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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들을 출발선에 서게 하라/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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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8-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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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와 함께 하는 예컨대 | 지방대생 응시 제한은 차별인가]

김보경/ 서울 경복여고 3학년

우리나라 역사에 고대 사회로 분류되는 ‘신라’라는 나라가 있었다. 신라에는 ‘골품제도’라는 신분제도가 있었는데, 능력 중심이 아닌 철저한 혈연 중심의 폐쇄적 신분제도였다. 성골, 진골, 6두품들을 귀족이라 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건 성골과 진골 귀족들이었다. 그러한 골품제도의 폐쇄적 성격 때문에 6두품 지식인들은 상대적으로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능력이 아닌 신분을 중요시하는 ‘골품제도’란 걸림돌 때문에 6두품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골품제도의 모순을 알고 능력 중심의 사회가 될 것을 건의했지만 기존의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성골, 진골 귀족들에게 그것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다. 6두품 지식인들은 왕권과 결탁하다가 신라 후기에는 반신라적인 태도를 취하고 호족과 함께 ‘고려’를 건국하게 된다.

일러스트레이션 | 장광석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진 이러한 골품제도의 폐쇄적 성격이 오늘날의 지방대생 응시 제한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방대생들은 6두품이고, 서울에 위치한 대학교의 학생, 혹은 더 나아가 이른바 명문대생들이 성골, 진골 귀족들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능력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거의 골품제도와 오늘날의 지방대생 응시제한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신라시대에는 골품제도가 능력 중심의 사회를 가로 막았다면, 오늘날에는 지방대생은 우수한 인재가 아닐 것이란 잘못된 고정관념이 능력 중심의 사회를 가로막고 있다. 명문대생들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걸 말하려는 건 아니다. 땅이 좁고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수입해야 하는 반도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오직 인적 자원만이 상대적으로 풍부할 뿐이다. 그런 대한민국의 수입원은 일부 기업,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대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대기업의 수입원은 우수 인재의 육성을 통한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 나름의 규칙과 소신으로 훌륭한 인재를 뽑는다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말은 없다. 그렇게 발탁된 우수한 인재들이 미래의 대한민국을 빛낼 것이란 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들 나름의 규칙과 소신으로 정했다는 ‘지방대생 응시제한’은 처음부터 그들을 100m 달리기 출발선에 서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능력을 평가하기도 전에 배제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방대생들에 대한 이러한 차별의 뿌리를, 중·고등학교까지 거슬러올라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차별 의식이 우리 사회의 교육제도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사회의 엘리트가 되기 위하여 공부하는 아이들에겐 잘못된 사고방식이 자리해 있다. 우리는 중·고등학생일 때부터 이미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을 차별할 수 있다고 은연중에라도 생각하도록 교육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교육된 우수한 인재들이 대기업에 필요한 건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방대생들에게 응시제한의 핸디캡을 적용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본다. 지방대생들은 학교의 이름과 그 학교가 위치한 지역이 지방이라는 이유 때문에 제약과 차별을 받는다. 그들도 대학을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을 수 있으며 나름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데도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명문대란 개념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들었다. 지역별로 묶어, 학생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의 대학에 다니는 것이다. 그런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학벌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우수한 인재 양성에 더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임은 뻔한 일이다.


나라의 경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욱 힘들어졌고 제2의 외환위기가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분위기 가운데, 취업문은 더욱더 열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 대기업은 지방대생들에게 응시제한이라는 거름장치까지 사용하여 취업문을 제한하고 있다. 우수한 인적 자원은 서울에 위치한 대학이나 명문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 자신의 미래를 위해 이 순간도 열심히 자신을 만들어가는 학생들에게 있다. 지방대생에게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일은 민주주의 국가를 향해 나아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위배되는 행위가 아닐까? 그럼에도 기업들은 “지방대생들에 대한 응시제한은 효율적으로 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다. 기업들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은 무엇인가? 국내를 넘어서 국외에서도 인정받는 일류기업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일류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류 경영자(CEO)의 역할도 중요하다. 하지만 일류기업을 만드는 것은 한명의 일류 경영자가 아니라 다수의 일류 인재들이다. 그 일류 인재들은 학벌이 아닌 능력을 중심으로 뽑힌 사람들이어야 한다.

연일 신문에선 능력 중심의 우수한 사원을 뽑는다는 기업광고가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일류기업이 되기를 꿈꾼다면서, 그 길에 동참할 인재를 찾는다면서 말이다. 기업들은 그런 광고를 내기 전에 자신들이 현대의 ‘골품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기업들은 지방대생들이 그동안 쌓아온 값진 지식과 정보를 기업, 나아가서는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신라는 자신들이 만든 골품제도에 의해 몰락해갔다. 기업들은 신라의 몰락을 반면교사 삼아, 능력 중심의 우수인재들을 뽑기 위해 지방대생 응시제한이 잘못된 것임을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칭찬과 아쉬움]

오늘날 대한민국의 사회구성원들은 거의 모두 만 18살에 신분이 결정된다. 어느 대학에 입학했느냐에 따라 자기의 위치를 스스로 규정할 정도이다. 4년 동안 등록금을 내면 대학졸업장을 받을 수 있고 그 졸업장은 죽는 날까지 유효하다.

이를테면, 18살의 명문대생은 죽는 날까지 명문대생이고, 18살의 지방대생은 죽는 날까지 지방대생인 것이다. 이런 사회는 현대판 신분제 사회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경복여고의 김보경 학생이 신라의 6두품 이야기를 끌어들인 점은 매력적이다. 다만 6두품 이야기를 너무 길게 늘어놓음으로써 학력차별의 현실과 연결시키는 데 한계를 드러냈고 글의 긴장감도 놓쳤다. 또 한국의 사회구성원들이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가족과 학교에서 강요받는 ‘일등주의’에 대한 지적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가정에서부터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사회에서 학력·학벌 차별을 공기처럼 당연히 여기게 된 현실에 대한 지적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학력·학벌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도 사회적 연대가 필요한 것인데, 그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다는 것이다. 학력 차별이 없는 능력주의 사회에서도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문에선 능력 중심의 우수한 인재를 뽑는다는 기업광고를 하면서 지방대생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기업의 이중성을 지적한 것에 비추어, 그러한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오직 기업의 깨달음에서 찾는, 나약한 결론에 머무르고 있다.

학력·학벌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온 뒤 지난 김대중 정권부터 지금까지 정부와 기업들이 내놓은 대책이 하나도 지켜진 것이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초 여러 차례 공식 석상에서 학력 차별 철폐(또는 완화)를 약속했으나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난 것이 거의 없었으며, 삼성 같은 기업은 신입사원 공채에서 학력기준을 대졸뿐 아니라 고졸자에게도 열어놓겠다고 했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나, 실제로 고졸 사원을 뽑은 적도 거의 없고, 이제는 그런 말조차 흐지부지되었다. 김보경 학생이 지적한 대로 더욱더 어려워지는 경쟁사회에서 사회적 연대는커녕 배제를 당연시하는 사회에 대한 통렬한 지적과 함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과 제도적 장치에 대한 고민이 담겼어야 하지 않을까?

다른 학생들의 글도 김보경 학생의 글이 지닌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오히려 기업과 효율성의 이름을 빌려 지방대생의 취업제한을 옹호하는 논지를 편 글도 있었다. 물론 논술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식을 뛰어넘는 결론에 이르려면 평범함을 넘어서는 논지와 설득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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