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전시]
20세기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슬픈 아시아의 표정들…중국의 위안부 할머니에서 매향리, 오키나와까지
이것은 상처이다. 50여년 동안 아물지 않고 겹겹이 쌓아온 아시아의 상흔이다. 원폭 피해자의 늘어진 살, 주름 속에 통한의 세월을 묻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미군 차량에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은 한-일 두 나라의 부모들, 소음과 오폭의 위협 속에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매향리 주민들…. 그 아픈 자국을 카메라 렌즈에 담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보다 참혹한 인생이 어디에 있을까
안세홍 사진전 ‘겹겹’(8월19일까지, 서울 인사동 대안공간 풀, 02-735-4805)은 중국 안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오늘’을 주목한다. 식구들의 가난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영문도 모르고 따라나섰다 낯설은 중국 땅에서 일본군의 성노리개가 됐던 할머니들의 과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칠이 벗겨진 화장대, 가마솥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부엌, 궁핍한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널린 작은 방에서 깊게 패인 할머니들의 주름살이 도드라진다. 천황이 연합군에 패배를 선언하고 태극기 물결이 전국 곳곳에 넘실거리던 그 기쁨의 순간에도 중국 내 위안부 할머니들은 소련군을 피해, 중국인의 보복을 피해 숨어다녀야 했다. 중국어는 한마디도 못하고 의지할 데도 없던 이들은 ‘그저 살기 위해’ 중국인과의 결혼을 택했지만 대부분은 불행으로 끝났다. ‘한 사람의 일생이 어쩌면 이리도 악운의 연속일 수 있을까’ 싶은데, 안세홍씨는 이들의 고통을 현재의 단면으로 잘라 보여준다. 거울 안에 비친 한숨 섞인 얼굴, 누추한 문을 나서는 구부정한 뒷모습 등 일상의 틀 안에 잠겨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은 20대의 아픔이 70대, 80대에도 이어져옴을 말해준다. 그것은 “정부는 배상 책임이 없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일본의 뻔뻔스러움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전시장엔 할머니들을 클로즈업해서 찍은 대형사진 외에도 할머니들의 일상생활을 스냅 사진처럼 찍은 사진 660여장이 한 벽면 가득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엔 할머니들이 보관하고 있던 20대 시절 빛바랜 사진이 함께 걸렸다. 청춘의 세월을 어둠 속에 보내고, 참혹한 기억이 새겨진 쭈글거리는 피부와 병든 육신만 남은 이들의 모습이 대조된다.
안세홍씨는 본래 2001년 여성부 지원으로 이뤄진 중국 내 일본군 위안부 실태 조사에 정신대연구소와 함께 사진 기록을 위해 참여했었다. 그러다 단지 기록의 차원이 아니라 “할머니 한 사람마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어 다시 중국을 혼자 찾았다”. 만주 지역을 비롯해 베이징, 우한 등 일본군 주둔지가 있던 곳에서 10여명의 할머니들을 만났던 이 여정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할머니 한분 한분을 기차로 버스로 배로 발품 팔아 다니는 길은 할머니들이 겪었던 과거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듬어보게 했다.” 월간 <사회평론 길>의 기자로 시작해 장애인, 국내 위안부 할머니 등 마이너리티의 삶을 담아온 안씨는 사진을 찍기 위해선 그 대상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교감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장애인 사진을 찍기 전엔 충북 음성 꽃동네에 들어가 여섯달 동안 환자와 장애인들의 수발을 들었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찍기 전엔 정신대연구소에서 소식지를 만드는 자원봉사 활동을 했었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찍는 것은 아주 잠깐, 한순간의 일이다. 그들의 내면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하다.”
한·일 사진작가 10인의 의미있는 행동
‘한국 일본 오키나와에 관한 기록과 기억, 사진가 10인의 눈’(8월22일까지, 서울 서초동 한전프라자갤러리, 02-2055-1192)은 지난 6월 오키나와에서 시작해 오사카, 도쿄를 거쳐 서울에서 마감하는 한-일 양국 릴레이 전시다. 하지만 제목에서 보듯, 이 전시회의 주제는 한국과 일본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오키나와’다. 또한 제2차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미국화’와 그 이전에 한국과 오키나와에서 강제로 진행됐던 ‘일본화’에 대한 반성이다. 17세기에야 일본으로 편입됐던 오키나와는 제2차세계대전 중 일본에서 유일하게 군인들의 전투가 벌어진 곳이며, 제2차세계대전 뒤엔 72년까지 미국령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도 주일 미군의 상당수가 주둔하고 있는 오키나와는 일본의 일부이면서도 ‘일본이 아닌’ 희한한 곳이다.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기에 오키나와의 사진가들과 한국의 사진가들은 정서적 일치감을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이 전시는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30여년간 고향을 주제로 사진을 찍어온 이시가와 마오와 우리나라의 사진가 신동필·국수용씨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원폭 피해자를 찍어온 신동필씨와 매향리 폭격장을 다뤄온 국수용씨는 첫 만남부터 ‘오키나와의 여전사’와 의기투합했다. “한-일 합동 전시회를 열자!” 1년 남짓 준비기간을 거쳐 10명의 사진가가 모였고, 순회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주일 미군과 오키나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존 마츠모토는 그와 같은 혼혈 음악인 히가 바이론을 주제로 한 사진을 내놨다. 깊은 눈매와 입체적인 얼굴선 등 사진으로 한눈에 봐도 서양인의 피가 흐르는 히가 바이론은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닌 오키나와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집한다. 그는 머리도 류큐왕조 시대 머리로 빗고 오키나와의 전통 민속악기 ‘산신’을 연주한다. 오키나와 노인들보다 더 사투리를 실감나게 쓴다는 그는 ‘경계인’의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했다. 재일동포 2.5세대인 배소씨는 간토 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에 천착한다. 자연재해의 참상을 분풀이하듯 한국인에 뒤집어씌워 6천여명을 죽인 이 사건을, 그는 당시 생존자 조인승씨의 인물사진 연작을 통해 고발한다. 아시아의 군사질서를 좌지우지하는 미군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보인다.
파주 출신 작가 이용남씨는 기지촌 주민들의 삶을 클로즈업한다. 미군 부대 안에서 한껏 멋을 내고 방싯거리며 서 있는 한국인 여자의 어색한 모습, 미국의 신형 무기를 신기한 듯 살펴보고 있는 파주의 지방자치단체장, 민가에 헬기가 추락해 아수라장이 된 모습 등 이씨는 신무기로 나라를 지켜주고 달콤한 초콜릿을 나눠주는 듯 선전하면서도 주민들에게 폐를 끼치는 데 미안함이 전혀 없어보이는 미군의 태평한 모습을 담았다. 이 밖에도 지난해 말 전국을 촛불로 타오르게 했던 반미시위와 관련한 사진도 나왔다. 노순택씨는 굵은 빗물이 눈물처럼 점점이 뿌려진 효순·미선 영정 사진과 시청 앞 광장을 메웠던 촛불의 파도를 담았다.
아시아에서 미군과 함께 산다는 것은…
한국과 일본, 오키나와의 사진들에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좀더 직접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표현하는 데 반해, 일본쪽 작가들은 얼핏 보면 개인적 이야기를(실제로는 역사 속의 개인이지만) 개인적 시선으로 풀어간다. 같은 장르의 다큐멘터리 사진이지만 이를 소화하고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도 관람의 즐거움을 준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20세기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아시아. 아물지 않고 겹겹이 쌓아온 상처를 카메라에 담았다. 중국에 거주하는 위안부 할머니에서부터 미군에 아파하는 매향리, 오키나와까지. 정녕 아시아에서 산다는 것은 아픔이어야 하나. |
이것은 상처이다. 50여년 동안 아물지 않고 겹겹이 쌓아온 아시아의 상흔이다. 원폭 피해자의 늘어진 살, 주름 속에 통한의 세월을 묻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미군 차량에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은 한-일 두 나라의 부모들, 소음과 오폭의 위협 속에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매향리 주민들…. 그 아픈 자국을 카메라 렌즈에 담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안세홍 사진전 ‘겹겹’(8월19일까지, 서울 인사동 대안공간 풀, 02-735-4805)은 중국 안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오늘’을 주목한다. 식구들의 가난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영문도 모르고 따라나섰다 낯설은 중국 땅에서 일본군의 성노리개가 됐던 할머니들의 과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칠이 벗겨진 화장대, 가마솥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부엌, 궁핍한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널린 작은 방에서 깊게 패인 할머니들의 주름살이 도드라진다. 천황이 연합군에 패배를 선언하고 태극기 물결이 전국 곳곳에 넘실거리던 그 기쁨의 순간에도 중국 내 위안부 할머니들은 소련군을 피해, 중국인의 보복을 피해 숨어다녀야 했다. 중국어는 한마디도 못하고 의지할 데도 없던 이들은 ‘그저 살기 위해’ 중국인과의 결혼을 택했지만 대부분은 불행으로 끝났다. ‘한 사람의 일생이 어쩌면 이리도 악운의 연속일 수 있을까’ 싶은데, 안세홍씨는 이들의 고통을 현재의 단면으로 잘라 보여준다. 거울 안에 비친 한숨 섞인 얼굴, 누추한 문을 나서는 구부정한 뒷모습 등 일상의 틀 안에 잠겨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은 20대의 아픔이 70대, 80대에도 이어져옴을 말해준다. 그것은 “정부는 배상 책임이 없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일본의 뻔뻔스러움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전시장엔 할머니들을 클로즈업해서 찍은 대형사진 외에도 할머니들의 일상생활을 스냅 사진처럼 찍은 사진 660여장이 한 벽면 가득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엔 할머니들이 보관하고 있던 20대 시절 빛바랜 사진이 함께 걸렸다. 청춘의 세월을 어둠 속에 보내고, 참혹한 기억이 새겨진 쭈글거리는 피부와 병든 육신만 남은 이들의 모습이 대조된다.

사진/ 위안부 할머니를 찾아 중국을 누빈 안세홍씨.(이용호 기자)

사진/ 초라한 살림집 풍경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스산한 오늘을 말해준다.

사진/ 7월18∼23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린 ‘10인의 눈’전을 일본 관람객들이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사진/ 미-일 혼혈인 존 마쓰모토는 역시 혼혈인 음악가 히가 바이론의 ‘오키나와 정체성 찾기’를 렌즈에 담았다.

사진/ 매향리 주민들의 폭격장 폐쇄 요구 시위 장면. 국수용씨 작품(위). 빗속 시위장에 놓인 미선·효순의 영정을 노순택씨가 담았다(아래).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