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우아한 싱글이 즐길 만한 운동을 찾아서… 폼나는 유니폼에 경건한 동작의 쿨한 매력
이 도시의 여자들은 이별 뒤에 립스틱을 바꾸고 머리를 자르고 값비싼 속옷을 산다. 당연하지 않나? 나는 나이가 많든 적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여자라면 누구나 어떤 상실의 순간에도 절대로 ‘폐업’을 선언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여자들은 이별 뒤에 확실히 돈 쓸 곳이 많아진다. 이제는 실연이라는 괴질이 돌고 있는지 내 옆자리 후배는 얼마 전 차를 샀고, 나는 또다른 후배랑 어제 검도장에 가서 14만원이라는 거금을 결제했다. 그런데 결국 검도로 낙찰을 보고 광화문에 있는 한 도장에 가서 원서에 도장을 찍기까지의 과정이 좀 별나다. 왜냐하면 나와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여자들은 매사에 강박적으로 ‘시크해야 한다’는 직업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날 남자나 남자와의 데이트 대신 몰두할 수 있는 운동거리을 찾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후배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 요가할까요?” 요즘 가장 트렌디한 스포츠가 있다면 역시 요가다. 몇년 전부터 오리엔탈리즘에 눈먼 할리우드 스타들이 홍보대사로 나서면서 요가라는 이 흐물거리는 운동은 가장 인기 있는 ‘신흥 종교’로 급부상했다. “그럴까? 그런데 <싱글즈> 보니까 엄정화랑 장진영이랑 찜질방에서 요가하는 장면은 별로 쿨하지 않던데…. 걔들처럼 요가하면서 ‘급하다고 아무거나 먹지 말자’ 같은 상스러운 얘기하지 말고 우리는 아주 경건하게, 아주 고요하게…, 그러니까 남자 없이도 충만해지는 법을 배우는 거야.” 좋아, 아싸!
아, 그런데 우리가 알아본 회사 근처의 한 요가협회는 좀 ‘구렸다’. 반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영감님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고, 그가 안내해준 수련장 바닥에는 노란 장판이 깔려 있었다. 게다가 연한 청록색의 비닐 매트에는 멀리서도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흘렸을 진한 땀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주 간단하게 요가를 포기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요가를 할 수 있는 시크한 장소를 찾을 수 없었고, 게다가 경험자들에게서 멀쩡한 대한민국 남자들은 아직 요가에 입문하지 않았다는 비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 혼자 충만해지겠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우리는 어느새 남자다운 남자들이 득실거린다는 물좋은 검도장을 검색하고 있었다. 게다가 검도 도복만큼 폼나는 유니폼은 없다. 예를 갖추어 경건한 마음으로 공들여 도복을 입고 죽검을 들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호면이라고 부르는 검도용 마스크다. 아무리 못생긴 남자라도 그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죄다 그럴 듯해보인다. 또한 요가만큼 트렌디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쿨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결국 그날 저녁 대한검도협회 사이트를 통해서 엄선한, 캐나다산 원목이 깔려 있고 천장이 5m나 된다는 사실을 대단한 자랑거리로 내세운 도장에 등록했다. 그날 저녁 나는 취미란에 독서나 음악감상 대신 ‘검도’를 적을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하지만 지난달까지만 해도 내 취미는 살사댄스였다. 3분 뒤면 소멸되는, 질척거리지 않는 짧은 연애라는 점에 한동안 필이 꽂혀 있었지만 살사는 역시 좀 느끼하다. 그래서 쿨하지 않다. 그래서 두달만에 내 취미는 간단하게 검도로 바뀐 것이다. “아, 누가 나를 좀 말려주세요.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랍니다∼.”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사실 ‘나 혼자 충만해지겠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우리는 어느새 남자다운 남자들이 득실거린다는 물좋은 검도장을 검색하고 있었다. 게다가 검도 도복만큼 폼나는 유니폼은 없다. 예를 갖추어 경건한 마음으로 공들여 도복을 입고 죽검을 들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호면이라고 부르는 검도용 마스크다. 아무리 못생긴 남자라도 그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죄다 그럴 듯해보인다. 또한 요가만큼 트렌디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쿨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결국 그날 저녁 대한검도협회 사이트를 통해서 엄선한, 캐나다산 원목이 깔려 있고 천장이 5m나 된다는 사실을 대단한 자랑거리로 내세운 도장에 등록했다. 그날 저녁 나는 취미란에 독서나 음악감상 대신 ‘검도’를 적을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하지만 지난달까지만 해도 내 취미는 살사댄스였다. 3분 뒤면 소멸되는, 질척거리지 않는 짧은 연애라는 점에 한동안 필이 꽂혀 있었지만 살사는 역시 좀 느끼하다. 그래서 쿨하지 않다. 그래서 두달만에 내 취미는 간단하게 검도로 바뀐 것이다. “아, 누가 나를 좀 말려주세요.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랍니다∼.” 김경 |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