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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책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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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8-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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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 소설가
‘책’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간단하게 베껴본다면, 이렇다.

‘책(冊): 1. 어떤 생각이나 사실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한 종이를 꿰맨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2. 종이를 여러 장 겹쳐 맨 물건 3. (옛 서적의) 책으로 맨 것을 세는 단위.’

아 얼마나 단순한가! 먹물 기가 좀 밴 인간이나 남보다 책가방 끈이 좀 길다고 느끼는 인간에게 책의 정의를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모르긴 해도, 책은 인간 정신에 작용해서 어떤 유기적인 작용을 하는 어쩌고저쩌고…. 책의 고상한 기능에 대해 말하지 않을까?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하지만, 나는 이번에 아예 ‘책’이라는 ‘물건’ 또는 ‘물질’에 관해 얘기해보려 한다.


어쨌거나, 책은 책이다. 사전적인 정의를 보면 책은 종이로 된 ‘물질’이며 그걸 두툼하게 꿰맨 ‘물건’일 뿐이다. 그야말로 까막눈의 할머니나 갓 말을 배운 어린애에게는 그것이 단순한 물건 이상은 아닐 것이다. 책이 영혼의 양식이라고 하지만, 그 모양새는 딱 예전에 난로 위에 데워먹던 ‘벤또’만한 물건이다. 특히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책이라는 물건은 더욱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다.

알고 지내던 어떤 신문기자와 몇년 전에, 인터넷이 모든 정보의 보고가 되고 있는 마당에 과연 신문이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그 기자는 신문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오오! 과연 신문기자의 투철한 직업정신에서 나온 고견이구나 싶어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웬걸? 그는 이 세상에 변비환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신문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이후 가끔 화장실에 앉아 느긋하게 신문을 보며, ‘니들이 이 맛을 알아?’할 것 같은 기자의 얼굴이 머릿속에 상상되곤 했다.

일러스트레이션 | 장광석
그럼 책이라는 ‘물건’의 존재는 앞으로 어찌될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

집안에서 책이란 물건은 평소에 물건을 괼 때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장롱을 괼 때나 기우뚱한 책꽂이를 괼 때, 호기심 많은 키 작은 막내가 창 밖을 내다보고자 할 때 디딤돌로 쓰이는 것도 책이다. 게다가 성질 급한 아버지에게는 말 안 듣는 아들놈 정수리를 치는 사랑의 매, 엄마에게는 뜨거운 냄비를 급하게 받칠 때 쓰는 받침대, 컴퓨터 앞에 앉은 아들에겐 마우스 깔개나 메모지 받침, 수줍은 여학생 딸이 남자친구 만날 땐 두 손으로 책을 껴안고 가슴이나 아랫배를 살짝 가리면 지적이고 애교스런 포즈를 제공하는 것도 책이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휴대품이 휴대전화라고는 하지만,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드물지 않고, 여성들의 핸드백 속에 간혹 책이 들어 있는 걸 봐서 휴대품으로서의 책의 존재 이유도 아직은 짱짱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책의 존재는 휴가철에 빛나는 법. 올 여름 휴가에도 나는 책을 챙겨갔다. 겨우 1박2일의 짬을 낸 휴가 기간 동안에 독서를 함으로써 망중한을 즐긴다?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은 아니다. 책이 여러모로 유익한 멀티 비상용품이기 때문이다.

우선 야외로 나가면 책은 훌륭한 소품이 될 수 있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올 때 소설책은 쟁반 구실을 할 수 있다. 또 급한 길에 휴게소에서 사온 음식을 차에서 먹을 땐 남편이 가져온 크고 두꺼운 하드커버 화집은 식판으론 제격이다. 풀밭에서 잠이 오면 베개로 머리를 편하게 괼 수 있게도 해준다. 흰 바지를 입었을 때 땅바닥에서 방석 구실은 또 어떤가. 아이가 식물이나 곤충채집을 할 땐 책 속에 납작하게 보관할 수도 있다. 파리가 꼬이는 민박집에서는 파리채로도 훌륭하고, 출출한 밤에 끓여먹는 컵라면 뚜껑으로도 제격이다.

낱낱이 까발려진 채 몸을 불사르는…

게다가 야외에서 너무도 급할 땐 물론 부드러운 화장지에 비길 바는 못 되지만, 휴지의 구실도 하는 게 책이다. 이미 그 정도 되면 책은 타락의 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이렇게 이왕 ‘베린 몸’이 돼버리면, 딱 옛 소설의 망가지는 여주인공처럼 한없이 타락하는 게 책의 운명이다. 낱낱이 온몸이 까발려진 채 자신의 몸을 불사른다. 민박집 아궁이의 불쏘시개나 마당의 캠프파이어의 밑불로 일생을 마친다.

아아 책을 너무 모욕했는가? 나는 다만 책의 그 위대한 ‘정신’은 물론이고, 인간의 곁에서 끊임없이 몸을 내어주는 책이란 놈의 ‘몸’도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어떤가, 책은 사라질 것인가? 인간이 외로운 존재인 한, 어떤 식으로든 책의 몸에 정을 주지 않겠는가.

권지예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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