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잎클로버
등록 : 2003-08-06 00:00 수정 :
어릴 때부터 ‘네잎 클로버’는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난 뒤로 나는 풀밭에 앉거나 하면 유심히 네잎 클로버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그 흔한 클로버도 모두 잎이 세개만 있지 네잎짜리를 난 단 한번도 찾을 수가 없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나는 책을 뒤지다 네잎 클로버를 찾았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네개씩이나. 막심 고리키의 장편소설 <어머니>라는 노란 책 속에서였다.
나는 왜 그곳에 클로버를 꽂았는가
첫 번째 네잎 클로버는 그 책의 263페이지에 있었다. 클로버가 끼워진 그 페이지엔 이런 문장이 눈에 띄었다. “소피아는 담배꽁초를 버릴 만한 곳이 없는지 두리번거리더니 화분에 담겨 있는 흙에다 결국 비벼 꺼버렸다. ‘그러면 꽃에 별로 안 좋을 텐데!’ 어머니는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177페이지에서 두 번째 클로버를 찾았다. “한번은 바벨이 이고르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이렇게 말을 꺼냈다. ‘안드레이, 가슴앓이를 많이 한 사람들이 농담을 잘한다는 걸 알아요?’ 우크라이나인이 입을 다물고 있다가 두 눈을 찡그리면서 대꾸했다.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전 러시아가 폭소로 망해버렸게….’”
세 번째로 네잎 클로버를 발견한 곳은 101페이지였다. 그곳엔 마치 엄마 클로버와 새끼 클로버처럼 두개의 클로버가 있었다. 나는 그 두개의 클로버를 보자 눈시울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저를 믿지 못하고 제 진실을 지지하지 않아요. 정말 어떻게 밀고 나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 자신에게 실망했어요.’ 어머니는 그의 얼굴을 우울한 심정으로 쳐다보았다. 어떻게든 위로를 해주고 싶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야, 너무 서두르지 말아라! 사람들이 오늘 비록 너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내일은 이해하게 될 게다….’”
나는 왜 하필 네개의 네잎 클로버를 이 책에 끼워놓았을까?
프랑스에 살던 어느 날, 어머니가 몹시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파도 아픈 척 하지 않고 고생만 하고 살아온 어머니. 그 무렵은 나도 여러 가지로 외국생활에서 고초를 겪고 있었고 몸까지 늘 아팠다. 우울하고 힘든 내가 그나마 아이들 등쌀에 햇빛 구경을 하는 건 집 근처 공원에나 갈 때였다.
나는 우울했고 몹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두 아이들이 노는 동안 풀밭에 앉아 망연히 해바라기를 하던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자니 뭔가 아주 작은 것이 나를 끌어당기는 기운이 풀밭에서 느껴졌다.
좀더 가까이 눈을 갖다대니 세상에나! 거기에 수많은 세잎 클로버들 속에 네잎 클로버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너무도 기뻐 환성을 질렀다. 행운의 여신이 내게 윙크하듯 그 작은 클로버잎이 반짝거렸다.
그날, 아이들도 달려와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찾았지만 이상하게도 네잎 클로버는 내게만 보였다. 두 시간 동안 네개를 찾아냈던 것이다. 그걸 집에 고이 들고 온 나는 그것이 마치 부적처럼 내게 행운을 불러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책갈피에 보관하려고 서가를 살폈다. 그때 한국책이 몇권 꽂히지 않은 서가에 노란 책이 내 눈을 잡아 끌었다. <어머니>란 책이었다.
나의 힘, 어머니의 사랑
그걸 보고 갑자기 ‘나는 정말 불행한가’ 하고 잠깐 자문을 해보았다. 그러자 내가 특별히 불행할 건 없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었다. 나는 아직 젊고 건강하며 모든 걸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 어머니가 떠올랐다. 늙고 병든 내 어머니…. 나는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나는 내 어머니에게 정성스레 재물을 바치듯 그 책에다 네잎 클로버를 끼웠다. 클로버를 끼우는 페이지마다 어쩌면 어머니의 모습은 내 어머니의 모습처럼 그렇게 강하고도 아름답던지. 책을 품고 나는 기도했다. 저는 괜찮으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의 건강을 돌려주고 행운을 주소서. 대신 어머니의 사랑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게 하소서….
네잎 클로버 덕인지 어머니는 건강해지셨고, 나는 지금 어머니가 옆에 계셔 늘 행복하다. 네잎 클로버를 품고 있는 <어머니>란 책은 어머니를 향한 내 사랑을 담은 소중한 그릇이다.
권지예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