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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충돌/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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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8-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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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 서울 명덕여고 3학년

최근 저작권법과 관련한 사건이 또다시 불거져 나왔다. 소리바다와 벅스뮤직에 뒤이어 벌써 세 번째 사건인 셈이다. 국내 영화사 22개 업체가 합동으로 7개의 영상물 불법유통 사이트와 77명의 일반 이용자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기존에 있었던 사건과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기존에 논란이 됐던 음반 분야가 아닌 영상 분야로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는 점과 사이트 운영자 위주의 처벌에서 일반 사용자까지 처벌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더 이상 운영자만의 처벌로는 부족하다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이용자들과 각종 시민단체들은 “비영리적이고 개인적인 정보공유는 저작권법상 공정 이용의 자유이기 때문에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그들의 생각은 저작권이 하나의 권리라면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공유권 역시 또 하나의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 장광석
이에 반하여 저작권자들의 주장은 만만치 않다. 현행법상 저작권법이 엄연히 존재하며, 어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자신들이 저작해낸 것을 무료로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용자-저작권자간의 대립이 팽팽한 가운데, 현 시점은 저작권자, 저작인접권자, 이용자, 나아가 일반 대중들의 입장까지 고려한 타협점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아날로그 사회에서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에서 기존의 여러 영역들이 서로 상충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법도 이런 사례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디지털 세계가 등장함에 따라 문화가 디지털 콘텐츠화되면서 기존의 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문화에 대한 시각 차이가 생긴 것이다. 문화 생산자인 저작권자와 정보소비자인 네티즌간의 서로 반대되는 시각이 대결 구도를 형성한 것이다. 지난해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리바다’의 사례가 그러한 시각적 차이에 따른 대결의 결과이다.

소리바다는 ‘P2P’(Peer to Peer) 방식으로 소리바다에 접속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악자료를 불특정 다수에게 제공할 수 있고, 자신 역시 타인의 컴퓨터에 내장되어 있는 음악자료를 공유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음악자료에 관한 정보공유의 장을 만든 것이다. 그 파급효과는 대단히 커서 1년도 채 안돼서 300만명의 이용자가 생겼고, 신세대를 주축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에 따른 경제손실을 체감한 음반업계는 ‘저작권법’을 내세워 소송을 제기했으나, 실질적 요인은 음반시장 위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송 2년 만에 공소가 기각되어 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던 ‘소리바다’측은 ‘소리바다2’로 새로운 서비스를 재개했다. P2P 기술 자체가 저작권 침해의 주범이 될 수 없다는 해석과 공범이라고 해야 할 이용자들의 구속 요건 없이, 이에 대한 방조범의 성격이 짙은 운영자만의 처벌은 불공정하다는 것이 판결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례 없던 사건에 재판부도 난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음반업계가 ‘소리바다2’에 대한 소송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이 쉽게 찾아질 것 같지는 않다.

최근 영화사들이 낸 소송에서처럼 이용자들까지 처벌 대상으로 고소한다면, 그 갈등의 파장이 어느 정도로 확대될지 미지수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네티즌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기존 방식에서 다운로드를 제외한 스트리밍 방식의 새로운 유사 서비스 방식도 논란이 되고 있어, 당분간은 네티즌과 저작권자들간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디지털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콘텐츠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무료 콘텐츠에 익숙해진 이용자들과 오프라인의 법을 온라인상에도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저작권자의 갈등은 지속될 전망이다. 물론 디지털 세계라고 해서 저작권법이 보호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세계에서든지 창작의 권리는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보호될 수 없다면 고급 기술을 생산하는 측의 부가가치는 언제나 물거품이 될 것이고, 그 결과는 콘텐츠 제작의 의욕 상실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사이버상에서 사실상의 정보공유나 불법복제 파일의 유통을 일일이 가려내고 처벌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인터넷 기술의 개발은 하루가 다르고, 그에 비례해 콘텐츠 개발 역시 날로 발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불법으로 간주하면 그것을 대체하는 또 다른 유사물이 나오는 세상이니, 더 이상의 재래식 대응은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음악, 영상 등을 포함한 문화를 더 이상 상품이라는 시각으로 시장원리에 맡겨놓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저작권자, 이용자 모두가 합의점을 찾고 그것을 기반으로 상호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구축했을 때 비로소 해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저작권자들도 매체의 환경이 급속히 변한 만큼 온라인 시장의 특성을 인정하고, 오히려 이 방면의 시장논리에 맞는 대응력을 키워야 하며, 좀더 긍정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칭찬과 아쉬움

피부에 와 닿는 주제여서일까. ‘저작권 보호냐, 정보 공유냐’를 주제로 다른 때보다 많은 학생들이 논술글을 보내왔다. 서너개의 글을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서울 명덕여고 김지현 학생의 글을 선정했다.

김지현 학생은 기존의 오프라인과 다른 작동 원리를 지닌 디지털 세계에 맞는 새로운 저작권 질서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신의 주장을 차분한 논리와 적확한 문장으로 서술해나간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소리바다’부터 최근의 영상파일 사이트까지 법적 분쟁의 변화 과정을 꼼꼼히 살핀 점도 돋보였다. 그러나 너무 장황하게 분쟁 과정을 늘어놓아 정작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할 본론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결론 부분에서도 저작권자와 이용자의 합의만 강조했을 뿐 구체적 대안 제시가 미흡했다. 저작권 분쟁에 관한 장황한 설명은 다른 글에서도 자주 눈에 띄었다. 논술글을 쓸 때 주의할 점은 지난 논쟁을 지루하게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출제자들이 궁금한 것은 지난 논쟁이 아니라 학생의 참신한 시각과 논리적 서술 능력이다.

마지막까지 선정 여부를 놓고 고심했던 인천 대건고 이수동 학생의 글은 정보 논쟁의 핵심이 ‘알 권리’와 ‘소유할 권리’에 있음을 적확하게 지적했다. 알 권리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대안 제시도 좋았다. 그러나 저작권 보호의 중요성을 주장하기 위해 한글과컴퓨터사가 파일 무단복제 때문에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논리를 펼쳤는데, 이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실관계가 확실하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논리를 논술글의 예로 드는 것은 위험하다.

이 밖에 대부분의 글에서 요지는 “저작권을 보호하지 않으면 창작 의욕을 떨어뜨려 결국 사회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정보의 자유를 옹호하는 글은 하나도 없었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공짜 심리’에 대한 비판에 몰입하다보니, 논쟁의 심층에 놓인 소유와 공유의 갈등을 읽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 즉, 지적 재산 혹은 정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누구의 것이냐는 근본 물음이 빠져 있다.

가령 정보의 공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런 견해도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지식, 정보, 창작물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의 ‘창작된’ 파일도 인류가 오랜 세월 축적해온 지식과 정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어떤 지식과 정보는 특정인의 소유라기보다는 인류의 자산이다. 더구나 일부 몰염치한 자본은 대동강 물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 봉이 김선달처럼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발빠른 저작권 등록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 현재의 지적 재산권 분쟁도 자세히 뜯어보면, 대중문화 창작자의 권리 보호보다 창작물 생산에 간접 기여한 제작자, 즉 자본의 권리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한 정보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상업적 이용과 개인적 사용의 구분 또한 강조한다. 심지어 ‘맛보기’용 파일이 음반 구매를 촉진한다는 견해도 있다. ‘지적 소유권’의 신화에 도전하는 글이 없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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