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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댕기머리의 ‘커리어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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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8-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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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의 굴레 벗어난 조선시대 전문직 여성들… <허준>에서 <다모> <대장금>으로 이어지는 활약상

드라마 <다모>의 ‘조선 여형사’ 채옥(하지원)은 지금까지의 사극 여주인공들 가운데 가장 격렬하게 싸우고 날아오른다.

남자 고수들과의 대결에서도 뒤지지 않는 무공을 갖춘 좌포청 다모로 살인사건 수사에 나서고 위조엽전 수사를 위해 염탐에 나섰다 도적 무리와 결투를 벌이고, 혁명을 꿈꾸는 ‘도적’들의 근거지에 잠입하는 그는 확실히 텔레비전 속 조선 역사에서는 새로운 여자다. ‘다모 폐인’이라는 말까지 등장시킬 만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 드라마의 매력 중 하나는 여성과 신분이라는 두 ‘굴레’ 때문에 고통받지만, 사랑과 일 모두에서 경계를 넘어서는 조선시대 여성의 새로운 모습이다. 물론 채옥은 ‘다모’에 대한 단편적인 역사 기록을 토대로 현대 여성상을 덧붙여 만든 포스트모던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사극이 우리에게 보여준 조선여자들, 즉 현모양처 정실부인이거나 권력을 쥔 남자들 사이에서 얼굴과 몸과 질투와 술수를 무기로 악을 쓰는 후궁 또는 첩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매력을 갖췄다.

조선시대 여성은 궁중암투 밖에도 있었다


돌아보면 <허준>(2000)의 의녀 예진(황수정)은 실력 있는 ‘조선시대 전문직 여성’(허준의 다소곳한 보조 역할이긴 하지만)의 삶을 보여주는 첫 시도였다. 이제 ‘조선 여형사’라는 부제를 단 <다모>의 채옥이 예진 아씨보다 한발 더 나아간 활약을 보여준다면, 9월 말부터 방송될 50부작 드라마 <대장금>(大長今)은 아예 장금(長今)이라는 하층민 여성이 자신의 능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성공담 자체다. 이영애가 맡은 장금은 역사서에 기록된 중종 시대(1506~1544)의 실존인물. <대장금>은 하층민 출신으로 어린 시절 나인으로 궁중에 들어간 장금이 연산군~중종 시기의 정치적 격변과 궁중의 암투 속에서 자기의 전문 영역에서 실력을 쌓아 궁중 최고의 요리사가 되고, 다시 의술을 배워 임금을 직접 진료하는 주치의가 되기까지 ‘조선시대 전문직 여성의 성공담’에 초점을 맞춘다. 사극 속 여성사가 다시 씌여지고 있는 것이다.

사진/ 2000년 방영된 <허준>의 의녀 예진아씨(황수정)는 조선시대 전문직 여성의 삶을 처음으로 보여줬다.
<허준>에 이어 <다모>와 <대장금>을 기획한 MBC의 조중현 책임 프로듀서는 “시청자들은 이제 왕과 왕비, 후궁과 권신 중심의 권력쟁탈과 암투만을 보여주는 사극에는 싫증을 느끼고, 재능 있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에 호응한다. 조선시대 직업을 가진 중·하층 여성들의 삶은 새롭고 독특한 드라마를 위한 소재이기도 하지만, 봉건시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감춰진 활약상을 보여주자는 의도도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의녀’의 일상에 대한 관심은 <허준>과 <대장금>의 연출자인 이병훈 PD로부터 시작됐다. 의녀 예진은 원작 소설인 <동의보감>에서는 잠깐 언급되지만, 이 PD는 <허준>에서 예진을 비중 있는 역으로 키우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면서 나이팅게일에 대한 연구는 많아도 의녀에 대한 연구나 자료는 별로 없는 데 아쉬움을 느꼈다. 그는 <대장금>에서 중종에게 직접 침을 놓는 등 대단한 찬사를 받았던 장금의 삶을 통해 궁녀 중에서도 무수리, 나인 등 하급 궁녀들의 생활과 궁중요리, 의녀 제도의 운용, 의녀의 역할, 약초학, 부인병, 일반침구 등을 자세히 보여주려 한다.

이처럼 새롭게 사극의 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조선시대 전문직 여성들’은 실제로 어떻게 살았을까? 남녀유별이 엄격한 조선 중기 이후 이상적인 양가집 여성은 집 안의 현모양처였다. 집 밖으로 나와 고유의 영역과 기술을 가지고 살았던 여성들은 의녀와 다모, 궁녀, 기녀, 무녀 정도였다.

경제활동 주역에서 갈수록 입지 좁아져

사진/ 올 가을 방영될 <대장금>의 주인공 이영애씨가 궁중 요리를 배우는 장면.
조선 경제사를 연구하며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에 ‘전문직 여성들의 희망과 좌절’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던 최은정 서울대 규장각 연구원은 “고려 말, 조선 초까지는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상업활동 등 경제활동에 참여했지만, 조선 중기 이후에는 의녀·궁녀·다모·기녀 등 소수의 직업만이 남았다. 그 중에는 자기 영역에서 뛰어난 활약을 한 여성들이 있었지만 남성 중심 역사 서술 때문에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한다. 최 연구원은 또 “그들은 특수한 기능을 가진 여성이었지만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았다. 기술직에 대한 천시풍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천한 신분 출신이었고, 남녀유별을 강조한 사회에서 남자들과 대면할 기회가 많아 본래의 임무에서 벗어나 ‘성적 노리개’로 취급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 중에서 다모는 원래 관아에 소속되어 차 끓이는 일을 하던 신분이 매우 낮은 관비다. 유교국가인 조선은 남녀유별 원칙이 엄격해 안채를 수색하거나 여성 용의자 및 죄수를 다룰 때 다모나 의녀를 이용했다. 특히 포도청의 다모는 남자들이 할 수 없는 수사를 맡거나 수사 보조요원으로 활약했다. <랑산문고>(朗山文稿)의 ‘다모전’에는 조선 영조 시대 한성부의 다모 김조이(金召史)의 이야기가 나온다. 김조이는 1832년 기근으로 금주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밀주사건을 조사하던 중 위험을 무릅쓰고 생활이 어려운 할머니의 죄를 덮어주고 인정을 베푼다. 또 포상금을 타기 위해 형수가 술 담근 것을 고발한 양반 사내의 뺨을 치면서 “양반이란 자가 밀주를 빚었다고 형수를 밀고하여 포상금이나 받아먹으려 하느냐”며 호통을 치고 자신이 받은 포상금을 불쌍한 할머니에게 가져다주는 당당한 면모를 보여준다.

<허준>과 <대장금>에 등장하는 의녀는 여의(女醫)라고도 불리며 남성의원에게 진료받기를 기피하던 여성들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두었던 여자의원이다. 의녀제도가 처음 생긴 것은 태종 때였다. 태종 6년(1406년) 3월 제생원(濟生院) 허도는 “부인이 병이 있는데 남자의원으로 하여금 진맥하여 치료하게 하면 혹 부끄러움을 머금고 나와서 그 병을 보이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여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라며 의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나이 어린 영리한 여자 노비 중에서 의녀를 뽑아 의학서적을 읽을 수 있도록 한자를 익히게 했고 진맥이나 침술 등 의술을 가르쳤다. <경국대전>을 보면, 성적이 우수한 의녀에게는 석달분의 급료를 지급하고 성적이 나쁜 의녀는 다모로 강등시키는 상벌 규정이 나와 있다.

만방에 이름 떨친 의녀들도 적지 않아

의녀가 진맥 등 보조적 역할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남자의원이 직접 환부를 만질 수 없었기 때문에 종기나 치통 등을 치료하고, 침을 놓았으며 출산을 도왔다. 뛰어난 실력으로 역사서에 이름을 남긴 의녀들도 있다. 성조 때의 제주도 의녀 장덕은 치통과 부스럼을 잘 치료하여 이름을 날렸다고 하며, 선조 때의 의녀 애종은 의술이 뛰어났으나 그가 진찰한 왕비가 사망하자 책임을 물어 내의녀 명단에서 삭제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의녀들은 또 궁중이나 사대부 집안 여성에 관한 범죄를 수사하고 죄인을 체포하거나, 여성이 낙태했는가를 조사하고 여성 죄인에게 사약을 내릴 때도 파견됐다. 그러나 학식이 있고 시도 외울 수 있어 기녀처럼 궁중연회에 동원되었고 약방기생이라고도 불렸다.

궁중 사극에서 많이 등장했으나, 정작 일상에 대해서는 거의 조명 받지 못한 궁녀나 기생 역시 중요한 조선시대 여성의 직업이었다.

궁녀에 대해서는 기록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데 1960~70년대까지 생존한 궁녀들의 구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궁녀들은 어려서 궁중에 들어와 기술을 체계적으로 익혔기 때문에 자기 분야의 전문가들이었으며, 현재까지 전해진 궁중요리는 상궁들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다. 궁녀는 정5품에서 종9품까지 품계를 가진 상궁, 나인 등과 이 밑에서 일하는 무수리, 각심이, 방자 등으로 나뉜다. 상궁도 역할에 따라 지위가 많이 달랐는데 왕의 침실을 담당하는 지밀(至密)은 왕과 가까이 할 수 있었으므로 가장 지위가 높았고, 다음으로 의생활과 관련된 침방과 수방이었으며, 식사를 담당하는 소주방, 음료 및 과자 등을 만드는 ‘생과방’(生果房) 빨래와 옷의 뒷손질을 맡은 ‘세답방’(洗踏房)은 그보다 지위가 낮았다. 궁녀들은 아기나인이 한달에 백미 4두를 급료로 받았으며 매년 명주·무명·베를 각각 한필씩 지급받고, 명절이나 대궐의 경사 뒤에 하사품도 받았다.

기생·기녀는 의약·가무 익힌 기능직 여성

사진/ <다모>의 여주인공 채옥(하지원)은 남자 형사 못지 않은 수사력을 갖췄다.
기생·기녀라고 하면 흔히 ‘화류계’의 여성들을 떠올리지만 본래는 의약이나 침선 기술 또는 가무를 익혀서 나라에서 필요할 때 봉사하던 기능직 여성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하지만 기녀는 천인 신분인데다 합법적으로 남성들의 접근이 허용된 젊고 미모를 갖춘 여성이었으므로 점차 남성들의 잔치에서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게 됐다. 기녀는 장학원 등에 소속돼 철저한 교육을 받으며 특기를 닦았고 전통음악과 춤을 오늘날까지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은정 규장각 연구원은 “이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자신의 선택이 아닌 국가의 필요에 따라 일하기는 했지만, 여성의 활동이 제약받던 시기에 우리나라 최상층 문화인 궁중의 음식과 복식을 개발하고 발전시킨 궁녀, 우리나라 전통음악과 춤의 보존자로서의 기녀, 여의사 또는 간호사로서 의녀들의 역할은 새롭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텔레비전 사극 속 새로운 여성들의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참고자료: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배용 외 지음, 청년사, 1999
<나는 당당하게 살겠다> 김건우 편역, 문자향, 2003
<한국생활사박물관 9> 한국생활사박물관편찬위원회, 사계절, 2003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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