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과학기술 동향 보여주는 논문집 나와… 서방의 선진과학 도입해 실용성 강화 꾀해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를 달구는 북한 여대생 응원단의 모습이 연일 국내외 언론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부산 아시안게임에 이은 남북한의 스포츠 교류 확대는 이제 벽을 넘어 ‘우리는 하나’임을 실감하게 만든다. 스포츠 분야뿐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몇년 새 늘어난 한민족의 교류는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의 사정만은 사뭇 다르다. 그동안 남북한 과학기술계의 교류는 다른 분야에 비해 그 속도나 영역 확대가 더디게 이뤄져왔다. 물론 교류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 1998년 ‘옥수수 박사’ 김순권 교수와 북한 농업과학원의 북한 적응형 슈퍼옥수수 공동 연구개발 사업이 시작된 이래, 1999년 북한 컴퓨터 요원 양성 시범협력, 같은 해 인공씨감자 생산·재배기술 교류협력, 2000년 북한지역 농작물 병충해 구제용 농약 시험연구 사업 등으로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나 남북 과학기술의 교류는 일부 영역에 제한돼 남북 과학기술자들의 본격적인 학술교류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본격적인 과학자 교류의 토대 마련
최근엔 남북한 과학자들이 한반도 자생식물을 공동연구해 자생식물지를 만든다는 계획에 합의했으나 추진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어 실현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쪽은 “남북한 학계의 내부 문제와 의견 조율의 부족으로 식물지 공동작업은 어려울 수도 있어, 다른 공동연구 방안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남북한 과학교류의 물꼬를 트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은 듯하다. 다만 올해 초 과학기술부가 민간 차원에서 단편적으로 이뤄진 과학기술 남북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남북한 과학기술 교류협력 기본계획’을 10월 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기대를 모은다.
이처럼 그동안 과학기술 남북교류가 다른 분야에 비해 더디게 이뤄진 것은 무엇보다 상호 이해의 부족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남북한 과학기술자들 사이에 이해의 폭은 좁고 거리는 멀다는 것이다. 김근배 전북대 교수(과학학)는 “북한이 지금까지 과학기술 중시사상을 지향해온 것과 달리 우리가 북한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수준은 아직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북한 과학기술에 대한 더 많은 연구성과가 쌓여 실질적 과학교류에 보탬이 되길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www.nktech.net)가 북한 과학기술의 역사와 현황에 관한 다양한 주제의 연구성과를 모은 논문집 ‘북한과학기술연구’ 제1집을 펴내 눈길을 끈다. 1998년부터 정치체제를 새롭게 정비하면서 경제발전 전략으로 과학기술 중시사상을 내세운 북한의 이후 정보기술(IT) 개발 현황, 전자정부 추진사업, 생물학 변화 등 새로운 모색을 분석한 논문들이 다수 실렸다. 남한의 대전 대덕연구단지와 비슷한 개념으로 건설된 평양 평성 과학도시의 건설역사(강호제), 태양 연구를 강조하는 북한의 천문학의 동향(권기석) 등의 논문들도 흥미롭다. 북한의 과학기술이 점차 주체의 정치사상에서 벗어나 자율적이고 실용적인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북한 과학기술의 최근 동향을 살피는 연구논문 몇편을 논문집에서 발췌해 소개한다.
북한의 발명특허제도_ 최현규 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선임연구원
북한의 산업재산권제도는 사회주의 성격의 발명권과 자본주의 성격의 특허권을 모두 인정하는 이중적 제도로 운영된다. 발명권은 발명의 창조자임을 인정하는 권리이지만, 이용·양도권은 발명권자가 아니라 국가에 귀속된다. 물론 발명권자는 국가로부터 일정한 물질의 혜택을 받는다. 반면에 특허권은 특허권자한테 발명의 독점·배타적 권리를 모두 준다. 이용·양도권 행사가 쉽지 않은 북한 주민은 현실적으로 발명권을 주로 선택하며, 외국인은 권리보호를 위해 특허권을 선호한다.
지난 1992~2001년 북한에 등록된 특허건수는 6055건에 달하는데,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난의 행군기간’에 상당히 줄었다가 1990년대 말 과학기술 중시정책이 강조되고 집중투자가 이뤄지면서 회복세에 들고 있다. 분야별로 북한 특허는 화학·야금 기술 분야(23%)와 농업·식품·의학 등 생필품(21%), 차량·물체 처리기술 분야(18%)가 강세를 보인다.
출원인의 국적별 등록비율을 보면, 6055건 가운데 내국인이 5764건인 95%를 등록했고, 외국인 등록은 291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70건을 등록해 외국인으로는 가장 많은 특허를 등록했으며, 영국·독일·프랑스 등의 순이다. 한국·일본·중국은 등록특허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내국인으로는 북한 과학원 산하 연구소들이 654건을 등록해, 과학원이 가장 활발한 핵심 연구기관임을 보여준다.
1990년대 이후 생물학 연구동향_ 신향숙 전북대 대학원생·과학학
생명공학(BT)의 기반이 되는 북한의 생물학은 규모는 작지만 큰 비중을 차지한다. 북한 과학원에서 생물학 비중은 25.7%로, 수학물리(2.5%)·화학화공(15%)·지학(10%)에 비해 월등히 높다. 북한 생물학의 특징은 무엇보다 전통과 첨단이 혼재돼 있다는 점이다. 세계 생명공학의 연구가 질병퇴치, 항체생산 등 보건의료 분야로 나아가는 데 비해, 북한 생물학은 농업·축산업처럼 전통적으로 강조된 분야에 치중하고 있다. 농업을 위한 생물학이 발달했다는 것은 북한 과학의 특징인데 연구재료에서도 농업과 관련이 큰 벼·감자·버섯·배추 등의 연구가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며, 특히 활성화된 미생물공학 역시 비료·농약 생산에 치중해 있다. 북한 생물학은 곧 농생물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생물학은 미생물·세포·유전자공학 등 첨단분야 성과를 농업·축산업에 널리 받아들여 생산성 높은 농작물과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것을 첨단화의 방향으로 지향한다. 현재 세계 생물학계가 게노믹스, 프로테오믹스, 생물정보학 등을 지향하는 것과 비교하면, 북한식 생물학의 첨단화란 생물학의 첨단성과를 전통적 농업문제 해결에 이용하려는 특징을 보인다.
북한 과학기술의 변천: 주체 대 선진_ 김근배 전북대 교수·과학학
1960년대 후반 주체사상이 정식화하면서 북한 과학기술계에도 주체과학, 주체기술, 주체의학, 주체농법 등의 용어가 널리 쓰이며 독특한 북한식 과학의 모습을 갖춰갔다. 주체의 과학기술은 주체사상의 교시를 철저히 따라야 하며, 과학기술의 발전도 근로인민이 과학기술의 주체가 되는 대중적 혁신을 통해 이룩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1980년대 중반 들어 북한에선 서방의 앞선 과학을 뜻하는 ‘선진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주체과학·기술이라는 말 대신에 ‘과학기술에서의 주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으며, 외국의 선진 과학기술이 북한의 주체 과학기술에 어긋나지 않고 오히려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때부터 과학기술의 위상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과학기술의 주체는 인민대중에서 전문적 과학기술자로 점차 옮아갔으며, 과학기술의 전문·학제화로 인해 전문인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의 연구활동이 더욱 존중됐으며, 우수인력 확보를 위한 영재·수재 교육이 강조됐다. 해외 유학·연수, 해외동포와의 교류가 적극 장려됐다.
북한 과학기술의 근간은 여전히 ‘주체’에 있지만, 서방의 선진 과학기술도 추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북한 사회에서는 커다란 발상의 전환이다. 북한은 정보기술을 필두로 기술문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과제를 풀기 위해 과학기술 중시사상을 재촉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이끄는 과학기술 중시사상은 새로운 통치 형태로 제기돼 향후 북한사회의 행로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전개될 전망이다.
오철우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eolwoo@hani.co.kr

사진/ 북한 중앙과학기술통보사에서 과학기술 성과 자료들을 수집해 분류하고 있다.
이처럼 그동안 과학기술 남북교류가 다른 분야에 비해 더디게 이뤄진 것은 무엇보다 상호 이해의 부족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남북한 과학기술자들 사이에 이해의 폭은 좁고 거리는 멀다는 것이다. 김근배 전북대 교수(과학학)는 “북한이 지금까지 과학기술 중시사상을 지향해온 것과 달리 우리가 북한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수준은 아직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북한 과학기술에 대한 더 많은 연구성과가 쌓여 실질적 과학교류에 보탬이 되길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사진/ 대기환경 과학자로 고효율 가스제거장치를 개발한 김일성종합대학 현덕호 연구사(조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