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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음악] 첼로에 취해 실내악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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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8-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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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블의 묘미 만끽하는 호암 뮤직 알프 페스티벌… 유럽 연주자 초빙해 수준 높이고 ‘관객과 함께’ 내세워

음악에서 실내악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소수의 연주자들이 누가 이끌고 누가 따라가는 관계가 아닌 대등한 입장에서 조화를 이루며 섬세하고 친밀한 연주를 들려주는 기악합주곡은 오케스트라 연주의 기본이다. 음악 애호가의 처지에서 본다면 실내악의 묘미, 즉 실내악만이 가지고 있는 진한 앙상블의 맛을 터득하지 않고는 진정한 음악세계를 경험했다고 할 수 없다. 이처럼 실내악은 무대 위의 연주가들과 음악을 감상하는 애호가들 모두가 반드시 경험해야 할 관문이다. 고전음악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서는 진솔한 실내악의 음악세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음악의 진수 체험하기 위한 관문

사실 문화 선진국들에서는 오래 전부터 실내악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실내악 무대의 수준 높은 예술적 열기는 살아 숨쉬는 음악의 참모습을 확인하게 한다. 물론 국내도 전문 실내악 그룹이 활동하고 있어 앙상블의 묘미를 맛보기는 어렵지 않다. 게다가 9월3일부터 7일까지 5일 동안 열리는 호암 뮤직 알프 페스티벌(02-751-9606)은 실내악의 다양한 모습을 집중 조명하는 무대가 펼쳐지기도 한다. 이 무대는 국내에서는 처음 열리는 국제적인 실내악 축제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페스티벌의 주제를 ‘첼리시모!!’로 정하고, 실내악에서 반주악기 정도로 과소평가되기 쉬운 저음 현악기인 첼로의 힘과 아름다움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알프 페스티벌에는 특별한 의미의 무대가 펼쳐진다.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이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알프스 산록에서 개최해오고 있는 프랑스 꾸쉐빌 뮤직 알프 페스티벌의 중요 연주가들을 초빙해 일종의 자매 페스티벌의 성격을 지니게 됐다. 고전음악의 본고장인 유럽 페스티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연주를 국내에서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실내악 발전의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프로그램 또한 다양하면서도 하루 동안, 한 연주자 또는 한 나라의 실내악 작품을 다양하게 연주해 저음 현악기인 첼로의 매력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소나타에서부터 피아노 2중주 그리고 8중주에 이르는 실내악의 모든 장르를 무대에 올리며, 매일 저녁 러시아(3일), 브람스(4일), 프랑스(5일), 포푸리(5일), 독일(7일) 등의 중심 주제를 내세워 청중이 집중적으로 음악 속에 빠져들도록 해준다.

알프 페스티벌의 중심 주제를 첼로라는 악기로 정한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미 첼로의 일반적인 매력은 알려져 있고, 또 독주악기로서 협주곡을 비롯한 소나타 등에서도 충분히 감동을 경험하게 한다. 하지만 실내악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첼로의 역할과 가슴을 저미게 하는 침투력을 집중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알프 페스티벌만의 개성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실내악에서도 두대의 첼로가 합세해 첼로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작품들, 즉 차이코프스키의 6중주 <플로렌스의 추억>, 브람스의 6중주 1번을 비롯해 보케리니의 현악 5중주와 슈베르트의 현악 5중주는 흔히 듣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출중한 연주력을 가진 두명의 첼리스트가 참여해 연주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또한 멘델스존의 8중주와 포퍼의 3대의 첼로를 위한 진혼곡 역시 첼로의 멋에 깊이 빠져들 수 있는 명작품으로 이번 페스티벌의 전문성을 느끼게 한다.

사진/ 프랑스 쿠쉐빌에서 열리는 뮤직 알프 페스티벌의 예술 감독인 바이올니스트 강동석. 세계 최고의 첼로 연주자로 평가받는 필립 뮐러와 조영창(왼쪽부터).

첼로의 멋을 새롭게 느끼는 작품 연주

그렇다고 이번 알프 페스티벌이 첼로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아니다. 5일 동안 모두 10번 열리는 연주회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실내악 작품들이 무대에 오른다. 한국의 음악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브람스의 클라리넷 소나타, 첼로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는 물론, 힌데미트, 하차투리안, 쇼스타코비치 등 근대 또는 현대에 이르는 실내악곡들은 고전음악 마니아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 선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소화해낼 수 있는 연주가들이 모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건 창작과 연주가 일체를 이룰 때 청중은 감동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알프 페스티벌은 서양 고전음악의 본고장에서 개최해온 페스티벌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음악적 기대를 더한다. 강동석 음악감독을 비롯해 바이올린의 미하엘라 마틴, 박재홍, 피아노의 파스칼 드봐이용, 신수정, 김대진, 김영호, 비올라의 노부코 이마이, 클라리넷의 찰스 나이딕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가들이다. 이 연주가들이 펼치는 앙상블의 묘미는 실내악의 감동을 배가하리라 믿는다. 특히 전체의 주제인 첼리시모에 걸맞게 저음 악기인 첼로를 위해 매력 있는 첼리스트들이 포진하고 있는데 필립 뮐러, 프란츠 헬머슨, 조영창, 양성원이 바로 그들이다. 실내악은 수준 높은 연주력도 필요하지만 실내악에 대한 오랜 노하우와 서로를 인간적으로 또는 음악적으로 신뢰하는 정신적 일체감이 충족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공연장 역시 실내악에 맞는 전문 공연장이다.

또한 그저 행사를 치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내악의 진수를 청중과 분명하게 나누려는 주최쪽의 노력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본 공연 두 시간 전, 연주자들이 솔로 또는 듀오로 짝을 지어 자유롭고 캐주얼한 연주를 들려주는 미니 콘서트를 통해 감칠맛 나는 실내악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든가, 또 15분 전에는 공연작품에 대한 해설과 작곡자·연주자에 대한 소개가 곁들여져 청중들이 음악과 만나도록 안내한다.

실내악의 향기를 제대로 느끼고 싶은가

음악에서 삼위일체라 부르는 창작·연주·감상의 역할 중 창작과 연주는 전문 음악인의 몫이지만 감상자, 즉 객석을 차지하는 청중들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으로 독특한 위치에 있다. 흔히 잊어버리기 쉽지만, 청중이 청중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음악회 자체를 완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결국 스스로도 감동을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제대로 우러나오는 실내악의 향기를 제대로 느끼려면 청중들도 준비가 필요하다. 음악을 듣고 감동하려는 자발적인 의지와 순수하고 신실한 마음가짐으로 음악회에 가는 겸허한 태도야말로 실내악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잊지 말자.

한상우 |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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