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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진짜’ 인상파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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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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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마술사’들 한데 모은 오르세미술관 한국전… 사진으로만 보던 그 그림들을 진품으로

인상파는 <벤허>와 비슷하다?

지금은 건물을 헐고 다시 짓고 있는 서울 대한극장이 예전에 국내 유일의 70mm 대형극장으로 이름을 날릴 때 마땅한 레퍼토리가 없다 싶으면 간판을 올린 영화가 바로 <벤허>였다. 그리고 이 영화는 틀 때마다 대박은 아니어도 최소한 흥행에 실패하는 법은 없었던 ‘믿는 도끼’였다. 인상파 전시회도 그렇다. 기본적인 인기가 보장돼 있기 때문에 ‘기본’은 하는 게 바로 인상파 전시회다. 미술분야에서 인상파만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기있는 유파는 없기 때문에 적어도 관객 동원은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대중에게 다가선 예술

(사진/르누아르 <피아노치는 소녀들>(1892년) (맨위). 고흐 <생 레미의 생 폴 정신병원>(1889년). )

이 인상파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오는 10월26일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상파 전시회가 열린다. 내년 2월27일까지 서울 덕수궁 안 석조전, 국립현대물관 분관에서 열리는 ‘오르세미술관 한국전-인상파와 근대미술’전(매주 월요일 휴관, 02-2188-6039, 02-501-9760)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적잖게 인상파에 대한 전시회가 열렸지만 이번 인상파전은 단연 그 규모나 작품 면면에서 최대규모다. 미술문외한들도 이름은 아는 고흐며 르누아르 등 너무나 친숙한, 그러나 진품으론 볼 수 없었던 그림들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1년에 미술관을 한번 갈 정도의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모처럼 찾아갈 만한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는 인상파 그림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에 소장된 그림을 국내에 들여오는 것이다. 인상파라는 주제로 인상파와 비슷한 시기의 다른 유파들의 작품 등 유화 35점과 역시 인상파 직전 발명된 당시 사진 20여점까지 다양한 작품 총 69점을 선보인다.

특히 눈길을 끄는 인상파 대가들의 주요작으로는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과 <뒤에서 본 누워 있는 나신>, 드가의 <발레연습>, 세잔의 <목가> <마네의 볼로뉴항의 달빛>, 모네의 <생 라자르 기차역>, 로트레크의 <사창가의 여인>, 르동의 <이집트로의 피신> 등이 있다. 후기인상파, 또는 신인상파로 구분되며 넓은 의미의 인상파로 불리는 고흐의 <몽마르트의 술집> <생 레미의 생폴병원>과 고갱의 <자화상> <브르타뉴 여인들> 등도 함께 들어온다. 이번 전시는 또 인상파뿐만이 아니라 인상파와 거의 같은 시대에 등장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근대미술의 장을 열었던 연관유파의 그림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자연주의의 거장 밀레의 그 유명한 <이삭줍기>를 비롯해 사실주의의 대명사 쿠르베의 <샘> 등도 인상파가 등장하던 지난 세기 미술의 대표작들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화가, 특히 외국 화가를 꼽으라고 하면 피카소와 달리 등을 빼면 거의 대부분은 인상파 화가들을 댈 정도로 인상파의 인기는 미술분야 전 장르, 전 유파를 통틀어 단연 최고다. 그리고 이런 인상파의 인기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세계 그림시장에서도 인상파의 그림은 단연 최고가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인상파는 이처럼 지역과 연령, 성별을 초월해 사랑을 받는 것일까?

예술적 중요성을 떠나 인상파만큼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은 미술사조는 일찍이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인상파가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미술을 대중의 것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인상파 이전의 서양미술은 거의 대부분 왕족과 소수 귀족의 전유물이자 기록의 매체였다. 왕과 귀족의 초상, 역사적 사실과 종교적 신화를 담아내던 미술이 인상파가 등장하면서부터 대중의 삶과 현실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신화나 예수의 부활, 그리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대신 인상파는 중산층들의 소풍 모습, 한갓진 휴가 모습, 서민들의 밤거리와 도시 풍경을 담아내면서 소재의 의식혁명을 일으켰다.

진품의 아우라를 느껴보라

(사진/드가 <발레연습>(1874년).)
또한 인상파의 본질인 ‘빛’의 위력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기존 그림들이 철칙처럼 여기는 채색 법칙과 묘사 법칙을 훌쩍 뛰어넘어 인상파는 밝고 화사한 색깔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결국 인상파의 인기는 이런 대중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적이지만 너무 무거운 느낌의 고전회화와 이해하기가 어려운 현대미술 사이에서 인상파는 그 앞뒤 사조의 특징인 사실성과 표현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고전회화보다는 훨씬 산뜻한 느낌에 살가운 소재,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사실적 묘사에서 벗어나 화가의 개성이 현란하게 드러나는 표현, 그러면서 현대미술처럼 작품을 공부하듯 이해할 필요없이 쉽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인상파의 힘이다.

이 인상파를 촉발한 것은 유럽의 지구 반대편인 일본의 그림이었다. 일본의 전통회화 ‘우키요에’가 서양으로 넘어가면서 인상파 화가들에게 색과 표현에서 새로운 영감을 줬고, 실제 인상파 화가들은 작품 속에 일본 우키요에를 그대로 소재로 등장시키기도 했을 만큼 이 동양의 그림에 빠져들었다. 우리로선 우리와 늘 비교하게 마련인 일본이 세계미술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 아직도 세계 문화의 변방인 우리의 현실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씁쓸한 대목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번 전시회는 너무나 잘 아는 그림들을 진품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인들 입장에선 흔치 않은 기회이다. 평소 교과서나 엽서, 달력에서 보던 그림들을 진품으로 만나는 것은 이번 전시회의 주요한 관람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선 볼 사람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 만나는 것이 천지 차이이듯 그림에서 진품의 아우라는 도록이나 인쇄물로 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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