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손길에 신음하는 사람들에 관한 보고서… 자원을 삼키고 문화를 짓밟는 정복자들에 고함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우랄산맥과 태평양 사이의 땅 시베리아는 지구 전체 육지의 12분의 1을 차지하는 광활한 땅이다. 비행기로 시베리아의 한쪽 끝에서 끝으로 가는 데 7시간이 걸리고, 겨울 평균 기온이 영하 30~40도로 자신이 내쉰 숨결이 바로 얼음이 되어 떨어지는 혹독한 땅이기도 하다. 시베리아 오지를 찾아다니며 측량을 하는 사람들은 요즘도 레닌이나 2차대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부끄럼 많은 원주민들과 만나곤 한다. 최근에 이 땅은 석유를 비롯해 없는 게 없는 엄청난 천연자원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유럽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시베리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잔인한 유배지와 동의어다. 그러니 이곳 사람들은 러시아인 유배자들의 후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16세기 말 유럽인(러시아인)들이 침략해오기 수천년 전부터 이곳에는 타타르족, 한티족, 부랴트족, 투바족, 추치크족 등 수많은 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이제 이들은 자신의 말과 문화를 잃고 쇠락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100만명이 넘는 원주민들이 살아 남아 있다.
원주민의 목소리로 시베리아사 재구성
영국 출신 러시아사 연구자인 안나 레이드는 <샤먼의 코트>(미다스북스 펴냄)에서 시베리아의 곳곳을 찾아가는 탐사 여행길에서 만난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시베리아인들의 문화와 역사를 펼쳐보인다. 그는 전래민담에서 KGB 보고서에 이르는 광대한 문헌을 살피고 승려와 샤먼, 순록 목자와 민속지학자, 수용소의 생존자와 공산단 기관원, 원주민 운동가까지 폭넓게 인터뷰했다. 그 방대한 자료들을 토대로 러시아의 영토확장 과정에서 파괴된 지난 400년 동안의 그들의 문화와 고통스러웠던 역사를 재구성해 들려주며 시베리아인들의 ‘존재’를 되돌려놓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시베리아의 역사와 현재를 ‘원주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넓고 깊게 이야기하는 드문 기록이 됐다. <샤먼의 코트>에는 현재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주요’ 9개 민족이 등장한다. 16세기 말 러시아에 의해 나라를 잃은 타타르족에서부터 한티, 부랴트, 사하, 아이누, 니브히, 우일타, 추크티족, 그리고 1944년에 소비에트연방(소련)에 편입된 투바족이다. 민족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사할린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은 자신들의 아기와 새끼곰을 한데 뉘어놓고 젖을 먹인다고 한다. 아이누족 가족과 함께 식사를 했던 크루슈테른은 “나는 아이누족이야말로 지금까지 사귀어온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훌륭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체호프는 사할린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가혹한 생활여건을 조사한 보고서 <사할린섬>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곳은 세계 메이저 회사들의 석유 시추 사업으로 폐허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은이는 특히 원주민들 특유의 샤머니즘이 어떻게 보존돼 있는가가 이들 민족의 현실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강조한다. 시베리아인들은 세상 모든 만물이 살아 있다고 믿는다. 시베리아인들의 세계관에서는 램프가 걸어다니고 집들은 각자의 목소리로 떠든다. 아메리카 원주민처럼 이들도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공존하고 있다. 오늘날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은 모호하고 별 연관성 없는 신앙과 제식이 뒤섞인 잡동사니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여전히 원주민들의 생활 속에 살아 남아 있다. 러시아인들은 이들을 어떻게 만나고 대했을까? 유럽, 곧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은 16세기 후반 시작됐다. 1585년 러시아 군대의 지휘관 예르마크가 타타르인들의 칸 제국을 침략했고 제국은 곧 멸망했다. 정복시대 초기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에서 얻으려 한 것은 검은담비의 모피였는데, 그것이 당시 유럽의 최후진국이던 러시아 경제를 살찌웠다. 러시아인들은 시베리아를 정복하면서 대륙을 획득했지만, 이 짭짤한 소득원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시베리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이었고 고리키의 ‘죽음과 사슬의 땅’이었으며,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였다. “우리는 유럽에선 식객이고 노예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시아에서는 주인님이다. 우리는 유럽에서는 타타르인이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우리도 유럽인이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어느 글에선가 한 이 말은 러시아인이 갖고 있는 어떤 이중성을 오롯이 보여준다. 살아있는 만물에 대한 경외를 배우라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의 문화는 침탈되고 약화되었다. 러시아가 이들에게 가져다준 것들이 너무나 가혹했기 때문이다. 담비를 가져간 대신 러시아인들은 보드카와 매독과 인플루엔자 그리고 천연두를 선사했다. 1650년대에 예니세이강을 건넌 천연두에 의해 북쪽에 거주하는 에벤키족과 사하족의 80%, 그리고 유카기르족의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차르의 치하에서 원주민들은 노예처럼 강제노동을 해야했으며, 스탈린 치하에서는 총살당하거나 죽음의 노동수용소 굴라크로 보내졌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발간된 대부분의 역사책에는 이러한 과정이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책은 과거뿐 아니라 원주민들의 현실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가 새로이 탄생한 오늘날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소련인도 러시아인도 될 수 없는 삶.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다국적 석유 채취업자를 비롯해 강대국들의 탐욕스런 눈길이 시베리아로 쏠리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원주민 민권운동이 불길처럼 치솟았지만, 지금은 러시아 전체의 빈곤 문제로 인해 러시아 대중의 관심권에서 멀어진 상태다. 그러나 조만간 그들은 자신들의 영토에 대한 권리와 정치적 권리, 문화와 언어에 대한 존중과 지원을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지은이는 “인류 문화의 원시적 보고이자 광활한 기회의 땅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되찾아야 할 자리를 찾아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영국 출신 러시아사 연구자인 안나 레이드는 <샤먼의 코트>(미다스북스 펴냄)에서 시베리아의 곳곳을 찾아가는 탐사 여행길에서 만난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시베리아인들의 문화와 역사를 펼쳐보인다. 그는 전래민담에서 KGB 보고서에 이르는 광대한 문헌을 살피고 승려와 샤먼, 순록 목자와 민속지학자, 수용소의 생존자와 공산단 기관원, 원주민 운동가까지 폭넓게 인터뷰했다. 그 방대한 자료들을 토대로 러시아의 영토확장 과정에서 파괴된 지난 400년 동안의 그들의 문화와 고통스러웠던 역사를 재구성해 들려주며 시베리아인들의 ‘존재’를 되돌려놓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시베리아의 역사와 현재를 ‘원주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넓고 깊게 이야기하는 드문 기록이 됐다. <샤먼의 코트>에는 현재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주요’ 9개 민족이 등장한다. 16세기 말 러시아에 의해 나라를 잃은 타타르족에서부터 한티, 부랴트, 사하, 아이누, 니브히, 우일타, 추크티족, 그리고 1944년에 소비에트연방(소련)에 편입된 투바족이다. 민족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사할린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은 자신들의 아기와 새끼곰을 한데 뉘어놓고 젖을 먹인다고 한다. 아이누족 가족과 함께 식사를 했던 크루슈테른은 “나는 아이누족이야말로 지금까지 사귀어온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훌륭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체호프는 사할린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가혹한 생활여건을 조사한 보고서 <사할린섬>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곳은 세계 메이저 회사들의 석유 시추 사업으로 폐허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은이는 특히 원주민들 특유의 샤머니즘이 어떻게 보존돼 있는가가 이들 민족의 현실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강조한다. 시베리아인들은 세상 모든 만물이 살아 있다고 믿는다. 시베리아인들의 세계관에서는 램프가 걸어다니고 집들은 각자의 목소리로 떠든다. 아메리카 원주민처럼 이들도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공존하고 있다. 오늘날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은 모호하고 별 연관성 없는 신앙과 제식이 뒤섞인 잡동사니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여전히 원주민들의 생활 속에 살아 남아 있다. 러시아인들은 이들을 어떻게 만나고 대했을까? 유럽, 곧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은 16세기 후반 시작됐다. 1585년 러시아 군대의 지휘관 예르마크가 타타르인들의 칸 제국을 침략했고 제국은 곧 멸망했다. 정복시대 초기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에서 얻으려 한 것은 검은담비의 모피였는데, 그것이 당시 유럽의 최후진국이던 러시아 경제를 살찌웠다. 러시아인들은 시베리아를 정복하면서 대륙을 획득했지만, 이 짭짤한 소득원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시베리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이었고 고리키의 ‘죽음과 사슬의 땅’이었으며,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였다. “우리는 유럽에선 식객이고 노예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시아에서는 주인님이다. 우리는 유럽에서는 타타르인이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우리도 유럽인이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어느 글에선가 한 이 말은 러시아인이 갖고 있는 어떤 이중성을 오롯이 보여준다. 살아있는 만물에 대한 경외를 배우라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의 문화는 침탈되고 약화되었다. 러시아가 이들에게 가져다준 것들이 너무나 가혹했기 때문이다. 담비를 가져간 대신 러시아인들은 보드카와 매독과 인플루엔자 그리고 천연두를 선사했다. 1650년대에 예니세이강을 건넌 천연두에 의해 북쪽에 거주하는 에벤키족과 사하족의 80%, 그리고 유카기르족의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차르의 치하에서 원주민들은 노예처럼 강제노동을 해야했으며, 스탈린 치하에서는 총살당하거나 죽음의 노동수용소 굴라크로 보내졌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발간된 대부분의 역사책에는 이러한 과정이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책은 과거뿐 아니라 원주민들의 현실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가 새로이 탄생한 오늘날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소련인도 러시아인도 될 수 없는 삶.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다국적 석유 채취업자를 비롯해 강대국들의 탐욕스런 눈길이 시베리아로 쏠리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원주민 민권운동이 불길처럼 치솟았지만, 지금은 러시아 전체의 빈곤 문제로 인해 러시아 대중의 관심권에서 멀어진 상태다. 그러나 조만간 그들은 자신들의 영토에 대한 권리와 정치적 권리, 문화와 언어에 대한 존중과 지원을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지은이는 “인류 문화의 원시적 보고이자 광활한 기회의 땅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되찾아야 할 자리를 찾아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