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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랫집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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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8-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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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아랫집 여자 바람난 이야기로 입방아질이 끊이지 않는다. 여자의 외도가 남편의 자살로 끝맺었으니 ‘죽일 년’이 따로 없고, 친정 집안 바람 내력까지 까발리며 ‘아님 말고 식’의 말들이 무섭게 보태진다. 그렇지 않아도 드라마 <앞집 여자>로 상처받고, 발칙한 영화 <바람난 가족>으로 자제력을 잃은 사람들은 무더위 짜증에도 아랑곳 않고 ‘허망히 죽은’ 남자와,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살아남은’ 여자를 두고 말이 많다.

일러스트레이션 | 경연미
난 직업병 탓인지 ‘알 길 없는 외도의 원인’이 궁금할 뿐이다. 남편이 죽음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장 마녀가 되어버린 그도 할 말은 있지 싶은데 말이다. “부인도 아이들 있는데 가게까지 문닫고 집을 나간 이유가 있지 않았겠느냐”며 동정론을 폈던 우리 회원은 동년배 여성으로부터 “여자의 바람에 뭔 이유야?”라는 쌩한 대답과 이상한 시선을 받아야 했단다.

남자의 바람과 여자의 바람에 대한 잣대가 왜 달라야 하는지에 대한 상식적 의문조차 ‘바람의 위력’에 맥을 못 추지만 그래도 ‘상식은 통한다’는 똥뱃장으로 넌지시 물어본다. “남편이 외도했다고 여자들이 목을 매어 자살하는가? 설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온 동네 사람들이 남편에게 육두문자를 얹어 손가락질을 하는가?” 여성상담을 하다보면 흔히 남편들의 목숨을 내건 협박에 대부분 여자들이 주저앉게 마련이다. 그렇게 부여잡고 있는 울타리는 허술해 곧 쓰러지는데도 말이다. 죽을 맘 돌려서 부인과 의사소통 하려 들었으면 그것이 더 쉽지 않았을까?

부인의 외도와 이혼 요구에 당혹해하는 남성들의 상담도 간혹 받게 된다. “모든 걸 용서하겠다. 돌아만 와라”며 “내가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들을 달고 있는 남편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변한 게 하나도 없는 집으로 다시 돌아와 죽은 듯이 사는 부인을 원하느냐”고…. “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옛날 그대로다”는 남편들의 항변은 어불성설이며 자랑도 아니다. 오히려 극약처방이다. 문제에 대한 처방이 틀리니 대화는 싸움이 되기 일쑤다. 부부간의 의사소통은 꽉 막혀 있다. 오죽하면 여성과 남성의 대화를 화성과 금성의 외계인들간의 언어로 표현했을까!

오랜만에 한가한 틈을 타 안부전화 몇 통화 돌리다 전화기를 놓아버린다. 한숨 푹푹 쉬며, 사는 게 우울하고 힘들다는 이웃 여성들의 목소리가 괴로워서다. “부부 교육 좀 하잖게, 아니면 남성학 강좌를 하든가.” 절박하게 요구하는 지역 여성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렵다.

금성 외계인과 화성 외계인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기역, 니은부터 시작해야 할란가 보다. 대화와 소통은 ‘평등’이라는 바른 자세가 전제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아랫집 여자의 바람’이 ‘부부교육’으로 끝을 맺는 답답함을 독자들도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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