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복사기에 맞서는 문서 위·변조 방지 기술… 홀로그램 대신하는 광택마크에 3차원 암호화 등장
예술계에서도 위·변조를 둘러싼 창과 방패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한쪽에서는 원본을 지키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베끼려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독특한 작가의 사인도 내로라 하는 모조품 제작자가 베끼는 건 시간 문제일 뿐이다. 자신의 작품을 보호받으려는 작가들은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작가들의 몸부림이 마침내 첨단 DNA 기술로까지 이어졌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명 미술가인 프로 하트는 자신의 작품에 DNA 인증표를 삽입한다. 생명공학업체는 프로 하트의 구강세포를 채취해 DNA를 분리한 뒤 디지털 사진 형태의 인증표로 제작한다. DNA 인증표는 작품의 특정 부분에 삽입되고 데이터베이스에도 기록된다. 만일 누군가가 프로 하트의 그림을 사려면 인증표로 진위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위·변조 둘러싼 창과 방패의 대결
지금까지 불법복제를 막으려는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예전에는 고급 재질의 종이나 특이한 도장만으로도 충분히 원본 문서를 보증했다. 본인을 확인하는 데 인감증명서만으로 충분한 시절도 있었다. 화가의 작품이나 지폐 등의 불법복제를 막기 위해 젖어 있는 상태에서 그림을 인쇄하고 이를 말린 뒤 다시 양면을 인쇄하는 기법도 썼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통적 방법은 불법복제에 속수무책이다. 디지털 프린터, 스캐너,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 등이 가짜와 진짜의 경계를 무너뜨린 탓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널려 있는 것이다. 암호화 기술자들은 정보를 보호하려고 다양한 ‘디지털 자물통’을 개발하고 여기에 대항하는 베끼기 전문가들은 ‘디지털 열쇠’로 맞서는 형국이다.
디지털 자물쇠는 미술품이나 저작물, 지폐 등에 특수한 형태로 숨겨져 있다. 1만원권 지폐의 경우 세종대왕의 초상화가 있는 면의 왼쪽 여백에는 불빛에 비춰야만 드러나는 초상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워터마크’(Watermark)다. 워터마크는 첨단 복사기나 컴퓨터 스캐너로도 거의 재생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원천적으로 위조를 방지할 수 있는 잉크가 개발되기도 했다. 미국 리드대학 색화학과 데이비드 루이스 박사팀은 복사하거나 스캔받으면 색이 변하는 특수잉크를 개발했다. 이 잉크는 열색성(thermochromic) 분자를 함유하고 있어 복제할 때 잉크색이 변하거나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다. 열색성 분자는 일정한 온도 범위 내에서 색상 변화를 일으켜 보안이 필요한 인쇄물에 쓰인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자물쇠를 채우는 방법이 복잡하면 대중화에 한계가 따른다. 열색성 분자는 특성상 제조비용이 만만치 않고 워터마크는 별도의 인쇄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는 새로운 기술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세계적인 복사기 전문업체 제록스사가 ‘광택마크’(Glossmark)는 저렴하고 간편하게 종이 서류의 원본을 보증한다. 광택마크는 마치 홀로그램(Hologram)처럼 빛의 방향에 따라 이미지가 다르게 나타난다. 홀로그램은 두개의 레이저 광선을 이용해 만든 3차원 영상으로 별도로 인쇄해서 부착해야 한다. 이에 비해 광택마크는 사무실의 일반적인 프린터로 인쇄할 때 만들어진다. 위조가 불가능한 것은 2차 복사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암호화에 대한 관심이 디지털 문서에 집중된 게 사실이다. 인쇄 문서는 보안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성능 복사기와 스캐너의 등장으로 인쇄 문서는 원본을 보호하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인쇄문서도 디지털 기술의 도움을 받아 보호받을 길이 열렸다. 광택마크만 해도 운전면허증이나 주민증, 여권, 비자 등에 간편하게 자물쇠를 채울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문서에 간편하게 홀로그램과 비슷한 이미지들을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이 기술은 소프트웨어적으로 광택을 여러 곳에 분포시켜주는 기술이 기존의 프린터에 적용되면서 가능해졌다. 광택마크는 위조를 불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이름, 시간, 코드 등 변화하는 정보를 기록하는 데도 유용하다.
인쇄 문서에 사용하는 자물통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워터마크나 광택마크는 소유권을 표시하고 위·변조를 막는 데 쓰인다. 여권에 광택마크를 사용해도 진위 여부를 확인할 뿐 소지자가 맞는지 틀리는지는 확인하지 못한다. 이럴 때 국내의 보안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인 알파로직스에서 개발한 ‘3차원 심층 화상 암호화 기법’(3D SIS: 3 Dimensional Steganographic Image Scrambling)을 이용하면 위·변조 여부에서 소지자 확인까지 손쉽게 할 수 있다. 3D SIS는 사진 서명 등의 이미지와 문자 정보를 동시에 암호화한다. 특정 색상의 도형으로 암호화한 이미지는 원래의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형태로 인쇄되어 해독이 불가능하다. 이미지를 인쇄하는 방식도 간편하다. 일반적인 잉크젯 프린터로도 인쇄할 수 있다.
이미지·문자 암호화… 생체인식도 가능
인쇄매체에 화상 암호화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는 매우 복잡하다. 원본에 가까운 화상을 얻으려면 다단계 처리 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여권이나 비자 등에 적용하는 것은 간단하다. 먼저 사진이나 이름·생년월일 등 개인정보를 암호화 이미지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여권이나 비자 등에 색깔이 있는 띠로 넣으면 된다. 이렇게 여권을 만들었다면 입·출국 수속 때 3D SIS 기술이 적용된 부분을 인식기(하드웨어)에 넣어 암호를 푸는(복호화) 소프트웨어로 위·변조 여부를 가려낸다. 만일 사진을 위조한 여권이라면 인식기에 넣었을 때 복호화된 사진이 나타나 위조 여부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인식기가 스캐너 방식으로 암호화된 이미지를 읽기에 RF단말기보다 처리 속도가 느리다는 게 단점이다.
알파로직스의 3D SIS는 보안이 필요한 모든 인쇄물에 적용할 수 있다. 지문이나 얼굴사진 등의 신체 정보를 이용하는 생체인식기술도 3D SIS에 쓰인다. 예컨대 지문 정보를 스캔받아 주민증 등에 넣은 뒤 본인을 확인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 3D SIS는 정보를 담는다는 의미에서 스마트카드의 IC칩과 비슷하지만 쓰임새는 전혀 다르다. IC칩은 인쇄매체에 보이지 않는 정보까지 담는 데 비해 3D SIS는 표시되는 정보만 담을 수 있어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없다. 현재 3D SIS는 외국인등록증, 전역증, 비자 등에 쓰이고 있다. 인쇄매체는 항상 위조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인쇄매체의 위·변조를 둘러싼 창과 방패의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위·변조의 대가들은 음지에서 창끝을 단련하고 있을 것이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사진/ 알파로직스의 3차원 심층 화상 암호화 기법을 적용한 각종 증명서들.
디지털 자물쇠는 미술품이나 저작물, 지폐 등에 특수한 형태로 숨겨져 있다. 1만원권 지폐의 경우 세종대왕의 초상화가 있는 면의 왼쪽 여백에는 불빛에 비춰야만 드러나는 초상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워터마크’(Watermark)다. 워터마크는 첨단 복사기나 컴퓨터 스캐너로도 거의 재생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원천적으로 위조를 방지할 수 있는 잉크가 개발되기도 했다. 미국 리드대학 색화학과 데이비드 루이스 박사팀은 복사하거나 스캔받으면 색이 변하는 특수잉크를 개발했다. 이 잉크는 열색성(thermochromic) 분자를 함유하고 있어 복제할 때 잉크색이 변하거나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다. 열색성 분자는 일정한 온도 범위 내에서 색상 변화를 일으켜 보안이 필요한 인쇄물에 쓰인다.

사진/ 제록스사가 개발한 광택마크.

사진/ 3차원 심층 화상 암호화 기법을 적용한 증명서는 인식기로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위·변조가 이뤄지면 왼쪽처럼 OCR 부분이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