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사의 ‘공백기’ 메우는 음악 마니아들… 전설적 고전 음반 재발매하며 대중에게 다가서
‘일보다는 낭만을, 돈보다는 사랑을.’
어느 회사의 문 앞에 이런 사훈이 걸려 있다. ‘사랑보다는 돈, 낭만보다는 일’의 강박에 시달리는 현실에 이 무슨 ‘시대를 거꾸로 사는’ 구호란 말인가! “맞다. 우리는 ‘세상’을 거꾸로 살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세운 ‘비트볼레코드’는 그렇게 허를 찌른다.
비트볼레코드 세 친구의 아주 특별한 작업
비트볼레코드(www.beatballrecords.com)는 음반 수집가이자 음악 애호가인 세 사람 이봉수(31)·김상만(33)·김영준(32)씨가 지난해 4월 세운 ‘작은’ 음반사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음식점 건물 지하에 자리잡은 방 서너개짜리 이 회사 사무실에는 벽마다 ‘추억의’ LP 레코드판들이 가득하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서울 아 고고’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김정미의 <나우>, 신중현과 퀘션스의 <인 아 가다 다 비다>, 윤영균과 신중현 앤 더 멘의 음반, 이정화의 <꽃잎> 등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명반들,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작 실제로 듣기는 어려웠던 음반들을 복각해 내놓았다. 그것도 CD가 아닌 커다란 LP판들로만. 유신정권이 검열의 칼을 휘두르기 직전인 60년대 말과 70년대 초 명동의 고고클럽을 중심으로 아찔하게 피었던 한국의 청년문화·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전설의 음반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뭐 대수냐 싶겠지만 이들이 재발매한 음반들은 올해 상반기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단연 화제였다. 이전까지 이 음반들은 부르는 게 값이고, 그나마 없어서 못 파는 것들이었다. 한국 음반 수집가라면 누구나 찾아헤매던 이 음반들은 한장에 70만~150만원이었지만 새로 복각된 음반들은 한장에 2만~2만5천원. 당연히 광고 한번 안 했어도 발매 당일 또는 이틀 만에 다 팔려나갔다. 물론 뮤지션들과의 계약 때문에 모두 1천장 한정 발매였고, 더 찍을 수는 없다.
이들처럼 한국 음악 마니아들이 잊혀진 한국 음악들을 ‘되살리고 있다’. 올 들어 ‘판쟁이’로도 불리는 마니아 음반 수집가들이 자신들이 정말 아끼는 한국 음악의 고전을 재발매하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주간한국> 기자이기도 한 음반 수집가 최규성씨는 이번달에 70년대 한국 포크의 주역인 김의철씨의 1집 <노래모음>과 2집 <연가집>을 복각해 내놓는다. 최씨는 솟대기획이라는 기획사를 세우고 60년대부터 현대까지 한국의 숨은 포크 음반들을 발굴해 내놓을 계획이다. 지난달 말 한국 최초의 록 음반으로 재평가될 가능성이 있는 <키보이스> 음반을 발굴해 내놓은 박성서씨 역시 한국 록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자 수준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 역시 한국 록 음반들을 잇따라 복원할 예정이다. 지난해 신중현 작품집 CD의 제작대행을 맡았던 김기태씨도 개인 음반사 M2U를 차려 음반들을 내놓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비트볼레코드의 세 친구는 어떻게 이 일에 나서게 됐을까. 이봉수·김상만·김영준씨는 10년 전쯤 판을 사러 홍익대 앞과 청계천을 돌아다니다 서로 알게 됐다. 음반사에서 일했던 이봉수씨는 컨트리나 포크, 블루스 애호가이며, 김상만씨는 60~70년대의 프로그레시브와 사이키델릭처럼 몽환적인 음악을, 영준씨는 60~70년대의 팝과 록 음악 전반을 좋아한다. 60~70년대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친해졌고 “음악이 너무 좋으니까 한번 음반을 내고 싶다”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지난해 덜컥 일을 저질렀다. 창업 자금은 가지고 있던 음반 일부를 파는 아픔을 감수하고 마련했다.
고수들의 ‘의기투합’… 복각음반의 서러움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잊혀진 한국 록 초기의 음반들을 복원하는 작업에 나선 것은 우연이었다. 디자이너인 김상만씨가 신중현씨의 옛 음반 재발매 작업의 재킷 디자인을 맡았고, CD로만 낼 계획이던 신중현씨에게 자신이 한번 LP를 내보겠다고 제안해 허락을 받았다. 이는 그 뒤 한국 록 음반들을 체계적으로 복각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발품을 팔고 수소문을 한 끝에 일산의 한 공장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LP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아무도 자료를 정리해놓지 않고 음반 판권도 불분명한 상태라 판권자를 찾아내 계약하는 것도, 30~40년 전의 마스터 테이프를 찾아헤매는 일도 힘들었다. 음반을 내는 과정에서 이들이 만난 신중현·김홍탁(he6)·조용남(he6)·김명길(데블스)·최이철(아이들) 등 ‘주인공’들은 모두 수십년 동안 잊혀진 자신의 음반이 복원된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고 그것은 이들에게 큰 힘이 됐다.
불과 몇십년 전의 음반이지만 한국 대중음악 자료가 워낙 보존되지 않아 이들의 작업은 거의 ‘고고학’에 가까웠다. 이 과정에서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해 나서지는 않았지만, 명반이 재발매되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도와준 많은 한국 음반 수집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물질적 대가 없이 자기 일처럼 좋아하며 당시의 잡지기사, 자료, 사진 같은 자료를 제공해줬다.
비트볼레코드의 ‘세 친구’들에 따르면, 이들 음반 애호가의 세계는 거의 ‘무림의 고수’들을 방불케 한다. LP를 5천~1만장 이상 모은 사람들도 있고, CD는 몇만장씩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다. LP 마니아 중 한옥에 사는 사람은 한옥 구들장이 무너지기도 했다. 청계천에서 음반을 고르다보면 LP의 밑부분이 젖은 흔적이 많은데 이는 구들장이 무너져 물기에 젖은 흔적이라는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전해져온다. 이봉수씨는 “많이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음반이 어떤 것인고 어떤 의미인지를 정말 잘 아는 사람, 그 음악들에 진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진정한 음반 수집가”라고 말한다.
사실 이들은 복원된 한국 음반들이 잘 팔리는 데 약간의 아쉬운 점도 있다고 했다. “옛날 우리 음악을 다시 듣겠다는 것은 좋지만 약간의 거품도 있는 것 같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집욕이나 투자 개념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꼭 사고 싶은 사람은 못 사고 한 사람이 여러 장씩 사가는 것 같아 걱정도 된다.” 이들은 앞으로는 ‘마니아’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다가가기 위해 LP뿐 아니라 CD로도 옛 음반들을 재발매할 계획이다. 70년대 솔 그룹인 ‘데블스’의 음반과 사이키델릭록 그룹 ‘he6’ ‘선우영아’ ‘아이들’의 CD가 곧 나온다.
“대중음악의 미래까지 책임지련다”
한국 음반 재발매로만 먹고살 수는 없는 법. 이들은 음악애호가의 안목으로 미국과 유럽 음악 중 현지에서도 절판된 ‘보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말 좋은 음악, 책이나 자료에는 나오는데 이제는 살 수 없는 음악들을 찾아내 새로 계약을 맺어 음반을 재발매한다. 이 음반들은 특히 다양한 음악에 대한 수요층이 두껍고 장르에 대한 편견이 없는 일본에서 반응이 대단하다. 이들은 또 라이너스 블랭킷이나 불독맨션처럼 국내의 인디밴드 중 실력 있는 그룹을 찾아내 음반을 냈다. 한국 음악의 과거부터 미래까지 음악 마니아들의 맹활약이 시작됐다.
글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비트볼레코드(www.beatballrecords.com)는 음반 수집가이자 음악 애호가인 세 사람 이봉수(31)·김상만(33)·김영준(32)씨가 지난해 4월 세운 ‘작은’ 음반사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음식점 건물 지하에 자리잡은 방 서너개짜리 이 회사 사무실에는 벽마다 ‘추억의’ LP 레코드판들이 가득하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서울 아 고고’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김정미의 <나우>, 신중현과 퀘션스의 <인 아 가다 다 비다>, 윤영균과 신중현 앤 더 멘의 음반, 이정화의 <꽃잎> 등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명반들,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작 실제로 듣기는 어려웠던 음반들을 복각해 내놓았다. 그것도 CD가 아닌 커다란 LP판들로만. 유신정권이 검열의 칼을 휘두르기 직전인 60년대 말과 70년대 초 명동의 고고클럽을 중심으로 아찔하게 피었던 한국의 청년문화·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전설의 음반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음반 수집 ‘광’들이 한국 음악의 고전을 복원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김정미·신중현·이정화 등의 한국 대중음악 초기 명반들을 내놓고 있는 비트볼레코드 사람들.


비트볼레코드가 복원한 추억의 LP음반들.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