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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4차원 시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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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8-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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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이른바 고대 원자론을 내놓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어떤 물체를 계속 쪼개 가면 마지막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궁극의 단위체인 원자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쪼갤 수 없다” 함은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극히 단단하기 때문이란 뜻이 아니다. 만일 쪼개진다고 가정하면 물질적 실체가 구성될 수 없다는 논리적 모순이 나오기 때문에 그렇다는 뜻이다. 이를 특히 고대 원자론으로 부르는 이유는 아무런 실험적 증거가 없는 가운데 순수한 사변 논리에서 출발하여 원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여러 과학적 증거가 뒷받침된 현대 원자론은 그로부터 2200여년이 흐른 뒤 영국의 화학자 돌턴 등에 의하여 새롭게 탄생했다.

일러스트레이션 | 유은주
이처럼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가장 기본적인 단위체의 모임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을 환원(還元)주의라고 부른다. 모든 것을 어떤 식으로든 낱낱이 분석해 가면 각각의 단위체(元)로 돌아간다(還)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대 인도인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하여 환원주의적인 사고를 흥미롭게 적용시켰다. 그들은 특유의 허무주의에 따라 만유의 근원을 ‘무’로 생각했다. 그리고 공간과 관련해서는 ‘크기’가 무, 즉 크기가 없는 ‘점’이란 존재가 바로 그 근원이라고 여겼다.

점이 공간을 형성한다는 사고에서는 운동의 관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먼저 점이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선이 형성된다. 이 선 안에서의 각 점은 선을 따라 앞뒤로 운동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선이 선 자체의 방향을 벗어나서 움직이면 면이 만들어진다. 곧 기존의 차원을 벗어나서 움직이면 새로운 차원이 생겨 나온다. 이에 따라 면 또한 면 자체의 방향을 벗어나서 움직이면 입체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하여 완성된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3차원 공간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과연 우리 세계는 3차원뿐인가?”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그러나 나무처럼 땅에 붙어사는 존재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모습이 변해간다. 철학자 칸트는 80평생 동안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를 한번도 떠난 적이 없지만 결국 나이가 들어서 죽어갔다. 다시 말해서 언뜻 보기에 3차원밖에 없는 듯한 우리 세계는 ‘시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하염없는 운동을 계속한다. 이 현상은 얕은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상황에 비유된다. 시냇물 바닥이라는 공간상의 위치는 변치 않더라도 시냇물이라는 시간은 계속 흐른다. 따라서 이 점까지 함께 고려하여 우주를 보통 ‘4차원 시공간’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우리 우주는 ‘4차원 시냇물’인 셈이다.

얼마 전까지 우주 만물의 궁극적 설명으로는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이 가장 유력했다. 그런데 최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엠이론’(M-theory)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10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이 합쳐진 11차원 시공간으로 되어 있다. 다만 그 중 7개의 공간 차원이 극미의 고리 형태로 오그라들어 실제로 우리가 감지하는 것은 4차원 시공간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득히 먼 훗날 우주가 다시 수축하면 그나마 펼쳐진 3차원도 다시 오그라들 것이다. 과연 4차원 시냇물은 그냥 흘러가고 말 것인가 아니면 다시 순환되어 돌아올 것인가? 아쉽게도 우리의 짧은 인생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고중숙 |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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