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지예 | 소설가
몇몇 환자가 두꺼운 책을 텍스트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환자1: 이 책은 너무 나열식이야.
환자2: 게다가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좀 산만해.
그런 얘기들로 열기를 더해가는데 간호원이 급하게 들어와 묻는 말,
“누구 전화번호부 가져간 사람 있어요?” ‘fact boy’ 엄마의 걱정 이걸 읽는 순간,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후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후배는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들의 독서 취향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 걱정 중의 하나가, 우리 애가 지나치게 ‘fact boy’인 건데요. 동화 같은 걸 전혀 좋아하지 않고 심지어는 모든 상상적인 것을 거짓말로 폄하하는, 뭐 그런 식이죠. 얼마 전에 방학 때 사고 싶은 도서 목록을 체크한 적이 있는데 온통 ‘무슨무슨 facts’더라고요. 얘가 자기 전에 읽는 책은 늘 백과사전이고요.”

일러스트레이션 | 장광석
“우리 애가 처음으론 좋아하고 끼고 살았던 책은 전화번호부였어요. 지금도 그걸 제일 아끼고요.” 그런데 그 엄마가 그걸 그냥 그 아이의 개성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놀라웠다고 후배는 말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아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다른 극에 있는 아이도 있었어요. 책을 읽고는 끊임없이 스토리를 만들고 가끔은 본인도 그게 상상인지 사실인지 혼동하는. 그 엄만 결국 전문가를 찾아가서 지능검사 등 여러 가지를 알아보았지요. 처음 그 엄마는 자신의 애가 천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상당히 걱정스러운 듯이 제게 털어놓았어요. 전문가 왈, 지적으로 자신의 나이보다 앞서 있지만, 절대 그대로 방치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그 가닥을 잘못 잡으면 나쁘게 성장할 수 있다고 하면서.” 후배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몇년씩 뒤적거리며 보느라 나달나달해진 머리맡의 백과사전과 아이의 손때 묻은 두꺼운 전화번호부 책이 떠오른다. 요즘 위축된 책시장에서 그나마 효자 노릇을 하는 건 어린이들 책이라고 한다. 엄마들은 자신은 책을 안 읽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영양가 있고 좋다는 책은 몽땅 다 읽히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이들도 개성이 있고 취향이 있어 좋아하는 책이 다 다르다. 편식을 하는 아이가 있듯이 꼭 제 좋아하는 책만 읽는 아이도 있다. 옛말 중에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男兒須讀五車書)는 말도 있지만,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말도 있다. 공자가 <주역>을 여러 번 읽어서 죽간을 묶은 가죽끈이 세번이나 끊어졌다는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책을 하도 읽어 책장이 너덜너덜해졌다는 뜻이다. 사실 옛사람들은 독서의 양도 중요했지만, 중요한 고전을 읽고 또 읽고 통째로 외워서 그야말로 완전히 소화시켜 피와 살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책이 어설픈 문자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안목이나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유용한 통찰력으로 되살아나곤 했다. 어찌 보면 옛사람들이 정말 행복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익사할 지경이니 말이다. 책은 또 왜 그렇게 봇물 터지듯 많이 쏟아져나오는지. 게다가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유연하게 ‘파도타기’를 잘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시대를 살아내야 하니 얼마나 숨가쁜가. 고전이 없는 시대의 안타까움 점점 아이들도 인간으로 키워지는 게 아니라 컴퓨터가 되어가는 것 같다. 얄팍한 지식은 많은데 감정은 더욱 고갈되고 지혜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자기 주관이 없어지는 것 같다. 그리 많지는 않은 책이라도 곱씹듯이 읽어 삶의 고비마다 지혜로 되살아나는 그런 책이 없는 탓일까. 어찌 보면 요즘 세상엔 세 종류의 책만 있는 것 같다. 온통 백과사전과 전화번호부와 황당한 이야기만 판치는 책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고전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 권지예씨의 ‘책에세이’는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다음호부터 4주 동안은 시인 이원규씨가 칼럼을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