 출연료가 많은 건 아니었기에 무대 위와는 달리 무대 아래에선 언제나 가난했다. 내 친구 지루 역시 항상 가난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결혼을 하더니 얼마 뒤엔 아기를 낳고, 아내는 한때 배우였지만 전업주부라는 거다. 뭐 먹고사는지가 궁금했지만 나 역시 먹고사느라 바빴던 터라 이 가난한 배우와 덥석 결혼을 해버린 용감한 여자가 누군지 그리고 그가 왜 그리 빨리 결혼을 했는지를 이제야 물어볼 수 있었다.
형의 교통사고와 결혼, 그리고 보험맨
1996년 아내와 막 만나기 시작한 어느 날, 원당 자취방 근처에서 그녀와 술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의 급한 전화를 받았다. 형이 교통사고를 냈는데 숨을 거둘 것 같다는 거다. 시간은 한밤중. 서울을 가야겠는데 그의 수중엔 달랑 소줏값이 전부였다. 형이 죽는다는데 서울 갈 차비가 없었던 거다. 그때 그녀가 “나 돈 있다. 같이 가자” 해서 그녀의 도움으로 형에게 달려갔고 3개월 병 수발 끝에 형을 살려냈다. 부모님은 지방에서 일을 하시고 여동생도 직장에 다녔기 때문에 총각인 형에겐 자기밖에 없었고 그때 큰 도움을 준 그녀와 급속도로 가까워져 6개월 만에 결혼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거다.
병 수발도 병 수발이지만 보험금을 하나도 받지 못한 억울한 상황에서 그가 혼자 한밤중에 사고현장을 자로 재는 등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서 100 대 0으로 깨진 상황을 60 대 40으로 돌려놓는 기적()을 만든 뒤 자동차 박사가 된 그는 아내와 아이를 먹여살리기 위해 보험맨이 된다. 고객관리는 환상적이었다. 사고가 나면 연결만 해주면 그만인데 사고처리 뒤에도 마치 가족의 안부 묻듯 ‘싸가지 캡’으로 ‘관리’를 했고 당연히 잘나가는 보험맨이 되어가고 있었다(그의 고객 중엔 소문을 듣고 제 발로 찾아 온 큰절의 주지스님도 있었다). 그러다 그 정점에서 그는 갑자기 다시 대학로로 돌아온다. ‘진짜 보험맨’이 되고 돈맛을 보면 배우를 못하게 될까봐 겁이 났다는 거다. 아, 딴따라여! 이 철딱서니 없는 종자들이여!
영화는 ‘알바’라고 생각했다. 연극판에서 연기 잘한다고 영국으로 연수까지 보내줘서 영국에 있을 때였다. 임상수 감독의 <눈물>에 출연한 이후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오는 걸 정중히 거절해왔는데, 서울에서 만삭의 몸으로 큰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던 아내가 계단을 굴러서 병원비가 필요한 상황이 왔다. 그것도 걸어서 30분이나 걸리는 소아과를 가던 길이었다. 목화 공연 스케줄이 잡혀 있는 상태였지만 그는 런던에서 오태석 선생에게 자기를 놔달라고 간절히 부탁했고, 오 선생은 또 한명의 잘 익은 배우 하나를 영화판에 뺏기게 된다.
그 다음부턴 웬만한 한국영화는 그에게 출근도장을 찍게 했고 그의 코믹하면서도 섬뜩하리만큼 사실적인 연기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매스컴에서도 슬슬 그를 찾기 시작했는데, 이 기사 내용들이 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영화쟁이들이나 언론쟁이들은 하나같이 그를 ‘발견’했다고 떠들어댔다. 태곳적부터 존재한 인디언들의 땅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럼버스의 역사가 어디까지나 서구 제국주의의 입장일 뿐이듯이, 성지루는 그들이 ‘발견’한 배우가 아니라 원래부터, 오래 전부터 이미 하루도 쉬지 않고 무대 위에서 관객을 감동시키며 살고 있었다. 참으로 오만한 시선이 아닐 수 없다. 송강호가 그랬고 설경구가 그랬다. ‘이미’ 그들은 좋은 배우였고 사람들은 이제야 눈치를 챘을 뿐인 거다.
왜 그의 이름은 ‘지루’인가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 그의 이름은, 두 번째 출산인데도 너무 오래 걸려서 기다리는 데 ‘지루’했다고 그의 아버지가 지으신 이름이란다. 그래도 한자 뜻이 있을 것 아니냐니깐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는데 정말 한글이름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 하도 아버지께 자신의 이름이 가진 ‘진짜’ 뜻을 물어보니까 아버지께서 얼렁뚱땅 대답해주신 게 있긴 한데 확신은 없다며 낄낄거린다. 중국집 이름 같다니까 실제로 나중에 여윳돈이 생기면 자신의 이름을 건 중국집을 내는 게 꿈이란다. 그가 빨리 더 잘나가서 ‘성지루’라는 자장면집을 냈으면 좋겠다. 그럼 꼭 가서 내가 좋아하는 간자장을 시켜먹어야지. 분명 맛있을 거다. 뭘 해도 야물딱지게 하는 놈이니까.
오지혜 | 영화배우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그의 투박한 질그릇 같으면서도 스폰지 같은 캐릭터 흡수력은 스크린에서도 유감 없이 발휘됐다. 최근 웬만한 한국영화마다 얼굴을 내밀면서 영화의 퀄리티를 높여주는 그의 활약을 보면서 난 마치 자신이 키운 배우가 잘나가는 걸 보고 흐뭇해하는 매니저처럼 가슴이 뻐근해지는 걸 느꼈다. 허름한 막걸리집이 제격일 것 같은 그를 말끔하고 우아한 카페에서 만났다. 내가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냐고 할 때는 눈초리가 올라가던 카페 매니저가 잠시 뒤 성지루가 나타나니까 ‘당연히’ 찍어도 된다고 하는 건 물론이요 사인까지 받아가는 게 아닌가. 아… 역시 딴따라는 뜨고 봐야 된다는 선배의 말이 ‘퍽’ 하고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한데 이 스타배우 하는 짓이 재밌다. 그 카페가 자기 단골이라며 지갑 안에서 꼬깃꼬깃 접어둔 카페 쿠폰 여러 장을 주욱 펼쳐놓더니 뭘 먹겠느냐고 묻는다. ‘뜬’ 배우와 카페 쿠폰이라니…. 쿠폰을 진짜로 써먹는 것도 좀 쪽팔린데, 심지어 한 테이블당 하나만 된다고 정중하게 말하는 종업원을 거의 협박하다시피 해서 마늘빵과 케이크 한 조각을 동시에 얻어먹게 됐다. 영락없는 아줌마 같았다. 엔간히 벌었을 텐데 좀 쓰지 그러냐니까 뜨기 전과 뜨고 난 뒤가 달라진 거라곤 차 한대 생긴 거밖에 없고 전부 빚투성이라 빚 갚느라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하긴 영화에 얼굴 좀 내밀었다고 뭐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게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왜 쿠폰 좀 써먹은 걸 쪽팔려했을까. 그가 다시 측은해졌다. 그러고 보니 섭외전화를 하기 위해 영화사로 전화번호를 물어보려다가 혹시나 해서 5~6년 전에 내게 가르쳐준 번호를 눌러봤는데,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전화를 받던 며칠 전의 일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연극배우들이 다 배고픈 건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목화 배우들은 나 같은 관객을 행복하게 해주느라 다른 극단들보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연습시간을 가졌고, 그렇다고 출연료가 많은 건 아니었기에 무대 위와는 달리 무대 아래에선 언제나 가난했다. 내 친구 지루 역시 항상 가난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결혼을 하더니 얼마 뒤엔 아기를 낳고, 아내는 한때 배우였지만 전업주부라는 거다. 뭐 먹고사는지가 궁금했지만 나 역시 먹고사느라 바빴던 터라 이 가난한 배우와 덥석 결혼을 해버린 용감한 여자가 누군지 그리고 그가 왜 그리 빨리 결혼을 했는지를 이제야 물어볼 수 있었다.

사진/ 그는 투박한 질그릇 같으면서도 스펀지 같은 캐릭터 흡수력으로 요즘 웬만한 한국영화마다 얼굴을 내밀고 있다.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