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내 서늘한 바람이 땀방울을 말려낸다. 맑은 하늘가에서 보내주는 한줄기 바람은 뙤약볕 아래에서 온몸 드러내고 일해야 하는 농민들에겐 시원한 약수다.
누런 고춧대에 매달린 채 태양광에 말라버린 고추를 훑어내느라 고추밭에 아침 한나절 엎드려 있다.
고추밭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밭둑에 들어서니 굵디굵은 빨간 고추가 제법 눈에 띈다.
“이놈이 지대로 다 열려서 익었음 따내니라 연금봤겠네요(고생했겠네요)”라며 위로랍시고 말을 건네니 옆 두둑에서 고추 따던 어머니 왈. “팔뚝만하던 고추가 삐래(빨개)가지고 밭고랑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떨어져 있는디 오메 저것이 다 돈인디 싶어서 가심이 허심허심(허하다)하더랑께.”
그래도 우리는 그나마 딸 것이 있어서 다행이란다. 요사이 대낮부터 마을회관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동네어른들 보기 민망해서 드나들기가 불편할 정도로 ‘고추일손’들이 놀고 있다. 때마침 삽 들고 논에 가던 지산양반 쓰린 가슴 감추며 한마디 한다. “워메, 고추봐야. 이놈 다 따서 엇따 쓸랑가.”
“시물다섯 포대 (25가마니)는 땃어야 허는디 절반밖에 안 되구먼. 고춧대에서 말라버려 근중(무게)도 안 나가야.” 아침참에 딴 고추가마 14개를 리어카와 차에 나눠 실으며 아버님은 안타까운 욕심을 부리신다.
미정이네 20근, 죽림댁 30근, 윗집 소씨네 50근 주라며 먹을 것도 못한 동네사람들이 고추 흥정을 벌이지만“ 줄 것이 있어야제. 이미 맞춰버렸는디”라며 올해는 매년 완도로, 군산으로, 서울로 팔려나가던 고추양도 다 못 채울 모양이라며 은근짜를 부린다.
변산양반 목발 짚고 지줏대 박아대던 노지고추도 말라죽고, 동네 앞의 손불양반네 고추밭 고랑에 심어놓은 콩잎이 무성해 동화책에 나오는 재크의 콩나무를 연상케 한다. 비닐하우스에 들어서니 고추 익는 단내가 훅하니 덮쳐온다. 매우면서도 달큰한 고추 익는 냄새에 시장기까지 동한다. 고추 따며 한두개 주머니에 넣어온 풋고추로 점심 먹고 마당에 널어놓은 말린 고추 단도리하느라 득달같이 달려나간다. 팽팽하고 흠 없이 시뻘건 고추가 상품이건만 밭에서부터 말라버리거나 고추 끝에 손상이 간 것들이 많아 아무래도 희나리(하품) 고추가 많이 나온다. 고추값 비쌀 땐 희나리라도 돈 되니 따로 손질해야 한다며 지난해엔 쓰레기 취급받던 희나리에 정성스런 어머니 손길이 간다. 비닐하우스에서 하루이틀 말린 고추 햇볕 타는 마당으로 옮기고, 새로 딴 고추 다시 비닐하우스에 넣으며 고추포대와 씨름을 하고 나니 차라리 밭에서 고추 따는 일이 수월하다 싶다. 어머니는 어느새 고추밭가에 심어놓은 옥수수를 한 포대나 따오셨다. “비올 때는 알이 하나도 없더니 날 뜨거운 게 알이 찼시야”라며 여름 한낮 뜨거운 햇볕에 경의를 표한다. 고추 널어놓고 손질한 옥수수 들통에 쪄내니 고소한 알갱이들이 제법 뱃속을 두둑히 한다. 어젯밤부터 귀뚜라미가 울어댄다. 아침저녁 서늘하면서도 한낮 불볕더위가 곡식을 살찌우는 자연영양제다. 조금 덥다고 짜증 내지 말자. 고추흉년 여름을 나는 영광 농민들의 더위에 댈 것이 아니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일러스트레이션 | 경연미
변산양반 목발 짚고 지줏대 박아대던 노지고추도 말라죽고, 동네 앞의 손불양반네 고추밭 고랑에 심어놓은 콩잎이 무성해 동화책에 나오는 재크의 콩나무를 연상케 한다. 비닐하우스에 들어서니 고추 익는 단내가 훅하니 덮쳐온다. 매우면서도 달큰한 고추 익는 냄새에 시장기까지 동한다. 고추 따며 한두개 주머니에 넣어온 풋고추로 점심 먹고 마당에 널어놓은 말린 고추 단도리하느라 득달같이 달려나간다. 팽팽하고 흠 없이 시뻘건 고추가 상품이건만 밭에서부터 말라버리거나 고추 끝에 손상이 간 것들이 많아 아무래도 희나리(하품) 고추가 많이 나온다. 고추값 비쌀 땐 희나리라도 돈 되니 따로 손질해야 한다며 지난해엔 쓰레기 취급받던 희나리에 정성스런 어머니 손길이 간다. 비닐하우스에서 하루이틀 말린 고추 햇볕 타는 마당으로 옮기고, 새로 딴 고추 다시 비닐하우스에 넣으며 고추포대와 씨름을 하고 나니 차라리 밭에서 고추 따는 일이 수월하다 싶다. 어머니는 어느새 고추밭가에 심어놓은 옥수수를 한 포대나 따오셨다. “비올 때는 알이 하나도 없더니 날 뜨거운 게 알이 찼시야”라며 여름 한낮 뜨거운 햇볕에 경의를 표한다. 고추 널어놓고 손질한 옥수수 들통에 쪄내니 고소한 알갱이들이 제법 뱃속을 두둑히 한다. 어젯밤부터 귀뚜라미가 울어댄다. 아침저녁 서늘하면서도 한낮 불볕더위가 곡식을 살찌우는 자연영양제다. 조금 덥다고 짜증 내지 말자. 고추흉년 여름을 나는 영광 농민들의 더위에 댈 것이 아니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