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마트 전쟁

473
등록 : 2003-08-20 00:00 수정 :

크게 작게

“이번에 개장한 마트가 30억원도 넘게 들여서 지었담서?” “영광서 장사혀서 30억원 빼먹을랑가 모르겄네. 그러자문 그짝의 재래시장 힘팡지겠(힘들겠)구만” “영광읍에만 이미 4개의 대형마트가 있는디, 바로 옆의 ‘거시기’ 마트도 그 전의 ‘머시기’ 마트 짝나는 것 아니여?”

한 조합에서 개장해 열흘을 넘기고 있는 대형마트는 성패 여부를 떠나 가뜩이나 어려운 영광경제에 영세·소규모 상인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문을 열었다.

일러스트레이션 | 경연미
“지그덜만 살것다고 지역상인들 나 몰라라 하문 안 되제”라며 쑤군거렸던 사람들로 대형마트는 늦은 시간까지 북적이고 닭 한 마리에 1600원이라는 홍보방송에 혹한 나도 열심히 닭코너 앞으로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몰고 간다.

개장 첫날 연예인과 지방방송사를 동원한 노래자랑을 보기 위해 목을 늘이고 선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재래시장 노점상 아줌마가 손질해놓은 고구마에 눈길 주며 조심스레 심정을 물으니, “우리 손님은 있어, 아무리 마트가 좋다혀도 단골손님은 안 떨어질거구만”이라며 애써 대형마트의 현실을 외면하고 만다. “엣따 기분이다. 몇개 더 얹어주제, 쩌그는 이런 재미는 없제, 저울질로 그만치만 준께. 안 그려?” 벌써부터 작지만 가격경쟁을 경험한다.

초현대식 시설과 농산물, 축산물, 공산품 등 다양한 품목을 갖춘 데다가 넓은 주차장으로 밤 9시면 대부분 철시를 하는 영광 읍내 상가와는 달리 활기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대형마트 개장 당일 주변 영세상인을 비롯한 소규모 상인들은 “거대한 공룡이 지역의 상권과 재래시장, 영세상인을 말살하려 한다”며 반대집회를 계획했으나 가까스로 합의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다. 적자를 면하고 살아남기 위해 대형마트를 운영해야 하는 조합측이나 소상인들의 다툼이 안타깝게 마음을 짓누르는 건 암울한 농촌경제 탓이리라.

줄어가는 농업인구, 개방농정으로 인한 경쟁력 상실 등 농민을 옥죄는 농업정책은 곧 지역경제의 낙후로 이어진다. 농민의 주머니가 열리지 않으면 영광의 상인들도 돈가뭄에 목이 탄다. 나락수매하고 가실곡식들 팔 때쯤이나 되어야 영광읍이 분주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형마트 자리는 몇년 전만 해도 소를 팔고사는 우시장이었다. 5일장의 한가운데 자리한 우시장은 주인 손에 이끌려 나온 소들의 울음소리와 사고파는 사람들의 고함소리로 왁자했었다.

재래시장의 향수와 농촌경제의 쇠퇴가 흠씬 배여 있는 이곳에 대형마트가 들어설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른 데는 군이 나서서 재래시장 보호한다고 하는데, 두고 보씨요. 장사해서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다른 데로 뜰 사람들 생길 것이고, 그 인구 줄어드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요”라는 재래시장 아저씨의 침통한 표정에 고개만 주억거릴 뿐….

오늘도 옷가게 하나가 문을 닫나보다. ‘점포정리’라고 써붙인 글귀가 ‘농업정리’로 읽히는 것이 나만의 착각이길 바랄 뿐이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

영광댁 사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